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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강릉 보현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6. 6.

강릉 보현사를 찾아서

 

보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진덕여왕 4년(650)에 자장

율사가 처음 세운 사찰로 낭원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하며 지장선원이라고 하다가 후에

보현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3단의 장대석 기단을 설치한

 다음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양식 겹처마 팔작지붕 입니다

경내에는 낭원대사의 사리탑인 낭원대사오진탑과 탑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보현사는 강릉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낭원대사오진탑과

오진비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씁니다    

 

 

 보현사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지만 낭원대사오진탑과

낭원대사오진탑비가 사찰 입구에서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강문이 있는 금강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찰의 규모가 작아서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을 세우지 못할 경우에는 법당 출입문

 아래에 도깨비 형상을 놓기도 합니다

 

 

 수미산의 중턱에 있는 사천왕문으 대신하여 금강문이 있기도 합니다

 

 

금강문 안에는 금강역사가 자리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금강역사는 불탑과 사찰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여 인왕역사라고도 합니다 

 

 

 금강에는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의 둘이 있으며 들어가는 쪽에서 보아

오른 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밀적금강이 있다고 합니다

 

 

 오른 쪽에 있는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힘을 가진 역사로 그 힘이

코끼리의 백만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왼쪽에 있는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을 모두 듣겠다는 서원을 세운 신장입니다

 

 

 보현사 대웅보전은 강원문화재자료 제37호로 조선 후기에 세운 건물로 그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각각 3칸씩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의 포집이라고 합니다 

 

 

 법당안에는 토제의 3존불이 봉안되었는데

근년에 도금을 다시 하였다고 합니다

 

 

보현사 창건에 관한 설화는 신라시대 불교 4보살 가운데 한 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

하였다고도 하며  신라 때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돌로 된 배를 타고 천축국으로

 부터 강릉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문수사가 지금의 한송사지로 알려진 곳이라고 합니다

 

 

 문수사가 완공되자 보현보살이  한 절에 두 보살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나는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새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고 하였답니다

 

 

 보현보살이 신력으로 활 시위를 당기자 화살은 멀리 날아가 현재의 보현사

위치에 떨어져 이 곳에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화입니다  

 

 

 불전의 벽화는 황토로 만들어진 벽에 백토를 붙여 단장을 하고 금색의 단청을 입힌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심우도는 자기의 본래의 마음을 찾아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십우도라고도 합니다  

 

 

 십우도는 1,소를 찾으러 가서 2,소의 발자취를 발견하여 3,소를 발견하고 4,소를 붙잡아서

 5,소를 길들이고 6,소를 타고 깨달음의세계인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7,소가 달아날

걱정이 없으니 안심이되고 8,다시 사람도 소도 본래의 공임을 깨달아서 9,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10,중생을 건지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10단계의 그림입니다 

 

 

서방의 극락세계를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험난한 파도를 해쳐 나가는 배는 반야용선 뿐이라고 합니다

 

 

보현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있는 석조사자상으로 이 사자상은 아마도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용하였던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계단 바로 앞에는 부재들의 일부가 없어진 석탑이

석사자와 나란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면석이나 옥개석들의 형체조차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마무가 심한 상태입니다

 

 

 영산전으로 가는 계단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는 석물인데 마모가 심한 불상의

몸체인 것 같기도 한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우도가 그려진 벽면에 그려진 불화인데 수미산 입구에서

불자들을 마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단장을한 삼성각입니다

 

 

삼성각에는 산신, 칠성, 독성이 아니라 고려말의 삼대성승 으로 추앙받았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주장이 석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새로 지어진 범종각입니다  이 범종각 밑에는

 그 유명한 낭원대사오진탑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보현사 물레방아는 나무아미타불 관새음보살을

외치면서 쉬지않고 돌고 있습니다

 

 

보현사 경내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한가닥 폭포수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겨 주는 것 같습니다

 

 

보현사 낭원대사오지탑비는 보물 제192호로 대사의 출생에서 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국사로 예우한 사식과 낭원대사가

입적하기 까지의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낭원대사가 태조 13년(930)년에 96세로 입적을 하자 시호를 낭원,

탑호를 오진이라는 탑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스님의 부도는 보현사 서쪽 산능성이에 있고 행적을 기록한 비문은

경내의 범종각 아래인 현 위치에 있습니다

 

 

탑비의 꼭대기에는 석탑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복발과

보륜이 있고 화염에 쌓인 보주를 얹어 놓았습니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해 놓았습니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 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비좌가 있습니다

 

  

 보현사 낭원대사 오진탑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려 놓은 모습입니다

 

 

 대사가 입적한지 10년 뒤인 고려 태조 23년(940)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로 알려진 최언위가 짓고 서예가인 구족달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낭원대사오진탑비는 사각의 지대석 위에 용두형 귀부를 얹고 그 위에

높은 비신을 세운 전형적인 부도비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현사 입구에 있는 부도밭입니다 부도는 8각원당형, 석종형,

특수형, 탑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도는 그 절에서 수행을 하여 일정한 수행의 단계에 오른

고승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확인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멀리 강릉 대관령에 있는 지장선원 보현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보현사는 강릉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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