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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월지月池)의 물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빠질까?
동쪽 하늘에서 본 안압지복원된 건물
월성의 북편에 위치한 월지(月池)는 조선시대 사료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 이라 하여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근까지 이렇게 불려왔다
그러나 1975년 안압지의 발굴조사 때 출토된 3만여점의 유물 중에서 동궁(東宮), 태자(太子), 월지(月池) 등 명문이 쓰여있는 유물들이 많이 수습되어, 이 연못의 이름이 '월지'임이 밝혀지므로서, 2011년 문화재청은 안압지(雁鴨池) 또는 임해전지(臨海殿지)라고 부르던 사적지명을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월지는 동궁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연못으로 보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발굴조사에서 월지의 동쪽과 북쪽에 많은 건물터가 발견되고 있어 동궁의 한 가운데에 월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지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신라 왕궁의 후원(後園)으로 중국의 무산 12봉(巫山12峯)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평지에 땅을 파고 파낸 흙으로 주변에 산을 조성하였으며 바닷가에 있는 기이한 괴석을 연못 주변에 배치하여 자연적으로 생긴 연못처럼 조성하였다.
어떤 공간에서도 보아도 다 드러나지 않고 아스란히 숨어 있는 협곡이 있고 곳곳에 섬이 있으며 높고 낮고 크고 작은 조화로서 지척에 있으면서 말리 보이는 효과를 연출하여 놓았다. 불과 4,738평(약(14,000㎡)의 작은 연못인데 넓은 바다로 보이게끔 꾸민 신라인의 조경기술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선 신의 경지에 이른다.
남쪽하늘에서 본 안압지
월지의 물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빠져나갈까?
살구색의 건물은 복원된 건물이고 나머지는 초석만 남아있음
외부에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월지로 물이 들어오는 곳(서쪽 건물1에서 본 모습으로 왼쪽의 석축이 섬1이다)
입수구
월지의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는 남쪽 호안과 동쪽 호안이 연결되는 지점에 설치되어 있으며 서쪽 건물에서는 섬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월지에 유입되는 물은, 조성 당시에는 북천(北川)의 물을 황룡사(皇龍寺) 앞 계곡을 따라 끌어들인 것으로 보여지나 지금은 남천(南川)의 맑은 물을 양수기로 끌어올려 정수시킨 뒤 월지로 흘러보낸다.
물은 동남쪽 담장 밑 도랑을 통하여 들어오는데 거북모양의 석구(石溝)와 꽃잎모양의 석구에 고였다가 자연계곡 형태의 도랑을 거쳐서 폭포가 되어 월지로 들어간다.
김시습(1435∼1493)이 쓴 시문(詩文)에는 '착지위해장어나인수룡후세급아(鑿池爲海長魚螺引水龍喉勢岌峩)'라는 글귀가 있어 물을 끌어 들이던 수로가 큰 용머리의 수구(水溝)에 연결되어 있으며 용의 입으로 물이 토하게 만들어 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 용머리는 사라지고 없지만 수로로 들어온 물은 거대한 수조(水槽)에서 두 번 걸러진 다음에 폭 60cm인 수로를 따라 못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석구들은 토사를 거르는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동궁원(東宮苑) 기르는 짐승의 물먹이 장소로 쓰였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수조에서 걸러진 물은 길이가 2m, 폭이 125cm정도의 큰 자연 판석(板石)을 넘어서 1m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는데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밑에는 웅덩이가 만들어졌으며 웅덩이에 들었던 물이 넘쳐서 경사진 한 덩이 큰 자연석을 타고 다시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경사진 돌은 지름이 약 1.25m의 타원형의 큰 반석이다.
이렇게 몇번의 물고임현상을 통하여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구조는 매우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물이 떨어지는 폭포같은 소리는 서쪽 누각에서도 들을 수 있어 산중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이 입수구 주위는 상당히 큰 자연 괴석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자연 괴석(怪石)의 배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 같으며 월지 전체 조경 중에서 가장 깊은 계곡을 나타내려한 것으로 보인다.
폭포 밑에는 다시 웅덩이가 있고 이 웅덩이의 물이 넘쳐서 4개의 돌계단을 타고 못 바닥에 이르게 되어 있는데 사실은 못물이 차있을 경우에는 폭포로 떨어지는 1m 높이와 비스듬이 넘쳐 흐르는 자연석은 수면 위에 노출되는 높이이기 때문에 그 밑의 웅덩이와 석 계단은 못 물속에 잠겨있는 경우가 된다.
물이 들어오는 앞에는 월지의 3개의 섬중에서 가장 큰 섬이 있는데 이 섬은 이 폭포로 떨어지는 물의 유압을 완만히 억제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월지의 북서쪽 모서리에서 본 출수구
물이 가득찼을때의 출수구 물이 빠졌을때의 출수구
뒷쪽에서 본 출수구의 덮개돌
배수로는 안압지 뒷쪽의 개울과 연결된다
출수구
월지의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出水口)는 북쪽 호안의 작은 섬 뒤에 있다.
가장 북쪽의 섬과 자연경관을 위해 자연석을 무더기로 쌓아놓은 중간 부분에 있으며 주변에 비단잉어들이 많이 놀고 있는 곳이다
출수구의 수로는 넓이 85cm의 배수구로 돌로 바닥과 양측을 쌓고 뚜껑이 덮여 있게 만들었다.
평소 물이 가듣 차 있을 멀리서 보면 팔작지붕을 가진 기와집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이 석조물은 물밑 아래로 1.5 m 이상이나 길게 뻗어 있다.
물을 빼는 시설은 2.1m 높이의 큰 장대석 같은 돌에 위에서 밑으로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나무마개를 하여 유지할 수면(水面)에 따라 연못 물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였다.
안압지 발굴조사시에 출토된 나무 물마개(경주박물관 전시)
못의 水面은 호안축대의 높이로 미루어 보면 2.1m를 넘지 못하며 대개 축대의 180cm∼190cm정도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석축으로 쌓은 부분은 물속에 들어가고 자연괴석(自然怪石)을 배치한 부분만이 물위에 노출되어 자연미를 주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怪石들이 전부 산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닷가의 해변돌이라는 것도 특이한 것이다.
물이 모두 빠진 월지의 모습. 평소에는 축대의 위 3∼4단 아래까지 물이 차 있으나조성 당시에는 축대 윗부분까지 물을 채워 자연 경관석만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축대 아랫쪽의 둥근 자연석은 축대가 무너지는 것을 먹기위한 보호석이다
월지에서 빠져나온 물은 뒷편으로 이어진 수로를 나가게 되는데 이 수로는 월지의 서쪽 연밭을 지나 첨성대앞과 계림의 뒷쪽 수로를 따라 흘러 반월성과 월정교 사이에서 남천(南川)으로 들어가게 된다.
월지의 구조를 보면 서쪽에는 사람이 거닐거나 놀이를 즐기는 곳이며 동쪽의 무산12봉(巫山 12峰)은 자연을 바라보고 감상하며 운몽(雲夢)의 꿈을 그리게 한다. 발굴조사 시 신라시대의 목선 2척이 발견됨으로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였다는 기록의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월지가 있는 동궁은 집무를 보던 궁궐이 아니라 왕이 심신(心身)의 휴양을 얻어 바른 정치를 하게하는 터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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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지(안압지)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월지를 한바퀴 돌아 나간다. 그러나 입수구와 출수구의 옆을 지나가면서도 이 석조구조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출수구 바로 옆에서 놀고 있는 비단잉어만 구경할 그 옆의 석조구조물은 무엇 때문에 있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이는 적당한 안내판이 바로 앞에 없기 때문이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하여 작은 안내판이라도 하나 설치하여 두어야 하지 않을까?
월지의 오리
월지의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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