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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답사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5. 3. 14.

 

노근리 평화공원을 찾아서

 

충북 영동읍

주곡리에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은 1950723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을 북한군으로

오인한 미군 비행기가 폭격 및 기총소사로

피난민이 억울하게 희생된 노근리 사건으로

영령들의 넋과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위령

탑을 건립하고 위령사업으로 노근리 평화공원을 조

성 하였다고 하는데 노근리 개근철교 쌍굴 주변에는

피신한 피난민을 무차별 사격한 기관총 탄흔들이 남아

있어서 당시의 참혹상을 짐작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

에도 노란 리본이 있는데 노란 리본은 무사 귀환을 바

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

되었는데 형기를 마친 죄수가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노란 리본을 참나무에 달아

달라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출소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죄수는 차마 참나무를 바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죄수는 옆에 있던 이

에게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더니 노란

리본이 참나무가지에 달려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노란 리본을

달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근리 사건 경위

 

1950. 7. 23 정오영동읍 주곡리마을 소개명령

(영동읍 주곡리 주민 임계리로 피난)

 

1950. 7. 25 저녁영동읍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임계리, 주곡리,타지역주민)

 500600명을 미군이 남쪽 (후방)으로 피난 유도

 

1950. 7. 25 야간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미군에 의해 피난민 노숙

 

1950. 7. 26 정오경4번국도를 이용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

(미군의 유도에 따라 국도에서 철로로 행로 변경)

 

1950. 7. 26 정오경미군 비행기 폭격 및 기총 소사로

철로위 피난민 다수 사망

 

1950. 7. 26 오후 ~ 7. 29 오전노근리 개근철교(쌍굴)

피신한 피난민에 대해 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다수의 피난민 사망

 

 

노란 리본의 진실은?

노란리본이 지금처럼 어떤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197110,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은

뉴욕포스트에 `고잉 홈(Going Home)'

이라는 제목의 글을 개재했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형기를 마친 죄수가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돌아오길 바란다면

노란리본을 참나무에 달아달라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요.

 

출소 후 집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차마 바깥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죄수는

함께 타고 있던 이에게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고

노란리본이 참나무에 달려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1973년 이 내용을 소재로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발표되고 미국, 영국 등에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노란리본은 더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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