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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영국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1. 12.

 

 

영국사를 찾아서

 

영국사는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 때 원각국사가 창건

절로 국청사라고 하였으나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마

산성에 머물 때 이 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로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

하게 되었다 해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하며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고

중요문화재로는 부도, 3층석탑, 원각국사비

등이 있으며 절 입구에는 천연기념물인 은행

나무가 있는데 나이가 대략 천년 쯤 되었다고

하며 가지 하나가 자라다가 땅에 닿았는데

뿌리가 내려서 자란 은행나무가 특이한

하고 있으며 국난이 있을 때 마다

내어 운다고 하며 가을에는 예쁘게 물든

노란 단풍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으로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

하는사람들이 주관하는 걸개 시화

전이 영국사 입구에서 은행나무

까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문종때

원각국사가 창건한 절로 당시에는 국청사라고 했습니다

 

 

  

영국사라는 이름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 때

이 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하게

되었다고 해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천태산은 해발 715m로 기암괴석과 아기자기한 폭포와 불교문화재들이

많으며 산림청이 선정한 전국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현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

요사채만 남아 있고,

 

 

 

중요문화재는 부도(보물 제532)3층석탑(보물 제533)

원각국사비(보물 제534) 등이 있습니다

 

  

 

영국사는 절 입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높이 31m 둘레 11m이며 나이가 1000년 쯤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2미터 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져 동서로 25미터

남쪽 방향으로 22미터 정도 퍼져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서쪽 가지 하나가 밑으로 자라다가

끝이 땅에 닿았는데

 

 

 

여기서 자란 새로운 나뭇가지가

높이 5미터 이상 됩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영국사와 함께 국난을 꿋꿋이 이겨낸 나무로

나라에 난이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이 은행나무의 곱게 물든 나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인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년 이 맘 때면

걸개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등산로를 따라

은행나무까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국사 3층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으며 통일신라 말기의 3층석탑으로

보물 제533호로 높이 315cm 1942년 주봉조사가 대웅전 앞으로

옮겨놓았으며 원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영국사 3층석탑은 넓은 석단 위에 2층 기단과 3층 탑신이 놓여 있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으로 하층기단의 면석은 4매로

되었고 각 면마다 안상이 3구씩 새겨져 있습니다

 

 

 

하층갑석도 4매로 이루어졌으며 각 모서리 끝이 반전되어 있고

중앙에는 호형과 각형의 2단 굄이 있으며 상층기단도 4매로

각 면마다 안상이 1구씩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는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옥신석에는

우주가 있고 1층 옥신의 한 면에만 문비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모두 4단으로 처마 끝부분이 올라가 있으며

3층 옥개석 윗면에는 지름 7.5cm, 깊이 8cm의 찰주공이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앙화, 보륜, 보개, 수연 등이 남아 있으며 기단과 옥개에

비해 옥신의 폭이 좁고 둔중한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탑은 원래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42년에 지금의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의 사찰

방향을 따라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면석은 4개로 각 면에는 안상이 3개씩 조각되어 있으며

하층기단의 면석에는 3개의 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층기단은 판석을 각 면에 1매씩 세워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나 탱주가 없으며 전면에 1구씩 큼직한 안상을 새겼는데

1942년 현재 위치로 옮겨 세울 때 상층기단 면석의 위치를

거꾸로 배치하여 현재 안상의 모양이 뒤집혀 있습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한 돌이며 각 탑신은 양 우주를

정연하게 새기고 초층에만 1면에 문비가 새겨졌는데

장방형으로서 두 줄의 선으로 표시 하였습니다

 

 

 

내면은 중앙에 세로선을 음각하여 양쪽의 문짝을 표현하고

상부에는 양면에 큼직한 자물쇠 하나가 양각되었고

양쪽에 한 개씩의 문고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영국사 원각국사비는 보물 제534호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인데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대선사가 되었던 큰 스님으로 명종 4(1174)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비의 형태는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이수는 넘어져 있던 것을 귀부 옆에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으로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 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 되었습니다

 

 

 

비신은 점판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훼손이 심하고

상단에는 돌기가 있어 이수를 얹게 하였습니다

 

 

 

이수에는 구름과 용이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36자로

원각국사비명 이라는 비의 명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데

 

 

 

1180(고려 명종 10)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한문준이 지었다고 합니다

 

 

 

영국사 원구형부도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원각국사비 뒤에

있으며 누구의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원각국사비 바로 뒤에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고승 덕소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대석 윗면에 중대 받침을 만들고 중대석 각면에는 안상이 있고

상대석은 원단형이고 탑신은 원구형이며 옥개석은 팔작지붕으로

기와골 등은 생략되었고 옥개석 위로 보주가 있습니다

 

 

 

 

영국사 석종형 부도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84호로 원각국사비

뒤에 있으며 누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6장의 석재로 조성되었고, 모양과 장식 등이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 됩니다

 

 

 

영국사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으로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모두 8각형으로 된 전형적인 8각원당형 부도로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영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만세루를 지나면 영국사 대웅전과

극락보전 산신각 그리고 삼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국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불전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건물의 3출목 7포작집입니다

 

 

 

여러 차례 불타고 허물어져서 중창하였기 때문에 신라와 고려시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조선 중기의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이 산신각이 있으며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비로자나불은 1000년의 은행나무로 조성된 목조불이라고 합니다

 

 

 

이 절은 신라 제30대 문무왕 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였으며,

32대 효소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

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제23대 고종 때 감역 안종필이 왕명으로 탑·부도·금당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라고 하였는데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건너서 개경까지 육박하자

 

 

 

왕은 이 절로 피난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는 하면서 이원

마니산성에 근위병을 포진하여 놓고 이 절의 맞은편에 팽이를

깎아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데

 

 

 

왕은 그 봉우리 위에 왕비를 기거하도록 해놓고 옥새를 맡겨두었다고

하며 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평군민안이 되었으니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라 하고 현판을 써준 뒤 떠났다고 합니다

 

 

 

절 입구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파란 이끼와

울긋불긋 단풍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큼직한 바위가

산길을 막는데 이 바위를 삼신할멈바위라고 합니다

 

 

 

삼신할멈바위를 뒤로 하고 아름다운 단풍들을 눈 마중 하면서

물소리 새소리에 푹 빠져 오솔길을 걷다 보면

 

 

 

물줄기가 보일 듯 끊어질 듯 이어져 흐르는 3단 폭포가 있는데

전에는 이 3단 폭포를 용추폭포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사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인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년 이 맘 때면 걸개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등산로를 따라 은행나무까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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