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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감은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9. 22.

감은사지를 찾아서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동해로

쳐들어오던 왜구를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내기 위하여 세운 절로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으며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쌍탑이 

있습니다   1당 쌍탑식 가람  

 

 

감은사지 쌍탑 

 

 문무왕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를 물리치고자

 진국사라는 절을 짖기 시작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어 지의법사라는

 려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것을 유언하고

 

죽자 화장을 한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이름을 고쳐

 감은사(感恩寺)라고 하였답니다

 

 

 

 감은사터

 

 감은사는 1당쌍탑식 가람으로 남북의 길이보다

동서회랑의 길이가 길게 구성되었으며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의 회랑을 연결하는 중회랑인

익랑을 둔 점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금당터

 

 중문 북쪽으로금당 앞과 좌우에는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

 두기가 있으며 두 탑의 중앙부 후면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지가 있습니다

 

 

금당의 바닥 구조는 H 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장방형의 석재를

 깔아서 돌마루를 놓은 것 같습니다

 

 

 

건물 조초들의 흔적

 

건물을 받쳤던 기둥들의 받침대인 듯 한데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만들었습니다

 

 

 

    

바닥구조를 H자 모양으로 한

부재들입니다

 

 

 

중문 북쪽 계단

 

 금당의 기단은 밖에서 거리를 두어 장대석을 돌리고

 그 안에 폭이 좁은 판석을 깔아 2중 기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갑석의 상 외단부의 모서리를 곱게 다듬고

 장식을 한 흔적들이 있습니다

 

 

 

 

 

 계단과 석축 하나하나에도 그랭이공법으로

 서로 잘 맞물리도록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계단을 만드는데도 장식을 하고 받침대에는

홈을 파서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은사 기단의 특성은 기단 위에 건물이 설 자리는

 초석과 보를 걸어 이 위에 장대석을 마루처럼

 촘촘히 깐 상판석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초석을 배열하여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단의 동북쪽에는 기단 밖에서 건물 및 지하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고 기단 동쪽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

배수나 환기를 잘되도록 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동서 3층석탑

 

 이 탑은 국보 제112호로 제일 윗부분의 철주까지의

 높이가 13m로 국내의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서 가장 큰 탑입니다  

 

 

삼국시대에는 경배 대상이던 1탑 중심의 탑이

삼국통일이 된 뒤에는 금당 앞 좌우에 2개를

 세우게 되는 쌍탑가람형식으로 가는 최초의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동 3층 석탑

]

감은사의 금당 밑에는 해룡이 된 문무왕의 넋이

드나들 수 있도록 용혈을 뚫었다고 하며

 

금당 밑은 돌로 된 기단을 만들어서 그 위에

건물을 올리도록 건축되었습니다

 

  

 보수 중에 있던 서 3층 서탑

 

 동.서탑 중에서 서탑은 1959년 12월에, 동탑은

1996년 4월에 해체 보수되었다고 합니다만

 

보수된 이후 대기오염과 해풍 등로 인한 훼손이 심하여

동탑은 해체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보존

및 강화 처리 작업을 하고 있고,  

 

서탑은 아랫 부분에 대한 보수작업을 위해 가림막과

 가설구조를 한 모습입니다만 최근에 철거 하고

약 3개월정도 서탑과 동탑에 대한 보수공사가

 더 진행될 것이라고 합니다

 

 

 

서 3층 석탑

 

1959녀년 12월 서탑을 해체하여 수리를 할 때

3층 탑신 사리공에서 나온 청동사리함 장치는

 희귀한 유래라고 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상륜부의 쇠로 된 찰주

 

노반 위에 보이는 찰주의 높이가 3.5m 그 아래로 제 3층

 옥계석의 중심에 꽂힌 부분이 약 1.3m 로 찰주의

중간부분에 가공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륜부는 모두 석재로 구성되어 있었던

 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정비가 되어가고 있는 탑의 모습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용혈인가요?

 

 금당 아래에 용혈을 파서 용으로 화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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