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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김윤근 선생과 함께한 경주남산문화유적 답사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08. 10. 6.

 

 

이 곳은 까마귀가 신라 소지왕(炤知王, 재위 479∼500)의 목숨을 구한 전설이 서려 있는 연못이다.

어느 날 소지왕이 궁 밖으로 거동하니 쥐가 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따라가 이 못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射琴匣]"라고 쓴 글을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匣)을 쏘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 숨어 있던 궁주(宮主)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뒤로 이 못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에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이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경주지방에는 정월 보름날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다 찰밥을 묻는 '까마귀 밥주기' 풍속이 있다고 한다.

이 연못가에는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 지은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새로지은 산수당과  얼마전에 준설을 한  있는 못(?)이 보인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탑은 이중(二重)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형이다.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四方佛)로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고위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맥이 다시 한번 용솟음 치는 곳에 봉화대가 있고, 그 아래 천길 절벽 아래에 칠불암과 신선암이 자리잡고 있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菩薩像)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의 곧바로 선 절벽 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 보살상(菩薩像)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臺座)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이다.

 

 

발은 연꽃 위에 있으며, 이처럼 유희좌(遊戱坐)*를 표현하였음은 드문 예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남산과 천룡사를  수 없이 다녔지만 이 바위가 천룡의 전설을 간직한 천룡바위라는 이야기를

김윤근 선생님께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 감회가 새롭다


 

하늘 위에 병풍을 두른 평원이 있고, 하늘 위에서는 천룡이 용트림하면서 하강하는 곳. 이곳이 바로 남산의 천룡바위의 절경이다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남산 남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고위산이라 하고, 산 남쪽의 절을 고사(高寺) 또는 천룡사(天龍寺)라 기록하고 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결과 7개소의 건물터를 확인하였다.

 

 

         이 탑은 천룡사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91년 기단의 일부와 꼭대기 부분의 머리장식

                 대부분이 없어진 것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으며.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천녀와 용녀의 전설이 살아있고, 열반의 염원이 용솟음 치는 곳. 이 곳은 옛 신라시대부터 '고사'라는 절이 있었고, 고려 때는 최재안이 성수천장과 국태민안을 위하여 중창한 천룡사가 자리한 곳이었다.

 

 

       천룡사를 오기 전 고개 너머에 있는 와룡사에서 해설을 들으면서 휴식의 한 때 보살님이 주시던 수박향이 그립다

 

         이름하여 남산의 선녀탕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이 용장시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용장사지 입구에 홀로 서 있는  자귀나무  꽃의 부드럽고 고귀한 자태가  

           바로 남산의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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