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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스크랩] 2경주 남산 삼릉계4-새 모습으로 태어난 6사지 석조여래좌상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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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습으로 태어난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

 

릉계 제6사지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삼릉계 제5사지(선각마애여래좌상절터)

 

제5사지는 제3사지에서 서북쪽으로 260m 정도 바위 능선을 타고 올라가서 높이 약 10m의 바위면에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선각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3사지 선각마애불에서 상선암 가는 길로 개울을 따라 따라 오르는 것이 편하고 대부분의 등산객이 이 길로 오른다. 그렇게 되면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먼저 보고 좌측으로 약 100m 쯤에 있는  제5사지 선각마애여래좌상을 보게 된다

불상 아래쪽에 분묘의 축대로 이용되는 곳에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불상과 관련되는 사지로 추정되고 있을 뿐, 현재로는 건물지의 축대 등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다.

 

 

제5사지 선각마애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인 이 불상은 높이 약 10m의 큰 바위면에 있다. 넓은 암벽은 중앙에 가로 금이 가서 벽면은 아래위로 갈라져 있는데 그 금을 대좌로 삼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선각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신체는
선각하였고, 얼굴과 손 등 중요한 부분은 약간 도드라지게 새겨 강조한 독특한 조각수법이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는 둥글고 낮은 육계(肉鉅)가 있고, 귀가 길어 양 어깨 에 닿았다. 넙적하면서도 긴 얼굴은 신체에 비해 다소 큰 편이고, 좁은 이마 중앙에는 큼직한 백호가 있다.

얼굴에는 가늘고 약간 치켜올라간 눈, 긴 코, 두텁고 큰 입술로 투박하게 표현하였으며 목에는 삼도가 가늘게 새겨져 있고, 둥근 어깨와 무릎은 양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맺어 위 아래로 마주보고 있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으며 통견의 법의는 얇은 신체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 또한 가늘게 선각되어 있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으며 대좌는 단판의 복련연화대좌이다.

 

암벽의 가운데 갈라진 틈을 대좌와 몸체의 경계선으로 삼고 얼굴은 부조에 몸체는 선각을 한 것이라든가  중요한 선은 굵게 긋고 옷 주름 같은 선은 가늘게 그어 변화를 준 것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세련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10세기(고려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앞에는 흔들바위가 있고 왼쪽에는 부부가 껴안고 있는 형상으로 생긴 부부바위가 있다.

 

 

 

 

삼릉계 제6사지 (석조여래좌상절터)

 

 

제6사지는 제5사지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가면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이 있는 곳이다.

제4사지에서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경사진 곳을 오르면 불상이 바로 나타난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일제시 보수 전의 모습

 

 

일제시 상호를 올리고 광배를 세워 보수한 모습

 

 

1923년 조사 당시  불두는 아래쪽에 떨어져 있었으며 당시에도 코 아래부분은 결실되어 있었는데 그 해 12월에 불두와 신체에 촉을 꽂아 결합하고  남아있는 광배를 세워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0년 이전에 민간인이 코 아래 부분과 입, 턱 부분을 시멘트로 보수하였는데  얼굴이 너무 길어져 상호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나 시멘트로 바른 부분외에 나머지 상호는거의 완전한 상태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광배는 불상의 뒷쪽에 깨어진 채로 떨어져 있고 불상만 외로이 앉아 있었는데 2007년 4월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남산의 불상 정비사업을 시작하여 2008년 12월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파손된 불두 상호에 대한 복원은 경주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여러 불상을 조사하여 참고로 하였으며 광배는 잘라진채 불상의 뒤에 방치되어 있던 것과 주변 발굴에서 수습된 10점을 접합하였고  사라지고 없는 부분은 새로 석재를 깎아 접합을 하였다

 

 

 

알굴의 아랫부분을 시멘트로 발라 보수한 모습

 

보수 정비하기전의 모습. 광배가 뒤에 떨어져 있다.

 

 

2008년에 보수 정비한 보물 제666호 석조여래좌상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이 불상은 섬세하게 조각된 소발의 머리 위에 둥근 육계가 나지막하게 솟아 있고, 반쯤 뜬 가늘고 긴 눈은 자비로운 모습이다. 눈썹과 눈매에는 위엄이 느껴져 단정한 얼굴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짧은 목에는 3도가 있고,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넓은 무릎 등은 안정감 있는 신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法衣)는 얇고, 뒷면에도 일정한 간격의 계단식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법의의 간결한 옷주름은 기본적으로 석굴암본존불과 유사하나, 수인의 표현은 석굴암본존불에 비해 완전하지 못하다.

촉지를 취한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충분히 내려오지 못하였으며, 왼손 역시 복부 앞이 아니라 왼쪽 다리 위에 놓여져 있다.
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넓게 결가부좌한 자세는 안정감 있으나, 가슴과 두 팔의 양감은 석굴암 본존불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가슴과 팔에 걸친 옷주름과 양다리 사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본존불과 같고 더우기 대좌 상면의 부채꼴 옷주름은 석굴암 본존불의 정통계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마련하고, 보상화문(寶相華文)과 화염문(火焰文)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되었으며 중대석은 8각형이다. 상대석의 연잎 안에는 꽃무늬이 첨가되어 있고, 밑면에는 8각형의 상대받침이 1단으로 마련되었다. 팔각형의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는 첨정형의 안상문(眼象文)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단의 8각형 중대 받침을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크기에 비해 대좌는 낮고, 광배는 크며 신체도 상체에 비해 하체의 양감이 강조되어 안정감을 준다. 또한 신체 표현은 둔감하고 형식적으로 흘러간 반면 대좌나 광배의 세부 표현은 화려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통일신라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이 불상은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보수하기 전의 석조여래좌상

 

보수를 한 후의 석조여래좌상

 

 

 

 

보수를 한 석조여래좌상의 정면과 측면

 

 

이 불상이 있는 남쪽으로는 석등지(石燈址)가 있고 비탈진 곳에 석탑의 부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야외전시장에 옮겨져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불상 뒤쪽에는 선방굴이 있으며  불상 아래에는 독수리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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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여래좌상 바로 뒷쪽에 스님이 혼자 수행을 하던 선방굴이 있다

 

 

독수리바위

 

 

 

불상이 있는 곳에서 뒤쪽 암반을 넘어 약 40m 거리에는 절벽 사이에 마련된 좁은 터가 있다. 원래 이곳은 석조여래약사불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나, 1914년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긴 후 아직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얼굴과 가슴까지 새긴 선각마애불이 있다. 이 2구의 불상으로 인하여 제6사지가 2개의 사지로 구분될 가능성도 제시되었지만, 더 이상 건물지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점으로 보아 한 사역으로 추정된다. 건물지는 2곳이 확인되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조여래좌상 뒤쪽 암반을 넘어 약 40m 거리, 절벽 사이에 마련된 좁은 터에 있었으나 191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불상이 있던 곳은 2단으로 쌓은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내부에는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높이 3.3m의 불상을 안치하기에는 내부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다.

불상은 광배, 대좌를 완전히 갖추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머리에는 크고 낮은 육계가 알맞은 조화를 이루며 솟아 있고,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나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얼굴에는 활형으로 예리하게 그어진 눈썹, 가늘면서도 길고 약간 치켜 올라간 두 눈, 적당한 높이의 코, 꼭 다문 입, 부푼 눈두덩 등은 부처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였다. 양쪽 귀는 길어 어깨에 닿고 짧은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다.

통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뾰족한 삼각형 끝단을 이루고 있다.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약함을 쥐고 있어 항마촉지인의 약사여래좌상이다.

광배는 원형에 가까운 거신광으로 2줄의 선을 넣어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광배의 안쪽에는 화불과 영락을 새겨 장식하였고, 바깥쪽은 다소 투박한 화염문을 새겼다.

 

 

 

대좌의 세부

 

대좌는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3단의 팔각대좌로 상대석에는 앙련의 이중연화문이, 하대석에는 복련의 복판연화문이 있다.

다른 불상에 비해 다소 높게 표현된 중대석은 각면에 장방형의 안상을 새기고 그 내부는 향로와 천인상으로 장엄하였다.

 

 

 

 제6사지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 앞 계곡 쪽의 암반 위에 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삼층석탑이 삼릉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여, 이 탑이 삼릉계 제6사지 삼층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석조여래좌상 정비를 위하여 주변을 발굴하던 중 2점의 작은 탑재가 출토되었다.

이 탑재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삼릉계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부에 결합되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 삼층석탑이 삼릉계 제6사지의 석탑임이 확인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삼릉계 삼층석탑

동그라미 부분에 결합이 된 부분.

원래 자연바위를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재 기단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상해 보인다

 

이 탑은 기단부를 자연 바위로 삼은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 비파곡 제2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현재 자연기단으로 추정되는 곳은 2.8 2m 정도 편평하게 되어있다. 

이 석탑은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는 점과 추녀마루의 곡선 등으로 볼 때 9세기 후반에 제작된 소형탑으로 판단된다.

 

경주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 언덕 아래에 나즈막하게 서 있는 작은 삼층석탑이다, 뒤쪽 언덕 높은 곳에는 승소곡에서 가지고 온 삼층석탑이 서 있다

 

 

 

마애선각여래

 상선암 가는 길의 마애선각여래

 

 

 

 


보물 제666호인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상선암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서쪽 암반을 바라보면 선각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머리와 어깨 부분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으나, 그 이하는 미완성이다.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짧은 목에는 3도가 분명하고, 넓고 각이 진 어깨는 비록 미완성작이나 당당한 체구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좁은 이마와 백호, 그리고 두 눈썹과 눈 사이를 매우 좁게 표현한 점 등은 삼릉계 제5사지 마애여래좌상의 세부표현과 유사하다.

이러한 세부표현으로 보아 불상은 통일신라 말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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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사지 주변의 바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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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인이란 무엇인가?


다른 말로는 전법륜인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가 성도한 후, 처음으로 녹야원에서 설법할 때의 자세를
형상화한 것으로 양손을 가슴까지 올려 왼손 손바닥은 안으로, 오른쪽 손바닥은 밖으로 향하게 한 후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닿게 한 것이 마치 불교의 법륜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 수인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어 일정하지 않다.

 

 

광배
부처나 보살의 머리나 몸체에서 발하는 빛을 조형화한 것이다.

원래는 석가모니불에만 나타나는 것이었으나 점차 보살에서도 표시되었다.
보통 두광, 신광, 거신광으로 나뉜다.

두광은 부처의 머리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끝이 뾰족한 보주형, 원형, 연판형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광은 부처의 몸에서 발하는 빛으로 두광과 함께 표현된다.
거신광은 입상이든  좌상이든 상관없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이중의 원모양으로 표현하거나 끝을 뾰족하게 한 배(舟) 모양의  주형광배가 있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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