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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08. 8. 3.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704년 도화라국(覩貨羅國)의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한역한 경전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란 죄나 허물을 소멸시켜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진언(眞言)을 설한 경전이란 뜻이다.

1966년 10월 13일 불국사 석가탑을 해채 보수할 때,

2층 탑신에서 금동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이 사리함 안에 여러 사리 장엄구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들어 있었다.

이 다라니경은 일본에서 770년에 간행된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의

목판본보다 20년 가량 앞서는 것으로서,

751년 신라 경덕왕 10년경에 간행된 목판 인쇄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죄를 없애고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이 경문을 외우거나, 또는 작은 탑을 77기, 99기를 조성해 그 안에

다라니경을 안치하는 등의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탑 조성의 지침서로 그 역할을 하였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이 1443년 12월에 창제한 새 글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원문으로

간행한 한문본(漢文本)이 두 가지,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언해본(諺解本)이

네 가지 있다. 한문본은 모두 목판본이고,

『세종실록』에 실린 훈민정음 예의본과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원본은 1446년 세종 28년에 정인지 등 여덟 명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로,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한 훈민정음의 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후 조선어학회에서 1946년 영인본을 발행한 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훈민정음의 영인본이 널리 보급되었다.

 

언해본으로는 목판본으로 고(故) 박승빈 씨가 소장한 『훈민정음』과

『월인석보』 첫 머리에 실리고 서강대학교에 소장된 『세종어제훈민정음』,

 월인석보본을 모본으로 다시 한번 새겨서 펴낸 희방사(喜方寺) 복각본

그리고 필사본인 일본 궁내성본의 훈민정음 등 네 가지가 남아 있다.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조선 시대에 사용하였던 해시계이다.

해가 떠 있을 때 물체의 그림자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 장치이며,

앙부일영(仰釜日影)이라고도 한다.

 

해 그림자를 받는 부분인 시반(時盤)이 반구형의 솥모양을 하고 있어서

앙부일구라 불리는데, 구조는 해 그림자를 받는 시반(時盤)과

해 그림자를 시반에 나타내는 영침(影針)이라는 막대기로 이루어져 있다.

 

1434년 세종이 명하여 장영실(蔣英實) 등

당시의 과학자들이 만들었던 것은 전하지 않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모두 17,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구경(口徑)의 크기는 보통 30에서 40㎝이고,

영침의 길이는 앙부일구 구경 길이의 절반 정도이다.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앙부일구는

2개를 한 조로 묶어 보물로 지정하였다.

두 개의 앙부일구는 반구형의 솥 모양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4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청동으로 주조한 뒤 까만 칠(漆)을 하였고

글자와 선은 은상감(銀象嵌)으로 나타내었다.

 

세종 때의 앙부일구가 시간을 12지신의 동물 그림으로

표시했던 것과는 달리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 소장의 앙부일구는

12지 문자로 표시하였다. 또한 하루를 나타내는 데

100각(刻)으로 나누는 전통적인 시간 표현 방법이 아니라

1636년 서양식 역법(曆法)인 아담 샬(Adam Schall)의 시헌력(時憲曆)이

도입된 후 사용한 96각법 시간 방법을 따르고 있다.

 

두 개의 형태와 구조, 제작 기법 등은 같으나

크기만 약간 다르다. 보물 제845호이다. 



  직지심체요절(直旨心體要節)은 1377년 고려 우왕(禑王) 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의 주자(鑄字)를 만들어 종이에 찍어 낸 인본이다.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이 책은 백운(白雲) 경한(景閑) 스님이 과거불로부터 현재불까지

인도, 중국, 신라의 많은 선사들의 불법과 참선의 핵심을 채록하여

상하, 두 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직지심체란,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의 마음을 똑바로 보게 되면, 부처의 성품을 보게 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성불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두 권 중 상권의 소재는 알 수 없으며,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는 전시회에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출품한 것을 계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의 구텐베르그(Gutenberg)가 인쇄했던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임을 인정받고 있다.

 

그 후에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으로 촬영하여,

영인본을 국내외에 배부하고, 초, 중, 고등 학교 교과서에

직지심체요절에 관한 내용을 수록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 동양 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는 '직지'(直旨) 하권의 표지는

본래 표지가 아니라, 조선 후기에 다시 만든 것이다.

소장자가 붉은 줄로 다섯 군데를 묶고,

각 장마다 한지를 덧대어서 새롭게 책을 꾸미고,

표지 제목도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표지 오른쪽 하단에 '한국 109'라는 소장 번호가 찍혀 있다.


거북선은 호국의 역사에서 이순신과 함께 항상 언급되는 유물이다.

『태종 실록』에는 거북선을 보다 더 견고하게 조작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이미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만들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 편찬된 여러 책에서

거북선의 존재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활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거북선이 실전에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때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1592년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실용적인 창안을 더하여 새롭게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거북선의 제작은 특히 막하 군관(軍官) 나대용(羅大用)의 도움이 컸다.

이순신 사후에는 거북선의 설계나 체제에 관한 기술 전승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 사라지게 되었다.

 

거북선은 전투원까지도 완전 무결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거북의 외형을 통해서도 적을 위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거북선은

『이 충무공 전서』 「권수도설(卷首圖說)」에 있는 통제영귀선과

 전라 좌수영 귀선의 판화 귀선도(龜船圖)를 토대로

외형과 크기를 복원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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