원주 법천사지를 찾아서
원주시
부론면 명봉산
기슭에 있는 법천사는
진리가 샘물처럼 솟는다는
사찰로 마을 전체가 절터로 마을
이름이 법천리라 하는데 법천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통일신라때 창건하여
고려와 조선시대 때는 융성하였으나 임진
왜란 때 전소된 뒤로 중창을 하지 못하고
페사 되었던 것을 지금은 마을전체가 이주
하여 발굴 작업을 하여 정비를 하고 있고
일부는 아직도 발굴하고 있으며 석조물로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당간지주,불상광배,불두,배례석,연화문
대석 등이 있으며 탑비 옆에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었으나 국립중앙박물관
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법천사지는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천년고찰 법천사가 있던 폐사지로
지광국사가 고려 문종24년에 입적하자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비를 세웠는데 현묘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지광국사현묘탑비만 옛 자리에 있습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국보 제59호로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입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거북이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긴 수염이 있고 험상궂은 모습입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의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놓았으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습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은 정유산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가 중국의 구양순체의 필체로
썼는데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특이한 모습입니다
비 앞면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하여 형태와 조각이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지광국사(984 ~ 1067)는 원주 출신으로 속성은 원씨 이름은 수몽,
법호는 해린으로 고려 문종은 지광국사를 1056년에 왕사로
1058년에는 국사로 추대하여 설법을 듣게 하였습니다
국사의 나이 84세(1067)에 출가했던 법천사에 돌아와 열반에 드니
문종은 시호를 지광 탑호를 현묘라 하고 극찬과 명문장으로
고려를 빛내던 선사의 일생을 비문에 새겼다고 합니다
국보 제59호 지광국사현묘탑비 만 외롭게 서서 함께 있어야 할 경복궁에
있는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현묘탑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은 원래 법천사 절터에 있었던 승탑으로
1912년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법천사지는 진리법이 샘물처럼 솟는다는 의미로 너른 밭을 중심에
두고 마을 전체가 절터였다고 하는데 마을 이름이 법천리로 옛
법천사에서 유래됐을 만큼 거찰이었을 것이다.
옛 법천사지로 생각되는 주변 일대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대부분
농경지로 변했으며 민가에는 석축들이 남아 있습니다
석조물로는 지광국사현묘탑비와 법천사 당간지주,불상광배,불두,
파불,배례석,연화문대석,용두,석탑재 등이 남아 있습니다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무자명의 광명대, 현로, 향완 등의
명문을 통해 이 절에 미타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문헌에 전하는 법천사는
신라 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입니다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어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으며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 하에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 학자인 유방선이 이 절에서 강학을 하였으며 권람·한명회·
강효문·서거정 등의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읊어 시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용두화된 거북머리의 목은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새겼으며 턱 밑에는 긴 수염이 있고 등에는 네모 안에 귀갑문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왕(王)자를 양각했습니다
등의 중앙에는 복련의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웠는데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을 조각하여 돌렸으며
양 측면에는 쌍룡을 조각하였습니다
이수는 왕관을 쓴 것 같은 모양으로 네 귀에 전각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으며 이수에 상륜부를 두어 보주를 얹었습니다
지광국사는 고려 성종 3년(984)에 원주에서
태어났는데
속가명은 해린으로 목종 2년(999)에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석재들을 한 곳으로 모아 두었는데
그 조각 솜씨가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용도는 알 수 없는 석조물이지만 그 조각 솜씨가
정교하고도 아름답습니다
광배와 탑재 사이에 있는 배례석에는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배례석에 조각된 연화문인데 가운데 부분에는 연밥을 조각한 것인가
둥근 무늬들이 여러개 보입니다
어느 불상의 광배인 것 같습니다만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화불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석등의 받침같은 모양으로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층급 받침이 뚜렸하게 남아 있는 탑재석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모아져 있습니다
문양이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으로
화살표시 같은 형상입니다
기단석 같은 모양인데 사방으로 아름다운 문양들이
아주 정교하게 세겨져 있습니다
법천사터에서 나온 주춧돌 등의 석물들을
한 곳으로 모아 놓았습니다
법천사지 당간지주는 절터 남쪽에 있는데 화강암으로 된 당간지주는
높이가 280㎝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당간지주는 기둥사이에 당간을 꽂아두기 위한 받침돌을 다듬어 놓았고
윗부분은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다듬어 놓았고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를 파놓았는데 간공은 없습니다
지광 국사가 법상종을 일으킨 법천사는 남한강물이 모여서 흘러나가는
곳으로 당시 수상교통의 요지였으며 흥원창이 설치된 곳으로
이 지역의 세곡을 수납하여 보관하고 남한강 수로를 통하여
경창으로 보내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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