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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스크랩] 첨성대와 선덕여왕릉을 잇는 연장선에 불국사와 대왕암이......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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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와 선덕여왕릉을 잇는 연장선에 불국사와 대왕암이......

 

 

신라 천년의 왕궁이었던 반월성의 북쪽 낮은 평지에 청성대가 있다

첨성대는 647년경 제27대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천문관측시설로서 황룡사와 가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첨성대의 역할에 대해서

천문관측을 수행한 천문대이다. 왕권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단이다 라고 하는

여러가지 학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2009년 12월 울산 MBC는 다큐멘터리<첨성대 별기>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하여, 첨성대를 기점으로 한 경주의 왕릉 및 건축물이 하늘의 별자리와 일치한다는 획기적인 내용을 방영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첨성대>

그동안 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여러 사실을 재조명하면서 경주시내 유적이 별자리를 본뜬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여 흥미를 자아낸 것이다.

 

"첨성대가 왕릉을 정하는 기준점으로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왕릉이나 주요 건축물이 어떤 천재지변으로 자리가 유실됐다 해도 언제든 원 위치를 되찾고 확인하기 위해 천문관측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또 일출의 정확한 때로부터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 달력의 제작과 시간의 예보, 별자리에 보이는 특별한 현상이 왕과 국가에 관련된 길흉 여부를 점치기, 중요한 위치측정 등 다양한 업무는 정치, 왕권, 종교, 이념 등에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담당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에 첨성대가 기준역할을 했다. 그 목적은 천문관측 외에도 상징이나 기념비적인 것도 있지만 본질은 후손들이 길이 보존하며 그 정신을 계승시키기 위한 국가이념에 있었다"는 내용으로 방영된 것이다.

 

이렇게 첨성대를 통하여 또 하나의 가설이 수립되고 이에 대한 여러 연구가 발표되어 열띤 토론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기하학적 모양과 오래된 돌 건축물로 밖에 보지 않던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

 

 

 

 

 

첨성대 정자석과 초석 및 지대석의 두 모서리를 정확하게 지나는 동지 일출선 및 여타 방위들

 

 

그동안 첨성대에 대한 연구와 측정자료는 수없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첨성대 모양과 첨성대 건축이 가리키는 동지일출선에 관한 것이다. 이 사실은 건축가이자 전 서울공대, 성균관대 건축과  송민구교수의 1980년 첨성대 논문에서 처음 밝혀졌다.

"회전곡면을 이루는 첨성대의 곡선은 태양이 원을 그리며 도는 궤도, 즉 황도의 곡선을 따온 것이다. 동지, 춘추분과 하지를 정점으로 하는 그림자 관측으로 신라인들은 황도가 그리는 곡선을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또한 첨성대 꼭대기 정자석(井字石)과 바닥의 초석 및 지대석의 두 모서리는 동남동 30도 가까운 동지일출선과 정확히 일치한다"라고 제시했다.
"그 선상에 김유신묘, 선덕여왕릉과 불국사 석굴암, 문무왕릉이 위치하는 웅장한 장사(葬事)구도가 드러난다.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동지일출은 그날 이후 해의 고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신라인에게 새로운 시작으로서 매우 중요했다. 신라 조영물의 상당수가 동남동 30도 각도의 일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는 송민구교수의 주장이다.

 

 

 

        태양 그림자 길이의 변화로 알 수 있는 황도의 곡선.                    수직으로 세워 나타낸것이 첨성대

 

 

 

신라인들의 해뜨는 방향에 대한 개념은 종교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1969년 경주 인왕동고분군을 발굴할 때 고분에서 발굴된 8명의 머리가 모두 동남쪽을 향해있으면서도 조금씩 방위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전 경희대박물관장 황용훈 교수는 '이것은 계절에 따른 해돋이 방향의 변화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시신을 매장할 때는 해뜨는 쪽을 향하여 머리를 놓는데 계절에 따라 해뜨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주 부석사나  울산 망해사 석단이 동남동 방향인 것 등도 일출발향을 고려한 배치라고 한다 .

 

 

 

첨성대를 기점으로 동지일출선이 지나는 축에 석굴암(정기호교수)

 

 

조경학자인 정기호 성균관대 교수도 1991년 "경관에 개재된 내용과 형식의 해석" 논문에서 "일출 방향을 향해 나 있는 석굴암과 선덕여왕능이 첨성대의 동지일출선 축과 일치하며 선도산에서 비롯된 동서 위도선과 동지일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첨성대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주어진 자연 현상의 한 특징을 포착하여 그 위에 석굴암 등 조형물을 극히 계획적으로 앉혀 놓았다. 첨성대는 국가체제 수립과정에서 왕도 건설의 의도적인 축 설정과 관계되어 있다"고 하였다.


 

 

 

첨성대 주변의 건조물

 

 

위의 발표들를 토대로 구글지도에서 첨성대 주변의 건조물을 선으로 연결하여 보았더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김유신장군묘와 첨성대, 선덕여왕릉, 불국사, 문무대왕 해중릉이 거의 일직선상에 유치해 있다는 점이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이 선의 각도는 동지에 해가 뜨는 동지일출선(冬至日出線)과 같은 각도라고 한다

첨성대 기단석과 정자석의 남동쪽 모서리가 동지일출선이며 이 방향에 선덕여왕이 살아 생전 점지한 자신의 무덤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는 의도적으로 이 선상에 지었다 하더라도 문무왕 해중릉은 인위적으로 만들수는 없는 것이니 선덕여왕릉과 문무왕의 해중릉이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가 쉽지않다.

 

2. 첨성대를 중심으로 수미산(須彌山)이라 일컫는 선덕여왕릉과 태종 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와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며 삼각형의 형태로 그 안쪽에 첨성대가 위치해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세 사람은 선덕여왕의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무덤을 배치했다고 가정을 할 때,  세사람의 묘가 첨성대를 둘러싸고 있다면 첨성대는 대단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축물이 아닐까?

또한 선덕여왕의 능지(陵地)가 있는 곳이 수미단(須彌壇)이라고 했으니 다른 두 사람의 묘지터 역시 대단한 길지(吉地)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3. 첨성대에서 신라의 수도 경주를 지키는 3개의 산성, 즉 첨성대 기점 동쪽의 명활산성, 서쪽의 선도산성, 남쪽의 남산성과 각각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첨성대에서 동쪽의 명활산성까지의 거리가 3.2km, 서쪽의 선도산성이 3.5km, 남쪽의 남산성이 3.9km 지점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4. 첨성대의 정서쪽 선도산과 정동쪽의 안압지를 잇는 동서축과 첨성대에서 선덕여왕릉을 잇는 선의 각도가 약 30도로 이는 석굴암에서 대왕암을 잇는 각도와 거의 비슷하다.

아렇게 보면 첨성대는 거리 측량의 기준점 역할도 함께 하였다는 학설에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숨어있는 첨성대의 비밀은 양파의 껍질처럼 끝이 없는 것 같다. 또 어떤 학설이 나타날련지.......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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