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법흥사를 찾아서
통일신라 말기 선문 9산중 사자산문의 중심도량인 흥령선원지의 옛 터이며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도윤국사와 정효국사 때
크게 산문이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성여왕 4년(891)에 병화로
소실되었고 고려 해종 1년 (944년)에 중건하였으나 그 뒤 또 다시
소실되어 천년 가까이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법흥사라고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정효대사 보현탑비, 정효대사 부도
법흥사 부도 법흥사 석분 등이 있습니다
법흥사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적멸보궁 법흥사 입니다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의 석상 앞에서 7일간의 정진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로 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발우 등을 전수 받아
사자산 연화봉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고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불보 사찰이라고 합니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와 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법흥사 금강문을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만다라전입니다
만다라전이라는 한글로 쓴 현판 글씨로 봐서 근대에
세워진 만다라전인 가 봅니다 갑신년이
1944년이고 2004년입니다
만다라는 밀교에서 발달한 상징의 형식을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
신성한 단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금강문을 지나서 사찰 앞까지 줄줄이 이어진
아홉개의 봉우리를 구봉대라고 하는데
소나무 숲길이 일품입니다
원래는 본질을 소유한 것이라는 의미였으나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윤원구족으로 번역을 한다고 합니다
낱낱의 살이 속 바퀴 축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사자산 법흥사의 지명 유래는 산새가
불교의 상징 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 와 같은 모든 지혈이 한 곳에
모이게 되는 길지이며
뒷산봉우리가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과 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자산 법흥사는 서기 847년에 신라말기의
선승인 도윤칠감국사가
중국 선종의 마조도일 선사로 부터 선(선)을
전수하여 이곳 사자산법흥사에
선문을 개창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구산 선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방대한 이 곳의 사자산문입니다
도윤칠감국사의 뒤를 이어 제자 징효절중 선사에
이르러서 사자산문은 더욱 번창하여
전국의 선승들이 사자산 법흥사를 찾지 않은
스님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도윤칠감국사와 장효절중선사는
당시 국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은 채
이 곳 사자산문을 나가지 않음으로써 전 불교계와
조정의 존경을 받은 고승이었다고 합니다
( 법흥사 산신각입니다 )
사자산 법흥사는 서기 643년 신라시대 때 창건 된 이래
서기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을 하였으며
그 후에도 1730년 조선 영조 6년에 3 창건을 하였고
1778년 조선 정조 2년에는 4창건을 하고
1845년 조선 헌종 11년에는 5창건을, 1939년 임시정부
당시 6창건, 그리고 이번 까지 일곱차례에 걸쳐서
중창을 하여 오늘날까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명찰 중의 명찰이라고 합니다
특히 여섯번째 창건 때에 씌어진 탄허대종사
친필 상량문이 적멸보궁 해체 때 나옴으로써
이 곳 사자산 법흥사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지였는지를 잘 말 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 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과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가 있고 종이가 업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가 남아 있으며 법흥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따구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흥사 징효대사보인탑비 는 보물
제 6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자산 법흥사중건비(獅子山法興寺重建碑)입니다
징효대사 절중은 신라 말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국사 도윤의 제자로
흥년사(법흥사의 옛 이름)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입니다
징효대사 보인탑비는 법흥사 입구 왼쪽
숲 속에 자리잡고 서 있습니다
징효대사보인탑비는 높이가 3.96m로
귀부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은 전형적인 부도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비신에 약간의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신에 유당신라국
사자산ㅇㅇㅇㅇㅇ교시징효대사보인지탑비명
(有唐新羅國師子山ㅇㅇㅇㅇㅇ敎諡澄曉大師寶印之塔
碑銘)이라는 글씨를 36행으로 새겨
징효대사의 행적과 당시의 포교 내용을
적어놓은 비문입니다
비문의 마지막에는 천복구년 세재갑진유월십칠일입
(天福九年歲在甲辰六月十七日立)이라는
기록이 있어 이를 통해 천복9년
곧 고려 혜종 1년(944)에
부도비를 세웠으며 보인이라는 탑호를 받아
징효국사보인지비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대석과 귀부는 하나의 돌이며 턱을 앞으로
쑥 내 밀고 있는 거북이 머리가 진취적으로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콧대가 우뚝한데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
험상궂어 보이기도 합니다
귀부의 등에는 겹으로 된 육각의 귀갑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귀갑문 안에 4엽의
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귀부의 네발은 방형의 지대석을 딛고 있는데
다섯발가락이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귀부의 등 위에 비신 받침대를 마련하고
각 면 마다 구름무늬를 조각하였으며
비신 받침대 위에는 연꽃 무늬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 위에 비신이 놓여 있으며 비신
위에 이수가 있습니다
상단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물이므로
절대로 사용하지말 것이며
중단은 불자님들의 식수용이고 하단은 바가지와
손을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이라고 합니다
이수는 모서리에 각각 한마리씩 네마리의 용이
목을 길게 뽑고 머리를 가운데로 내밀며
화염에 쌓여있는 보주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정면 중앙에는 고징효대사비(고징효대사비)라는
글씨가 전각체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징효대사부도는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는 부도입니다
몸돌의 앞 뒤에는 곽선을 두르고 자물통을
새긴 문비 조각이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보개와 보주가 남아 있습니다
부도의 건립연대는 징효대사 부도비와 비슷한 시기인
944년에서 94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이라고 합니다. 이 곳엔 대웅전이 없었습니다. .
대웅전을 대신한 건물인 것 같습니다
현판이 보이지 않는 극락전 안에는
아비타 삼존불이 정좌하고 있으며,
화려하고 고운 단청이 없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기둥과 창바, 주두와 첨차 소로와 출목 등의
모습들이 화려한 단청은 없으면서도
공포의 구성 자체부터가 걸작품인것 가은데
이 속에서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두를 장식한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용의 귀모양이 사바세계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듯 쫑긋합니다
용의 머리는 법당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데
용의 몸체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도
용의 꼬리만 법당 안으로 뻗어있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용은 물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법당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토굴과 사리탑이 있습니다. 토굴 봉토의 높이는
1.48미터이며 외곽의 지름은 4-72-5.77미터입니다.
적멸보궁 뒤 축대 위에 있는 석조 사리탑이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됐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토굴의 외부는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을 엎었는데 남향한 입구 쪽 정면만
높고 뒷편은 경사 때문에 약간 봉긋한 모양의 원형으로
마치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의 형태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지대석은 넓직한 1단의 층단을 마련하고
그위에 하대석이 놓여있습니다. .
하대석은 팔각의 하대와 연화대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대의 각 측면에는면상이 음각되어 있고, 그 안에는
큼직한 화형이 양각되어있습니다.
대석은 8각으로 각면에 양우주가 있고. 상대석의 측면
앙련부는 원형으로 위는 8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래쪽 3단의 괴임을 각출하고 측면의 앙련은 상하로
각 16판씩 단엽의 연판을 조각하였는데, 하단의 연판엔는
문양이 없으나 상단의 연판내에는 자방이 있는사화문을 조식하였습니다
제2보궁 약사전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연화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나무 숲과 저 멀리 구봉대산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만들어낸 와불의 형상을 바라볼 수 있는
복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법당 앞으로 보이는 구봉대산에 이어진 아기자기한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대산이라고 합니다
약사전 앞마당에서 멀리 구대봉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깨끗하고
불심이 강한 사람은 누워계신 모습과 같다는 구봉대산 와불을
볼수 있다고 하는데 사진이라도 한 번 와불의
모습이라 생각하시고 바라보세요
좌측이 와불의 두상이고 V자형으로 파진 부분이 목이고
우측으로 가면서 몸체라고 생각해 보시면
무언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두상만 크게 한 번 확대를 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마와 눈섭과 눈, 코, 입. 턱. 잘룩한 목의 윤곽이
보더 더 뚜렸하게 나타나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영월은 여러번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법흥사 답사는 이번이
초행길에다 볼 것들은 많은데 단체 행동이라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답사에 미흡한점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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