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의 주왕암을 찾아서
청송 주왕산에 있는 사찰로 대전사를 지나서 맑은 물이 흐르는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당나라 주왕의 원한이 맺혀 있는 원한의 꽃이라 하는 수달래가 반겨 주고 있으며 멀리
하늘을 쳐다 보노라면 주왕과 마장군의 싸움에서 주왕은 이 바위를 노적가리로
위장을 했고 마장군은 전투에서 승리한 기쁨으로 대장기를 세웠다고 하여
기암이라는 잘 생긴 바위를 바라보다 다리를 건너면주왕암이라는
작은 암자와 주왕굴을 보실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주왕암
주왕암은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의 입구에 지어진 암자라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인 문무왕 때 대전사와 함께
의상조사가 창건한 고찰이라고 합니다
대문채인 가학루는 중층 누각으로 지어졌으며 대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일주문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전사 동쪽 비탈진 계곡을 올라가면 안절이라는 별칭이 있는 주왕암이
있는데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합니다
주왕암은 대전도군이 아버지 주왕의 이름을 따서 주왕암이라는
암자의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주왕암은 자칭 주왕이었던 주도가 신라 신라의 마장군에게 피살된 후 그 아들인
대전도군이 아버지의 명복을 기원해 불법의 진리를 탐구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 주왕암에는 나옹화상을 비롯하여 도선국사, 무학대사, 등 여러 선사와
최치원, 서거정, 김종직 등 고명 인사들의 수도장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전사 동쪽 비탈진 계곡을 올라가면 안절이라는 별칭이 있는
주왕암이 있는데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합니다.
주왕굴 입구 촛대봉 아래에 제비집처럼 날렵하게
지어진 암자를 주왕암이라고 합니다.
대전사에서 폭포가 있는 골짜기로 이십분 정도 걸어가면 주왕암이 있고.
주왕굴 입구에 자리잡고 조선시대에는 주방사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문간채인 가학루는 중충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히 끼어
오랜 풍상을 보여주며 16나한을 모신 법당 나한전이 있습니다.
대전사에서 제1폭포쪽으로 오르다가 첫 번째 만나는 휴게소에서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주왕암으로 가게 됩니다.
주왕사적에 의하면 신라말 892년 낭공대사가 대전사보다 먼저 창건
하였다 고도 하는데. 산수 좋은 곳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어 스님들이 공부처로 탐을 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주왕암에는 나한전 가학루 산령각등의 당우가 있는데 나한전은
영험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기도처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신라때 중국의 주왕이 피신와서 머물렀다는 곳이 주왕굴입니다.
산수 좋은 곳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어 스님들이
공부처로 탐을 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주왕암입구에 서면 양사면이 바위 봉우리에 쌓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촛대봉이 높게 절뒤를 막아서고
오른쪽으로 큰 절벽사이에 작은 협곡이 나 있습니다.
주왕암 뒤안길 오른편에 협곡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이 아득히 내다 보이는 좁은 바위틈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거대한 암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약 50여m 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가로 2m 정도의 동굴이 있는데 주왕이 마장군에게 쫓겨서 숨어 살았던 동굴이라 합니다.
옛날엔 이 굴안에 영탱이 한점 놓여 있었는데 최근 주왕암
산령각으로 옮기고 이 자리에 석상이 놓여 있습니다.
뒤 산길로 조금 오르면 주왕굴이 있고 위에서 떨어지는 물에 세수를 하다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엔
아직도 변함없이 물방울이 무심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왕암에서 내려가는 길목입니다 등이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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