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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화재답사

동북공정의 고구려 옛 땅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0. 9. 23.

동북공정의 고구려 옛 땅을 찾아서

 

동북공정의 실태 잘 보고 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고구려 역사탐방으로

하고 1주일 정도로 여정에 올랐습니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 대비해서

 세운 박작성을 중국이 자기것으로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압록강까지 닿도록 조작을 한 웅장한

 규모의 만리장성과 같은 모습의 성을 새로 만들고

 호산장성이라 이름하였는가 하면 금강대협곡을

 장백산 대협곡이라 하고 졸본성을 오녀산성

이라 하는 동북공정의 흔적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북녘의 수마가 휩쓸고 간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고구려 역사탐방을 주선해 주신 솔뫼

김희진선생의 모습입니다

 

여정의 문을 열어 준다는 의미로

선두에 내어 보았습니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압록강 까지 닿도록 하기 위해

고구려의 작박성을 만리장성처럼 만들고

만리장성동단기점 - 호산장성 이라고

큰 벽화를 그려 놓았습니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의 끝부분 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곳을 관광자원화 하여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철교를 새로 만들어서

북한과 중국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철교 위로 버스가 중국쪽에서 북한쪽으로

지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만 김정일이

기차를 타고 지나갔다는 그 철교 입니다 

 

 

 

  

기찻길과 차량이 같은 길로 다니기 때문에

기차가 지나갈 때는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일행에 화력소가 되신 귀한 분들입니다

 

 

 

 

 멀리 보이는 바위절벽 위의 평지가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 나라의 기틀을 잡은 초기의

수도였던 졸본성인데 중국에서는 오녀산성

이라고 부르고 있는 곳입니다

 

 

 

 압록강변에서 북녘땅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인데 압록강을 따라 가다보니 중국쪽은 제방을

높게 쌓아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압록강이

범람하기만 하면 북쪽이침수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포장된 도로위에 짐을 실은 마차가 정식으로

통행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보과(一步跨)라는 표지석인데 북한과 한 걸음 거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과라는 글씨가

타넘을과 이고 보면 한걸으이라도 타넘으면 ...?

이라는 무시무시한 표지석 같았습니다 

 

 

 

 지척이라는 비석도 같이 세워져 있는데

아주 가까운 거리를 지척이라 하지만

지척에 두고 갈 수 없는 북녘땅을

바라만 보고 왔습니다

 

 

 

 중국이 만리장성 끝이라고 하는 동쪽 기점이

이 곳이라고 억지를 부리기 위해 고구려의

적박성 위에 요즈음 새로 만든 호산장성

이라고 하는 성의 문루 입니다 

 

 

 

 

 이 산성은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쌓았다는 박작성으로

추정하고 있는 바로 그 곳입니다

 

 

 

 

 박작산성의 윗쪽에서 내려다 본 모습인데 만리장성의

모습과 똑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고우니가 내려올 때 올라갔던 반대쪽 문으로

 나가는 바람에 미아가 될 번 한 바로 그 곳입니다 

 

 

바로 옆에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인데

 말은 통하지 않고 황당한 꼴이 되었답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우리 일행과는 너무 멀어진 뒤였지요? 

금강산 생각이 나드군요?

 

 

휴대폰부터 먼져 켜 놓고 무작정 내려오던 길로

뒤돌아서서 죽기살기로 뛰어 올라갔지요?

사진찍는데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과욕은 금물이라 했는데...? 

 

 

 

 일행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하늘 나라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중국 여행에서 두번째로 맞이하는 교회가 

성벽옆에 보란듯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집안으로 가는 다리입니다만 집안은 북한과

마주 보고 있으며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 입니다 

 

고구려가 가장 번성했던시기라고 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다는 위화도인데

때마침 압록강이 범람하여 당시의

모습이 짐작되는 것 같습니다

 

 

 

날씨는 덥고 강물은 범람하여 물난리가 났는데

먹을 양식은 부족하여 배는 고프고

 전염병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데

진군은 하라고 하니 공격을 했다 하면

죽으려 가는 길인데..어찌하오리까?   

 

 

 

 

우리 일행이 16일 이 곳으로 올라갔다가

18일 돌아왔습니다만

19일 폭우가 쏟아져서 이마을에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아파한 마을입니다

 

 

 

 국내성이 있었던 성터라고 합니다

 

중국정부에서 성을 개수하면서

옹성의 모습은 사라지고

평지성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구려를 대표하는 영웅

광개토태왕릉이라고 합니다  

 

광개토라는 말은 영토를 크게 넓힌다는 의미로

광개토대왕이라고 하였으나

이제는 광개토태왕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영토를 크게 넓혔다는 광개토 라는 말을

 쓰지 않고 호태왕이라고만 합니다

 

 

 

 공개토태왕릉 내부의 모습입니다

태왕과태왕비를 합장한 곳으로 추정합니다

 

중국에서는 진나라 이후 왕중왕이란 뜻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일본에서는 천황이라고 하고

고구려에서는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고구려 19대 광개토태왕의 능비로 414년

광개토태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다고

하는 광개토태왕비 입니다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던 비를 1928년

집안현 지사 유천성이 보호비각을 세우고

다시 1982년 중국이 대형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국의 어느 주유소 앞 화단입니다만

중국의 코스모스나 우리 코스모스나

모습과 색깔이 똑 같았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1287개의 개단입니다

 백두산은 단군이 탄강하신 성지로

신성시 하고 있는 곳이기에

모두들 기를 받을려고

기를 쓰고 오르는 계단입니다

 

이1287개의 계단을 나무계단으로 새롭게

만들고 있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백두산 밑 주차장에서는 그토록 좋든 날씨가

계단을 오를려니 춥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바람막이 옥을 입고 위에 우의를 껴 입고 

힘드려 올라간 천지의 입간판입니다

 

 

 

 천지라는 표지석은 선명한데 보고싶은 천지는

구름 속에 숨어서 부끄러운듯 그 모습을

보여주질 않고 있습니다

 

 

 

 백두산천지가 중국땅이라는 중국 5호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합니다

 

경비병들의 눈길을 피해서 담아보았는데

우리 땅에 저들이 세워 놓고

사진도 찍어서는 안된다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요?

 

 

 

 

 천지를 보지 않고는 그냥 올 수 없다는 의지로

기다리고 있기를 20여분 ...

 

천지가 드디어 살짝 그 모습을 흐미하게나마

그것도 1분이 체 되지 않을 정도의

순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기를 3분 정도 되었을까?

이번에는 좀 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고맙게 생각하고

기를 받아서 서둘러 하산을 하였습니다 

 

 

 

 

 지각변동으로 생긴 암벽 사이로 흐르는

계단 모양의 물이 흘러 가는 곳으로

제자하 라고 하는 곳입니다

 

제자하는 제운봉 양쪽에서 발원한 대소제자하가

합쳐서 이루어진 강물로 작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금강대협곡이라는 곳을

장백산대협곡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가던 자리가 풍화로 생겨난 협곡으로

바닥에는 맑은 물이 흐로고 있습니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의 모습입니다

비행기로 떠나는 여행보다 새로운 감을 느껴 볼려고

배를 선택해 보았는데 일반 선실에서 남녀구분 없이

머리를 마주하고 떠나는 여행이 한 번쯤은

권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소주 200여병을 넘게 먹었다고 하드군요 

이보다는 배로 떠나는 여행경비가 반값으로

해결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드리기 위해

인당수 깊은 물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를

건널 때는 갈매도 귀여운 갈매기가 아니라

성난 파도에 이를 갈고 있는 무섭고

포악스런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일행과 처음부터 끝까지 여정을 함께 해 준

동해의 초등학생 1학년과 3학년 꼬마

친구들의 깜직한 포즈입니다

 

 

 

귀국하던 날 경주로 오는 버스 예약 시간이 많이 남아서

 차이나 타운에 들려 보았습니다

 

맥아드 장군이 인천항의 상륙작전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고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공자상이 세워져 있고

그 옆길에는 벽화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의 평화스런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고우니 가족 여러분들의 원염지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만

하루만 일정이 늦어졌드라도

수마에 길이 끊겨서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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