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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숭복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9. 24.

숭복사지를 찾아서

 

 

숭복사지는

 경주에서 울산 방면 

말방리라는 토함산 기슭에

있으며 원성왕 릉이 있던 곳에

곡사를 옮겨 지었으며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 비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동탑과 서탑만 남아있고 

 대숭복사비의 거북모양 받침돌은 국립

경주 박물관 입구의 정원에  옮겨져서

박물관을 찾아 오시는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  숭복사지  

 

 

 

숭복사지 동. 서 삼층 석탑

 

 

 

 

원성왕의 원찰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던 숭복사에는

 진성여왕대에 최치원선생이 찬한 4산비명 즉

 

 성주사 낭혜화상비, 쌍계사 진감선사비, 봉암사

지증대사비, 숭복사비 중 유당신라국초월산

대숭복사비명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동쪽에 있는 3층 석탑

 

 

숭복사지의 동쪽에 있는 3층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3삼층석탑으로 2층몸돌이

없어지고 윗부분도 없어졌으나

 

하층 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가 있고

갑석에는 몰딩이 있습니다

 

상층의 기단 면석에는 각 면을 2구씩으로 나누어

 8부중상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습니다

 

 

 

서쪽에 남아 있는 2층 석탑 

 

 

 숭복사지의 서쪽에 있는 3층 석탑은 양식과

크기가 동탑과 거의 같으나

 

2층과 3층의 탑신석과 상륜부가 없어졌으나 탑신부는

 탑신과 옥계석 모두 1매로 되어 있는데

 

 

초층의 탑신에는 4면에 문비형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 귀부 

 

 

귀부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입구의 정원에 있으며  얼마전에

 발견된 무장사지 아미타조상 사적비 귀부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로 입 부분이 약간 파손되었을 뿐 완전한 형태로

 눈이 툭 불거진 용두화한 모습으로

 

 

양 턱에는 볼수염이 옆을 타고 귀 밑까지 뒤로 휘날리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어 귀두가 용두화 되어가는

신령스러운 거북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국립박물관 현장답사

 

 지난 여름 경주의 향토사학자이신 김윤근선생님으로 부터

문화유산해설 현장답사를 하면서 박물관 앞뜰에서

 

 6월 10일 13시 43분 한 낮 더위도 잊은체

강의를 하시고 있는 열성적인 모습입니다 

 

 

 

숭복사지에 흩어져 있는 부재

 

 

숭복사지는 평지의 지형이나 금당과 석탑의 배치

 형식이 불구사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금당 앞에 탑이 동서로 배치되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많은 부재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곡사를 숭복사터로 옮겨지게 된 까닭

 

 

  

원성왕릉을 곡사자리에 쓸려고 하자 절 자리를

 뺏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반대도 있었으나

 

절은 자리하는 곳 마다 교화되며 어디를 가도 재앙의

 터를 복된 땅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곡사터에

 

왕릉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서 곡사는 지금의

 숭복사터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8부중상의 명칭

 

 

8부중상의 명칭과 특징은

 

 긴나라(소와 말,새)   마후라(왼손에 뱀)   천(오른손에 금강저)

야차(새의 부리)   아수라(삼두팔비, 해와 달)   건달바(사자머리)

가루라(입에 염주)   용(머리에 용 손에 여의주)의

형태와 지물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탑과 탑의 종류

 

 

 

 탑은 인도어 스투파를 한자로 탑파의 준 말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며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우리나라는 석탑이 유행

하였으며 분황사 모전석탑처럼 전탑의 모양을

 본 딴 모전석탑의 형식도 있습니다

 

 

8부신중

 

 

 탑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풍경같은 장신구를

 달았던 구멍인 것 같습니다만

 

그 구멍의 크기가 다른 탑 보다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 

 

 

사천왕상은 인도신화에서 사방을 지키는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의 이상세계인 수미산 아래서

 

동서남북을 지배하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바른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방에는 지국천왕, 서방에는 광목천왕, 남방에는

증장천왕, 북방에는 다문천왕이 있으며  8부신중을

 권속으로 거느린다고 합니다 

 

 

사천왕상

 

 

 1929년 후지시마가이찌로오라는 사람이 서쪽 돌계단

 아래서 국사대웅(國寺大雄) 개와대웅 이라고

 씌여진 평기와를 발견함으로써

 

이 절이 국사 였으며 조선시대까지 존속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방리사지에서 숭복사지가 됨

 

 

1931년일본인 고고학자인 오오사까긴따로오라는

 사람에 의해 절터가 발견되었으며

 

비편이 발견되기 전 까지는 이 곳 지명을 따서

 말방리 사지 라고 부렀습니다  

 

 

 

숭복사지 현재의 모습

 

 

 

동탑과 서탑 사이로 보이는 2층 건물이

 숭복사라는 사찰입니다만

 

요즈음은 절도 조립식으로 점점 현대화

되어 가는가 봅니다

 

 

숭복사지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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