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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전) 진평왕릉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0. 9. 24.

 진평왕(전)릉을 찾아서

 

이 능은

신라 제26대

진평왕릉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재위기간은

박혁거세 다음으로 오랜

54년간이며 무덤의 형식은 원형

봉토분으로 무덤 밑 둘레에 둘레

돌을 둘렀으며 이 능은 아무런 부대

시설이 없이 들 가운데 있는 단순한 

모습입니다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역사의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답니다

 

 

전 진평왕릉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24대 진흥왕의 장손으로

 진흥왕에게는 동륜과 사륜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륜태자가 일찍 죽자 그 동생인 사륜이

왕위를 이어 25대 진지왕이 됩니다

 

그러나 진지왕은 즉위 4년만에 정치가 어지럽고

 황흠하다는 이유로 화백회의에 의해 폐위 당하자

 

 그 뒤를 이어 동륜태자의 아들 백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니 곧 26대 진평왕입니다

 

 

 

전 진평왕릉의 위치

 

 

 

봉분의 높이는 7.6m 밑둘레의 지름은 38m 의

 원형봉토분으로 왕릉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지(漢只)에 장사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해

 현재 보불로 옆 숲머리마을 남쪽 보문들에 있는

 이곳을 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는것입니다

 

 

왕릉 보호석렬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둘레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렬을 갖춘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 개 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왕릉 보호석렬(2)

 

 

이와같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자연석렬을 

 마련한 예는 삼국말기와 통일신라

초기에 보이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왕릉과 바드나무

 

 

 왕릉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그 둘레를 장식하고

있으나 이 곳 전 진평왕릉에는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있는 계립의 시림처럼

아름드리 해묵은 버드나무가 왕릉을

지켜주고 있는 특이한 곳입니다

 

 

외과 수술받은 버드나무 

 

 

 시림아라는 계림숲에도 이와 비슷한 나무들이

있습니다만 왕릉을 보호해 주는 보호수로는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경주시가지를 바라본 모습

 

 

가까이 보이는 산이 낭산이고 잘룩한 부분의

 사이로 보이는 산이 보희의 꿈이야기에

 나오는 선도산입니다

 

 

전황복사지와 삼층석탑

 

 

망산의 잘룩한 부분 하단중간 쯤 황복사지

3층석탑의 모습이 흐미하게 보입니다만

 

 진평왕릉과는 보문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부부총의 위치

 

 

 울창한 버드나무 숲 중간부분으로 보이는 산

 해발 252m 능선 쯤 있으며

 

돌무지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 연결되어

 표형분을 이룬 것으로 보문리 부부총

으로 조사 보고 되었습니다 

 

 

신라의 3가지 보물

 

 

 고려왕이 신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면서 신라에는

 3가지 보물이 있어서 공격을 할 수 없다는데

 무엇을 말하느냐고 물으니

 

첫째는 황룡사의 장육존상이고

둘째가 그 절에 있는 9층탑이며

 셋째가 진평왕의 천사옥대

 

라는 말을 듣고는 신라를 공격할 계획을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원광스님과 걸사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면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원광스님이 작성한 걸사표의 내용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멸하는 것은 승녀의 도리가

 아니지만 제가 대왕의 나라에서 대왕의 수초를

먹으면서 어찌 명령을 따르지 않으리오 

 

이때가 진평왕 30년이며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석성과 토성이 있다는 명활

 

 

 버드나무 숲 뒤로 보이는 산이 석성과

토성이 있는 명활산성입니다

 

 

진평왕과 서동요 

 

 

신라 진평왕때 백제에서 신라로 간 서동이

 선화공주가 자신과 몰래 정을 통하고 있다는

 노래를 지어 퍼뜨려서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무왕설화로 원래는 민요였으나 향가에

편입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1370년만에 베일 벗은 미륵사의 발굴 현장

 

 

 문화재청은 1월 19일 국보 11호미륵사지석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탑 1층 심주 안의 사리공에서

 

 국보급 금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등 유물

505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판독 결과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백제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는 기록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전래설화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귀족의 딸인 백제 왕후가

 창건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미륵사가 639년에 창건됐다는 기록도 있어서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의 창건연대와 내력이 확인된 것으로

1370년 만에 백제 미륵사의 베일을 벗어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대 답사 모습 

 

 

추위를 잊은듯 해설에 열중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도 진진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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