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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스크랩] 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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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경주 월성 본격 발굴조사로 전환

 

월성(빈월성)

 

 

월성 발굴 C지구

중앙 지역 5만7000㎡에 대해 실시한 시굴조사 결과

기단과 초석(받침돌), 적심(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을 확인되었다.

 

 

발굴지 건물

건물지 중 3호로 명명한 곳은 정면 12칸, 측면 2칸 규모로 길이가 28m에 이르며 폭은 7.1m인 초대형으로 드러났다. 장축을 동-서 방향으로 마련한 이 건물터는 적심 간 거리가 정면 2.3m, 측면 2.1m로 조사됐다. 1.4×1.4m 크기인 적심 위에 0.75×0.6m 규모의 자연석 초석을 올렸다. 부속 시설로는 배수로와 담장이 함께 확인됐다. 3호 건물지와 평행한 담장은 폭 1.0m에 강돌을 깐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였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자명의 평기와도 있다.

 

 

 

도 토기류 일괄

고배(굽다리접시)와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수습됐다. 일부 토기에서는 '정(井)', '구(口)'자 형태 음각 기호를 새긴 것이 있는가 하면

인근 월성 해자와 안압지, 나정 유적 등지에서 발견된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라든가

'習部'(습부), '漢'(한)과 같은 글자를 새긴 평기와도 확인됐다.

습부는 왕경을 구성한 6개 행정구역 중 하나이며 '한' 역시 다른 지역 유사 유물 출토 사례로 볼 때

6부 중 하나인 '한기부'를 표시한 것이다.

 

 

 

7세기 제작 수막새

'의봉사년 개토' 이런 글자를 쓴 기와를 제작한 때가 '의봉 4년'이라는 대목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개토'라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렇다 할 만한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확인한 건물지와 담장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한 데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토기와 기와류가 출토되는 점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그리고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

(* 만파식적(萬波息笛): 신라 신문왕이 682년에 만들도록 한 신라의 국보.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불면 평온해진다는 전설의 대나무 피리로, 경주 월성 안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고 전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할 예정이다. 조사품질 향상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하여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하였다.

 

발굴조사와 최신 ICT(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기록화연구(사진학·영상공학·측량학), 성벽 축조공법 연구(토목공학), 절대연대 연구(물리학), 고대 지역생태환경연구(지리학·생물학), 고대 토지이용전략 연구(지형학·도시공학) 등 다양한 학제 간 융합연구가 병행될 계획이다. 그리고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의 효율적인 갈등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굴조사 콘텐츠 관광자원화 연구, 현장중심 문화유산 교육과 활용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도 예정되어 있다.

 

 

***********************************************************<문화재청  2015. 3.18></문화재청 >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메모 : 토함산솔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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