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궁녀의 한이 서린 낙화암을 찾아서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으로 들이닥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이곳 낙화암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다고 하는데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낙화암은 백제의 700년 사직이 무너지던 날, 왕을 모시던 궁녀들이 그 몸을 지켜
절벽위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백마강에 원혼이 되었다는 곳입니다
.
망국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이라는 천년 바위이며,
백제의 애환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김삿갓이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굽어보며 옛날의 비극을
그려보면서 썼다는 시가 생각 납니다
백마강 텅빈 자리 몇해 이런가 낙화암 꽃이 진지 몇해 이런가
만약에 청산이 말 할 수 있다면 백제의 천고 흥망을 물어 알련만 ...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하자 백제의 3,000 궁녀가 백마강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입니다다. 백제 멸망 이후 타사암을
미화하여 낙화암이라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고기에는 부여성 북쪽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을 임하였는데 의자왕과 모든 후궁이 함께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차라리 자살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하여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한 후, 당에 압송된 후 병사하였다고 합니다.
3,000 궁녀도 부여성이 함락된 후 당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치던 아녀자들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바위면에 '落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옛날 백제의 의자왕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치와 향락에 빠져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이 이루어졌고,
그때 궁녀들은 우왕좌왕 하면서 어찌할바를 몰라했는데,
한 궁녀가 앞에 나와서 이대로 떨어져 죽을 지언정
신라군에게 아부하지 않겠다 해서 모든 궁녀들이 그말에 동의해
궁궐을 빠져나와 백마강이 훤히 보이는 바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궁녀들은 한 사람 씩 바위에서 떨어졌고,
그 모습이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꽃잎과 같다해서
바위의 이름이 '낙화암'이 된것입니다.
삼천 명의 궁녀가 백마강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낙화암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때 삼천명이나 되는 궁녀가
한꺼번에 떨어졌을리는 없다고 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라고들 하지요
낙화암 절벽에는 3,000명의 궁녀가 설 자리도 없습니다
경주의 포석정이 경애왕을 비하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라가 아마 백제 정벌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서
삼천궁녀란 과장된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부소산성에서 백제가 멸망을 맞을 때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이곳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입니다
낙화암 천년송입니다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의 절벽입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강 위례성(서울)에 터를 잡은 후, 웅진(공주)을 거쳐
사비(부여)에 이르러 가장 독자적이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합니다
백제는 세 번째 왕도 부여에서 123년간(538~660)의 선진문화를
중국과 일본을 통하여 활발하게 교류하며, 동아시아를
주도하는 해상강국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라는
백제문화의 진수를 맘껏 느낄 수있는 곳입니다.
백제의 왕궁과 백제 도성으로 이용되던 부소산성, 삼천궁녀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낙화암,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1400년을 꿋꿋이 지켜온 정림사지 오층석탑,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과 백제 무왕인 서동의 탄생 설화가 전해오는 궁남지, 서동공원, 백제 왕족의
무덤인 백제왕릉원, 국립부여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1박 2일 동안 백제권 문화를 찾아서 공주와 부여를 다녀 왔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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