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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화재답사

아방궁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0. 9. 29.

진시황의 황궁인 아방궁을 찾아서

 

경기도 성남시가 개청식을 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는 아방궁이 아니라 중국의 서안에 있는

진시황제의 황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 황궁은 동서 2,500m 남북 1,000m의 크기로

 앞쪽의 전(殿)과 뒷쪽의 궁(宮) 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정복하는 과정에서 경성(북경) 함양(서안)의 궁궐을 다시 짓게

 되었는데 이것을 육국궁전이라 하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육국에서가져온 보석과 미녀들을 보관해 두고

진시황이 매일 돌아가면서 즐겼는데  죽을 때 까지 돌아도

다 가지 못할 정도 였다고 하는 화려한 궁전입니다 

 

 

아방궁이라고 하면 우리들이 가보지 않고서도 그 화려함이 극치에 달했다는

아방궁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진시황의 황궁이 아방궁입니다

 

 

 우리는 호화스러운 면모를 보면 아방궁같다는 말을 종종 쓰고 있습니다  

성남시 청사가 얼마나 화려하게 건축되었는기에 아방궁을 검색했더니 

줄줄이 나오기에 중국의 아방궁을 한 번 올려 봅니다 

   

 

 서안과 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진시황이고

그의 황궁이 바로 아방궁이라는 궁입니다

 

 

아방궁은 앞쪽에는 전을 건축하고 뒷쪽에는 궁을 건축하였는데

전의 유적지는 동서가 1,300m 와  남북으로 500m의 60만

평방미터의 면적으로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방궁의 건설은 황제의 위엄을 보이기 위함이었고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황제에게

알현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정복하는 과정에서

 경성과 함양의 궁궐들을 다시 짓게 했는데

이것을 육국궁전이라고 하였답니다

 

 진시황이 12만 영주와 부상들을 함양으로 모았는데

함양궁에 숲처럼 빽빽히 들어서서

입구까지 꽉 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곳은 남쪽으로는 위강이 북으로는 고원을 접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넓힐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시황은 위강을 메워 남쪽의 평원까지 확장을 시켰다고 합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9년(서기 212년)에는

서주의 풍고 근처에서 아방궁의 전전(前殿)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아방(阿房)이라는 것은 근방(近房) 즉 함양의 근처를

의미하는 것이 아방 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은 미쳐 공사가 끝이 나기도 전에 죽고 그 2세가

이어서 공사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아방궁의 크고 작은 전우(殿宇)만

700여곳에 이른다고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고 해도 각각의 방이

모두 기후가 틀렸다고 합니다 

 

 진시황 생전에는 주변의 육국에서 가져온 보석과

미녀들을 궁내에 보관해 두었고......

  

매일 돌아가며 하루씩 각각의 방에 머물렀는데 죽을 때

까지도 다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진왕조의 정권이 서서히 붕괴되고 농민봉기가 일어나

항우가 병을 이끌고 함양을 함락시키면서 아방궁도

폐허가 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 아방궁은 1961년에 중국 국무원에 의하여

전국 중점 문물 보호단위 중의 하나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예쁜 여자들이 많이 있는 유흥 주점에 가면  남자들은

여기가 바로 아방궁이라는 말을 하는데 진시황 앞에서

무희가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진시황은 평생을 죽지 않고 살겠다는 인간으로서의 불가능한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하려 동방을 구석구석 뒤짚고

찾았던 진시황도 아방궁을 완성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시황의 이름은 정(政)이고 기원전 259년에 진나라의

군주 장양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중국이 전국 7웅에 의해 분열되어 각축을 벌이던 시대로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은 왕이 되기 전에

초나라의 불모로 가 있었는데

 

 그기서 부유한 상인 여불위(呂不韋)의 소개로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나중에 진시황제가 됩니다 

 

 

 진시황의 출생과정을 보면   어머니가 원래 여불위의 애첩이었는데

진시황인 정을 임신한 상태에서   장양왕이 되는 자초와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진시황은 여불위의 자식이라고도 합니다

 

 

 자초는 본래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을 여불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초를 왕위에 올려 장양왕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받은 왕이 바로 진시황제 입니다

 

  

현재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이 아방궁은 본래 영웅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그 규모를 10분의 1로

줄여서 만든 셋트장이라고 합니다

 

 

 최근 메스컴에서는 아방궁의 터를 조사한 결과 진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서 아방궁은 실제로 건축되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던 곳입니다 

 

 

 중국 진시황의 거대한 궁전 아방궁이 초패왕 항우에 의해 불탔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궁전 건축을 완성하지 못한채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항우가 도성을 장악한 뒤 불을 질러

아방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만 ......?

 

 

 역사 기록에 의하면 아방궁이 3개월 이상 불에

탔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고 합니다

 

 아방궁을 탐사하고 발굴한 결과 불에 탄 흙은 극히 일부만 발견되었다고

 하며 만일 역사의 기록처럼 넓은 지역이 3개월이나 불에 탔다면

불에 탄 흙이 많이 발견되고 목탄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별로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항우가 불 태운 것은 아방궁이 아니라 유적지에서 불에 탄

흙이 대량으로 발견된 함양궁이라고 합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이 세계에서 기와를 제일 먼저

사용했지만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아방궁 발굴에서 담장과 건축물

잔해에서 상태가 온전한 채로 발견되어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방궁을 말리장성 처럼 옛것을 복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역시 중국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영웅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셋트장이라니 황당하엿습니다

아무튼 찾아주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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