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우수 정책고객 문화유산 탐방을 다녀와서
문화재청에서는
우수정책고객을 선정
하여 매년 문화유산 탐방을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 다섯번째
문화재청 우수정책 고객 문화유산
탐방단을 모집하여 2011년 가을 우리
문화유산과 함께 소중하고 유익한 추억을
만드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는
메일을 받고 참여해 보고 싶어서 선정기준을
보니 신청자 중 정책고객 마일리지 상위 점수순
으로 34명을 선정 개별 통보한다는 내용을 보니
낙타를 타고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를 할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참여 신청을 해 놓고는 잊어버렸는데
탐방단에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아
보는 순간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몸이지만 동심
으로 돌아가서 하늘을 날으는 기분 이었습니다
경주 문화유산 해설사, 경주박물관 모니터링,
금빛봉사단 활동, 경주향토자료조사요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보람을 여기서 찾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문화재청 우수
정책 고객 문화유산탐방을
잘 다녀왔습니다
이 사진은 삼척에서 일출을 찍은 사진으로 군부대의
철조망 사이로 잡아본 일출장면 입니다
=== 월정사 ===
오대산 월정사는 신라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적광전 앞에 국보 제48호인
팔각9층석탑이 있습니다
8각 9층석탑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8각은 불교의 실천 수행에 기본이 되는 8정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팔각구층석탑을 향하여 공양을 드리고 있는 석조보살좌상은
자신의 몸을 태워 공양하기를 1200년 간이나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세계기록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 실록과 조선왕실의 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1913년 일제에 의해 불법반출
되었다가 실록은 2006년도에 환국하였은나
조선왕실의 궤는 2011년에 환국이 예정은 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상원사 ===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상원사는 신라성덛대왕 (705년)때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세조가 1464에 이곳으로 행차를 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국보 제221호인 목조문수동자좌상은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고 합니다
국보 제36호인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입니다
=== 선교장 ===
선교장 입구에 있는 활래정은 선교장 북쪽의 태장봉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와서 활래정에 연잎과 연꽃을 피우게 하는 물이 된다고 하여 활래정 이라고 합니다
선교장이라고 한 것은 지금은 선교장 앞에 큰 도로가 나 있으나 옛날에는 경포호수가 이 집 앞까지 있어서 배를 타야만 오갈 수 있어서 배다리집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배선(船) 다리교(橋) 별 장(莊) 자를 써서 선교장(船橋莊)이라고 합니다
선교장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11세손 이내번이 강릉에 와서 이 곳에 터를 잡고 300년을 이어온 집 이라고 하며 민속자료 입니다
열화당은 선교장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채의 역할을 했던 건물로 이 내번의 손자 이 오은에 의해 순조 15년(1815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 고택 달빛 음악회 ===
고택 달빛 음악회의 국악 공연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선교장의 구조는 행랑채 대문을 들어가면 안채, 열화장, 동별당, 서별당이 있습니다
안채는 선교장의 터를 잡았던 이내번이 지은 건물이고 동별당은
이내번의 5대손 이근우가, 서별당은 이내번의 증손자
이용구가 세웠다고 합니다
선교장의 솟을대문은 선교유거(仙嶠幽居) 즉 신선이 사는 그윽한 집이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솟을 대문은 대문이 높으면서도 계단이 아닌 것은 수레가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선교장은 이내번이 어머니와 강릉 경포대부근에서 살다가 좀 더 넓은 곳을 찾고 있던 중 어느날 족제비가 떼를 이루어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이 곳에서 갑자기 사라져서 하늘이 족제비를 시켜 잡아준 명당터라고 생각학고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 해운정 ===
해운정 이란 현판은 조선 숙종때 문신 송시열이 쓴 것이라고 하며 해운정은 별당 건축물로 중종(1530년)때 심언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조선 중종(1537년)때 명나라 사신 공용경과 오희맹이 황세자 탄생을 알리려 왔을 때 해운정 주인인 심언광이 맞이했는데
공용경이 쓴 경호어촌(鏡湖漁村)과 오희맹이 쓴 해운소정(海雲小亭)이라는 글씨는 그 때 쓴 것이라고 합니다
해운정의 우물천정은 대들보의 모양이 우물정자 처럼 건축
되었으며 특히 정자의 네 모서리에는 연꽃송이가
받쳐져 있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 방해정 ===
방해정은 ㄱ 자형으로 앞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 기와 지붕으로 화강암 기초석 위에 누마루 형태의 고택입니다
방해정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0호로 경포호수가 정면에 펼쳐지는 경관이 수려한 고택입니다
방해정은 조선 철종10년(1859년)에 이봉구가 선교장의 별장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방해정 주변에 금잔디를 심어 이가원 즉 이씨 집안의 대정원이고 하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정원에는 수많은 분재와 화초들로 잘 꾸며져 있는 아름다운 고택입니다
=== 홍장암 ===
기생 홍장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홍장암인데 강릉 기생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기적에 오른 200여명의 기생 가운데 미모가 가장 뛰어난 기생이었다고 합니다
(홍장암 앞 경포호수의 작은 바위섬에서 목이 빠지라고
박신을 기다리는 홍장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옛날 박신이란 사람이 강원도 안렴사로 왔을 때 홍장이라는 기생을
만나 사랑에빠졌을 때 박신이 한양으로 발령이 나서 해어지게되었는데
중대백로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친구 였던 강릉부사 조운훌이 박신에게 홍장이 박신을 흠숭하다 그만 자결을
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자 박신은 이별대신 죽음을 택하게 된 홍장을
그리면서 가슴아파하고 있을 때
조운훌이 박신을 위하여 경포호에서 송별연을 하고 있을 때 호수
저 멀리서 작은 배 한척이 이리로 오고 있어 자세히 보니
거문고를 타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바로 홍장이라
먼 후일을 기약하며 절개를 지키다가 박신이 순찰사가 되어
강릉으로 오게 되어 다시 만나게 된 두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설화 입니다
=== 경포대 ===
경포대는 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관동8경의 하나로 관동 8경은 통천의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혹은 의상대),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이라고 합니다
경포대에서는 볼 수 있는 달이 여러 개라고 하는데 하나는 하늘에서 뜨는 달이고, 또 하나는 바다에 뜨는달이며, 세 번째는 경포호에 뜨는 달이라,
나머지 하나는 술잔에 뜨는 달인데 또 하나의 달은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님의 눈 동자에 뜨는 달이라 하여
다석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경포대라는 현판은 두개가 있는데 전서체는 조선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쓴 것이고 해서체는 순조때 승지를 지낸 이익회 라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 경포호의 일출 ===
경포호에서의 일출 모습을 잡아 보았습니다
나룻배 한척이 해마중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장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6시 경에 일어나서 산책 겸 동가숙했던 분들고 같이 걸어가 본 곳입니다
새벽잠에서 놀라 깬 중대백로 한마리가 어디론가 가족을 찾아서 멀리 날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경포대에는 다섯개의 달이 뜬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3개의 달을 볼 수가 있는 곳입니다 나룻배 뱃머리에 떠 오르는 작지만 붉은 해가 나그네를 반겨 맞이하고 있습니다 === 향토음식전문점 ===
옛부터 강릉은 농사철에 이웃과 상부상조 하던 시절에 옛조상들이 즐기던 전통음식을 향토음식으로 자원화하여 이름난 향토음식전문점 서지마을 못밥 집을 찾았습니다
옛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닐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받쳤던 보조기구 따뱅이 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보는 순간 우물가에서 물이 출렁이도록 가득 담아 이고 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 나서 담아 본 사진입니다
서지마을 못밥 이야기에서 수작업으로 토종벌집을 만들고 있는 통나무 기둥입니다
사랑채 뒤에는 곡식을 널던 멍석과 새끼를 꼬았던 새끼들이 보이는데 손으로 새끼를 꼬던 시절 이 새끼틀은 아마도 공중전화를 이용하던 시절에 스마트폰 만큼이나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 허난설헌 기념관 ===
초당가문의 세그루 보배로운 나무 라고 하는 허봉, 허초희, 허 균의 기념관이라고 하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을 찾아갔습니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짧은 인생을 살다간 천재시인으로 동인의 거두인 초당 허엽의 딸로 동생 허균과 함께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여덟살에 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살아생전에 세가지 한이 있다고 했는데 여자로 태어난 것 , 조선에서 태어난 것,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라고 합니다
허난설헌의 생가터라고 하며 조선선조때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이 곳에서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하며 허균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초당동이란 지명은 허 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 으로 옛날 허균의 아버지가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초당동이라고 하였답니다
=== 오죽헌,박물관 ===
오죽헌은 율곡 이이의 이종사촌 권처균의 아호가 오죽헌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이 곳은 율곡 이이가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율곡산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문성사와 율곡선생이 태어났다는 몽룡싱실을 비롯하여 어제각과 율곡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한송사지석불좌상은 보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머리와 오른 팔이 없어진 보살이지만 입체감이 풍부한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희귀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의 불상이라고 합니다
한송사지석조보살좌상은 국보 제124호로 고려시대의 작품이지만 석굴암 보살상과 같이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전통을 따른 정교한 작품으로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것은 모조품이라고 합니다
=== 굴산사지 ===
굴산사지는 신라 문성왕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구산 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사찰 이었다고 하며 석불좌상이 남아 있습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 때 지방호족들이 지원하여 번창한 사굴산문의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굴산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85호로 지정된 굴산사지 부도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굴산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가 보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가 5.5m의 거대한 한덩이의 돌을 사용하였습니다
=== 삼척 해맞이 공원 일출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해맞이축제의 명소로 알려진 소망의 탑이 있는 곳으로 삼척의 해맞이 축제는 매년 1월 1일 새천년 해안도로변에서 펼쳐지는 겨울축제로 송구영신의 아쉬움과 희망을 담아보는 곳이라고 합니다
소망의 탑에서 새천년 해안도로변을 따러 조금 내려가는 곳에 군부대 초소가 있었던 자리에 철조망을 사이로 하여 담아 본 남북분단의 슬픈 일출사진 입니다
철조망 저너머에서는 군인들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점호를 취하는 구호소리가 힘차게 들려오고 있는 곳에서 담은 사진입니다
=== 죽서루 ===
죽서루는 보물 제213호로 관동8경의 1루로 조선 태종 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을 하였다고 하는데 자연 암반 위에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는 현판은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라고 하며,
전면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41년(1715년)의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고 적혀있는 현판은 헌종
3년(1837년)에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라고 합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으로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합니다
=== 장릉 ===
장릉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무덤으로 사적 제196호인데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에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고 1580년에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을 세웠다고 합니다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 엄홍도가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을 한 뒤 숨어버렸다고 합니다
단종은 5대 문종의 아들로 문종이 제위 2년 4개월만에 세상을 뜨자
12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어머니인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3일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왕위를 수양대군인 세조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있고 상석의 좌우에는 망주석 한 쌍이 있으며 장명등과
석마가 한쌍 있으나 문인석만 있고 무인석은 없습니다
=== 청령포 ===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시 한수가 생각 납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임 여의옵고 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물도 내안 같아서 울어밤길 예놋다 라는 시가
이 곳을 찾는이들의 눈가를 붉게 물들입니다
천년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었으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갈래로 갈라진 가지 위에 걸터 앉아서
옛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는 전설의 소나무로
관음송이란 단종 유배당시의 한 맺힌 모습을 보았을 것(觀)이며
오열하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뜻(音)에서 관음송(觀音松)
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의 절벽에 있는 돌탑으로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주위에 흩어져 있던 막돌을 주워서 쌓아 올린탑으로
단종의 유일한 유적이라고 합니다
'팔도문화재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령산 용암사를 찾아서 (0) | 2011.11.13 |
---|---|
영국사를 찾아서 (0) | 2011.11.12 |
강릉 선교장을 찾아서 (0) | 2011.11.05 |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서 (0) | 2011.11.05 |
강릉 경포대의 홍장암을 찾아서 (0) | 2011.1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