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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봉정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6. 26.

봉정사를 찾아서

 

안동군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봉종사는 천등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이 이곳에 내려 앉아 절을 창건

하였다고 합니다 창건 한 후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되고 있는 극락전이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보물 제 55호

로 지정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 등의 건물들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축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학

연구에 많은 두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미산으로 들어갈 때 거쳐야 하는 세개의 문 가운데 첫번째 문인 천등산 봉정사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수미산으로 들어가는 첫관문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이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고 하며 또 한 개의 기둥위에 지붕을 얹은 문

이라는 의미도 되고요 세속의 어수선한 마음을 거두고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 일주문 입니다

 

 

봉정사를 알리는 아내판입니다  이 사찰은 안동군 서후면 태장리에 속하는데

이곳은 고려 때 왕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옛 태무지

태장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미산에 오를때 목을 추겨 가라는 감로수 입니다 

더위를 식혀주는 생수입니다

 

 

 지조암을 알리는 표지석 입니다

 

 

 봉정사 창건 설화는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의상대사가 삼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천등산에 올랐을 때 선녀들이 나타나

 횃불을 밝히고청마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보았더니

지금의 대웅전 자리 였다고 합니다 

 

 

 이 봉정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 천마산이라 이름지어진 것도

청마가 나타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의상대사가 수도를 마친 다음 종이로 봉을 마들어 날렸더니 학가산을

맴돌아  다시 기도처인 대웅전 자리에 머물렀다고 해서

봉이 머문 자리라는 뜻으로 봉정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의 창건설화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이 창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 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으로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의 이름을 천등굴이라고 하였답니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 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열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 라고 전해지는 설이 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 후 6차에 걸쳐서 중수를 하였으며 봉정사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건축물과 조선시대의 건축물이 나란히 있어서

우리 건축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만세루가 있는 현판 글씨 입니다

 

 

  법고와 목어가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범종각에는 범종 만 따로 떨어져서 새로 조성한 것 같습니다 

범종각에는 목어, 운판, 법고, 범종 등의 네가지 법구가 모여있습니다   

 

 

 고금당은 조선 중기의 목조 건물로서 보물 제 449호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극락전 앞 왼쪽에 세워져 있으며 평면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공포는 익공에 가까운 주심포계.

가구는 무고주 7량 건물입니다

 

 

고금당은 1969년에 해체 복원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616년에

고쳐 지은 사실이 있으나 처음 건립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고금당은 당초  남쪽에는 우화루가 있어서 남쪽 지붕이 이 건물과

연결되고 그 아랫쪽은 부엌으로 사용했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 하면서 철거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되고 있는 극락전이

국보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극락전은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지은

배흘림기둥에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1972년에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1625년에 작성된 상량문에 의하면 1363년에 건물의

 지붕을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서 적어도 고려 중기인 12 - 13세기 경에

 세워진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인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봉정사 극락전 앞 뜰에 있는 이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3.18m이며 기단부가 조금 파손되었고 상륜부 일부가

남아있지는 않으나 그의 완벽한 3층 석탑입니다  

  

 

2중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에 폭의 체감율이 적고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 탑은 봉정사의 극락전과 건립연대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어 당대의

다른 석탑과 비교하여 특별한 점은 없으나 고려 중엽의 석탑

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석탑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하던 석재인지요? 넓게 파 놓은 면석에 물빠짐 홈까지

 파 놓은 걸 봐서 예사 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무 기둥을 이어서 만든 모양입니다만

모가 난 기둥은 각이 똑 같습니다

 

송암당 현판 글씨가 아름답습니다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건물로 초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자연석의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입니다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한 이 건물은 산 중턱에 세워진 건물이면서도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입니다

 

 

 불단 위에는 연화좌를 놓고 삼존불을 봉안하였는데 주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우 협시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입니다

 

 

 후불탱화를 보수하기 위하여 불사를 할 때 희귀한 벽화형태의 후불탱화가 하나 더

발견된 이 탱화는 수미단과 보개를 연결하는 주불 뒷벽에 채색으로

 그려진 가로 세로 약 417cm 크기입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초기 불화 자료가 희귀하고 조선전기 이전의

후불벽화도 1476년에 그려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도가 유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는 한국불화의 도상과 양식 연구 뿐 아니라

회화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봉정사 영산암은 봉정사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부속 암자입니다

 

 

이 영산암에는 응진전, 임화실, 삼성각, 우화루,

관심당 등 5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물의 구체적인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자료로 볼 때

1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口 자 형으로 구성되어 폐쇠적인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지형의 높이를 이용한 3단의 마당 구성과

 

 

 우화루의 벽제를 없애고 송암당을 누마루로 처리한 기법 등에서 폐쇠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조성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 양식입니다 

 

 

 우화루와 송암당의 건축 구조와 삼성각 앞의 조경에서

뛰어난 공간 수법을 였볼 수 있는 조경기술입니다

 

 

 우화루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득도 한 후 법화경을 처음 설법 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영산암의 입구에 해당되는 우화루는 원래 극락전 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봉정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 448호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 주심포, 맞배지붕인 건물로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 있습니다 대웅전 앞마당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이 소나무는 이 곳 태장리 마을 나무로 지정된 보호수로 수종은 소나무로

 120년 정도의 수령으로 사람처럼 11 - 14- 4- 3- 2 라는

 고유번호를 부여 받은 나무입니다  

 

 

 봉정사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개곡쪽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명옥대(鳴玉臺) 입니다

 

 

옛 이름은 낙수대였으나 육사형의 시에 나오는 솟구쳐 나오는 샘이 명옥을

씻어 내리네 라는 글귀에 따라 명옥대라는 이름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선 현종 6년에 건립한 누각 형태의 정자 입니다 

 

 

 명옥대를 알리는 사적비 입니다 맞은 편 바위 표면에

명옥대라고 새겨놓은 글이 남아 있습니다

 

 

 자연석의 초석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평면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4면 모두를

개방하여 주변의 경관을 구경하기 좋게 하였습니다

 

 

 봉정사 좌측 골짜기에 있는 건물입니다만 지붕의 반쪽에는

기둥도 없고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아서 올려 봅니다

 

 

 천등산 봉정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입니다

 

 

 언제나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무진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무진회 그이름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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