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사지를 찾아서
석장사지는
경주시 석장동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서쪽으로 산 기슭에 있는데
옛부터 절골이라 하던 곳입니다
석장사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에
양지스님은 이 절에 제가 있을 때면
지팡이 끝에 시주할 포대를 걸어 두기만
하면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 다니며 시주를
받아왔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석장사' 라고
하였다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기와조각과 축대
처럼 보이는 석단의 흔적이 있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곳이 신라 최대의 조각가인
양지스님이 기거하면서 숱한 작품을 남긴
석장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석장사였음을 확인시켜 준 유물인
'錫杖'이라고 쓴 묵서 자기가 출토된
석장사지 라고 합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의 정문 서편
원룸촌으로 유명한 석장동을 지나
우측 산 기슭 교회 입구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등산로를 따라 약 10여분 쯤 올라가면
석장동 입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마주치는
산 능선 작은 사거리에서
사진 속에 답사자가 내려가는 작은 길로 내려가야하는데
여기서 길을 잘 못 들어 큰 길로 계속올라가다 보니
능선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개곡 쪽으로 약 5분 정도만 내려가면 시누대가
무성한 곳이 건너다 보입니다
약수처럼 작은 관 속에서 물이조금씩 졸졸 흘러
내리고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지금은 잡초들이 말라서 답사를 하기 좋습니다만
이 풀이 무성한 여름철에는 들어가 볼 수도
없는 덩쿨식물들이 무성한 곳입니다
고분처럼 생긴 흙 무덤이 하나 있어서 알아 보았더니
무덤이 아니라 발굴 조사를 할 때에 모아
두었던 흙무더기 라고 합니다
석장사지에는 기와조각과 석재로 된 부재들이 몇점
남아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윗쪽으로는 무너지고 남은 축대도 있습니다만
오래된 축대의 모습 같지가 않습니다
석기둥은 팔각으로 되었으나 엇각으로 각 면의
폭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둥근 홈이 파져 있습니다
토함산 솔잎파리 솔뫼님이 각 면의 길이와
홈의 크기를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부서진 기와조각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만
위 사진에서 처럼 붉은 색을 띄는 것과
회색 기와들로 구분이 됩니다
풀 숲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대리석으로 된 석장사지(錫杖寺址) 라는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작은 개울을 건너서면 발굴당시에 모아두었던
흙 무더기가 고분처럼 둥글게 쌓여 있고
기와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곳이
직감적으로도 이 곳이 절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양지스님이 석장사에 주석하면서
석장 위에 포대를 걸어두면
석장이 저절로 날아 시주의 집에 가서
흔들리며 소리를 내면 그 집에서 알고
제 올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넣어 주어
포대가 차면 날아 돌아왔다고 해서
그가 살고 있던 곳을 석장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나옵니다
양지스님은 밀교적 신이를 구사하였으며
예술가로 특히 조각에 능통한
명장이었다고 합니다
영묘사 장육삼존, 천왕상, 전탑의 기와와 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과 법림사의 현판을 썼으며,
벽돌을 조각하여 탑을 만들고 삼천불을 만들어
탑을 만들고 절 안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예술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는 1986년과 1992년
2차에 걸쳐 이 곳을 발굴 조사하여 석장사의 사역과
규모, 사명, 출토된 유물과 양지스님과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으나
발굴조사 결과 초창 당시의 건물지로 보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유적층이 최하위에 존재하였고 이는 초창 이후의
하대 건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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