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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범어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11. 24.

범어사를 찾아서

 

범어사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절로,  범어사에 관한 현존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은 법장화상전 에 의하면 범어사는 해동 화엄종 10찰 가운데

 하나라고 기록 하였으니 신라시대 때 부터 있었던 사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숙종 26년에 담권이 남긴 고적이라는 기록에는 영조 22년

동계스님이 범어사 창건사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범어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선찰대본산 이라는 민족적인 사찰로

근대불교를 지향하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범어사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 한 점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을 비워야만 볼 수 있다고들 농담을 하는 목불조각상입니다  

범어사에 몇번 가 보았지만 이번에 처음 찾게 된 보물입니다  

 

 

 범어사는 당 문종 태화 9년(835) 을묘년이라 했으니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입니다

 

 

 처음에 올린 목불조각상은 법당 안에서 좌측에 있으며 천진난만한 동자상이라면

이 목불조각은 법당 안에서 우측에 있으며 여인내 상인 것 같습니다

 

 

 하마라는 석표 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곳을 자날 때는

말위에서 내리라는 표지석이라고 합니다

 

 

 범어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입니다

일반 사찰에서는 일주문이라고 합니다만 이 곳

범어사에서는 조계문(曺溪門)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인 조계문 우측에는

선찰대본산(禪刹大본山)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화엄종 사찰이었던 범어사가

현재는 선종의 사찰이라는 것을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일부문인 조계문 좌측에는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의 글은 주로 OO산 OO사 라고 적고 있으며 이 곳 범어사도

금정산 범어사 라고 이 예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일주문 중앙에 있는 조계문 입니다

1614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범어사로 들어가는

첫 번 째 문으로 일주문입니다

 

조계(曺溪)라는 명칭은 선종의 6조인 혜능이 살았던 중국 남부의

지명으로 이 명칭은 범어사가 선찰이라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은 통상 두 기둥을 일직선 상으로 나란히 한 일주문은

일심사상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합니다

 

건축 양식은 주로 다포계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바로 밑에

현판을 걸어서 그 절의 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범어사의 조계문은 돌기둥으로 독특한데

1718년에 세워진 그대로라고 합니다

 

 일주믄은 원래 나무기둥이었던 것을

명흠대사가 돌기둥으로 바바꾸었는데

흰개미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조계문을 지나만나게 되는 다음 건물이 천왕문으로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사천왕 상의 모습과 지물은 공간과 시간적

변천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사천왕상은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은나 ---

 

 

 중국과 한국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으로 변형되었으며

손에 들고 있는  지물도 시대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범어사의 천왕문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위공식 가구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건물은 초창기로 부터 --- 

 

 

 한 참 뒤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단청도

최근에 다시 한 것이라고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에 이르는 길은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이는 한국 불교 건축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모습으로

구현되는 황홀한 가람의 진입로라고 합니다  

 

 

사람 키보다 낮은 담장은 공간을 보호할려는 목적 보다는

적막한 길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건축양식이라고 합니다

뻗어오름을 강조하기 위해 양 옆에는 줄지어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키가 큰 나무는 길의 수평적 확장을 도와 주며 나즈막한 바닥의 단은

수평적 길이 수직적으로 변환하기 위한 암시라고 합니다

 

      

불이문은 1699년에 창건된 것으로 하단을 구성하는 삼문 가운데

마지막 문으로 현재의 문은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이 시대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핟고 있습니다 

 

 

 불이문은 수미산 정상의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불이문 어칸의 좌우에는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輝猷)와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幕存知解)라는 주련이 걸려 있습니다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輝猷)라는 말은 신령스러운 광명

즉 마음은 어둡지 않아 영원토록 밝게 빛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幕存知解)라는 말은

이 문에 들어 오면 지적인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뜻으로

20세기 초 범어사의 주지를 지낸 동산이 쓴 주렴이라고 합니다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통과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잘 못된 인식의 인간세계를 벗어나 불국정토를

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일주문은 수행의 첫 출발점을, 천왕문은 수행의 중간단계를,

불이문은 수행의 정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4개의 돌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곤포가 원통형의 석주까지 내려와서

지붕이 석주 위에 얹혀진 모습입니다

 

 

사천왕문은 인과의 도리를 모르는 무리들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교화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사천왕상이 좌우에 봉안되어 있으며

사천왕문은 개방이면서도 폐쇠적인 문이라고 합니다

 

 

 불이문은 사천왕문과는 달라서 천왕문이 신체적 위협을 가해서

교화를 한다면 불이문은 모든 것이 같다는

정신적 깨달음을 요구하는 문입니다

 

 

 사찰의 공간은 일주문이 시공간적으로 구분하는 공간이라면

천왕문과 불이문은 통과제의를 겪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요구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불이문을 통과하게 되면 하단구역은 마무리 되고 정면으로 보제루가

있는데 보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큰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보제루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돌아들면 너른 마당이 있는데

중단구역이면서 대웅전 앞마당이 되는 공간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제루 보다 높직한 축대 위에서 경내를 굽어보는 모습으로

이 마당을 중신으로 중단구역이 펼쳐지게 됩니다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입니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상륜부는 보주만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흥덕왕(826- 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 때 크게 수리를 하면서 기단 아랫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 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탑의 특징은 기단에서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을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습니다

 

 

의상대사가 범어사 삼층석탑을 건립한 3년후인 678년(문무왕 18)에

조성하였다고 하나 9세기 경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대석 위에 간주를 세운 뒤 그 위에 상대석은 화사석을 받치고

그 위로 옥개석을 덮었는데  각 부재의

평면은 8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륵전은 창건 당시에는 2층의 건물로 주불전으로 모셔질 만큼 중요한

 불전이었다고 하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현재의 건물은

 1889년에 건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행사가 있을 때 괘불을 걸어두는 괘불 당간과 당간지주의 

모습입이다 괘불걸이로 봐서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범어사 미륵전에 모시고 있는 목조여래좌상의 대좌는 석조로

조성된 8각의 하대석과 고복형의 중대석 및 목조연화좌인

상대석 등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범어사 창건기에 범어사가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다는 것과

 미륵석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과 부합되는 유물입니다

 

 

 범어사의 현존 비로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18세기 초 이후로 몇 차례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범어사에 전해 내려오는 비로자나삼존불의 중수 도금기에 의하면

 이 불상은 1638년 해민스님이 비로전을 중창할

당시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본 작품은 관음전 목조불상과 함께 조각승 진열의 작품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으며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문화재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이라고 하며 누구든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그 음성만 듣고도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중생을 구제 하시기 때문에 관자재보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범어사의 관음전은 금정산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누구든지

간절히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 진다는

소문으로 언제나 관음전은 불자들로 가득찹니다 

 

 

 지장전은 명부전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은 뒤

심판을 받는 곳으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법당입니다

 

 

저승에서 명부를 맡고 있는 심판관 10대왕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합니다 

 

 

  

지장보살은 머리를 깎은 비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석가모니불이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 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고 맹세한 보살로 유명하며

 왼손에는 쇠 지팡이를 들고 오른 손에는 밝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쇠지팡이는 지옥의 문을 두드려서 열고 밝은 구슬은 어두운

세상을 광명으로 비춘다고 하는 보살입니다

 

 

 산신각, 또는 만덕전이라고도 불리는 산신각은 산신령을 봉안한 당우로

한국의 사찰에서만 존재하는 각이라고 합니다

 

 

 한국불교가 토착화 해 온 과정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라고 합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국 고유의 토착신앙

이었으나 불교가 재래신앙을 수용하면서 부터 산신은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중이 되었다고 합니다

 

 

 산의 정기를 믿고 산신령을 믿음으로 산신을 섬기게 된 것인데

산신은 백발노인으로 표현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늘 산신 옆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산신은 불전에 그 근거가 없으므로 산신전이라 하지 않고

격을 낮추어 산신각이라고 합니다

 

 

산신각은 자식을 원하는 사람과 부를 기원하는 신도들의 산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한 칸 정도의 목조 산신각이 있습니다

 

 

 

범어사의 나한전, 독성전, 팔상전을 한 채에 달아서 만들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특히 1909년에 단장된 독성전은 문틀을 하나의 통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서 민든 독특한 모습으로 삼각형 벽체부분에는

 넝쿨형상을 조각하였으며 기둥과 맞닿는 역삼가형 부분에는

 목조불을 조각하여 모셔둔 것이 인상적입니다  

 

 

 독성각은 나반존자를 모신 당우로 나반존자는 나한 중의 한 사람으로

혼자서스승이 없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성자라고 합니다  

  

 

 나반존자는 홀로 남인도의 천태산에 들어가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철따라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이는 것 등 ---

 

 

 변함없이 운행되고 있는 우주의 운행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기의 이치나 육바라밀의 이치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깨우치신 분으로 특별히 전각을 지어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17세기 초 에는 따로따로 지어졌으나 20세기초

중건을 할 때 서로 합쳐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나한전은 석가삼존과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는데 당나라

 이후부터 크게 유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나한 신앙은 8세기 후반 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유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최남선은 나반존자를 단군으로 파악 하였으나

김현준은 이를 부정하고 나한 신앙이 분화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범어사는 산지형 사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화엄철학의 사찰 답게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 대웅전 등이 일직선 으로 가람의 축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의 범어사 종파는 화엄종이 아니라 선종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0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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