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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스크랩] 현대 기술로도 못만든 감은사 사리함 0,3mm 금구슬의 비밀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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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술로도 못만든 감은사 사리함 0,3mm 금구슬의 비밀

 

 

 

 

 

 

 

1300년 전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대왕(文武大王, 626~681)은 왜구의 침입을 막고 나라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자 동해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대종천 입구에 호국사찰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왕이 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으면 동해의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적을 막겠으니 바다에 묻어 달라" 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자 유언에 따라 능지탑에서 화장을 하고 동해 바다에 해중릉을 만들어 모시었다.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이 선왕의 뜻을 따라 682년에 절을 완공하였는데, 용이 된 문무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부처님과 선왕의 은혜를 기린다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현재 감은사는 화려했던 법당의 건물은 사라지고 금당터의 석재들과 우람한 두 기의 탑만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은사 서탑 사리외함

 

감은사 건립 이후 1300년의 시간이 흐른 1959년에 감은사지의 주변을 발굴하고 서탑을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 때 서탑에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을 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리장엄구였다.

 

 

그리고 36년 뒤인 1996년 4월 25일, 이번에는 감은사지 동탑(東塔)의 보수를 위해 탑신을 들어내었을 때, 삼층탑신석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리장엄구 유물이 또 다시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든 공예품을 말한다.

 

동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현재의 기술로도 재현을 하지 못하는 세계최고의 금속공예기술의 집합체였다

 

 

 

 

감은사지 동탑 사리장엄 내함(좌)과 외함(우)

 

 

 

감은사지 동탑의 사리함은 내함을 덮고 있는 외함과 사리를 직접 안치한 내함으로 이루어진 2중구조로, 외함의 네 면에 사천왕상이 부조로 조각되어 사리를 호위하고 있으며 사천왕상 좌우에는 문고리가 2개씩 달려있어 사천왕상이 수호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사리와함의 뚜껑에는 천인을 싣고 하늘을 나는 봉황을 4면에 각각 장식하고 가운데에는 둥근 고리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다.

 

 

동탑 사리내함의 장식

 

 

 

 

사리함 천개부분의 불,보살장식

 

죽절혈기둥과 천개를 제외한 모습

 

 

불사리를 봉안한 내함의 의장(意匠)은 축소된 불국토를 그대로 의도한 작품으로서, 화려하게 장식된 내함의 높이는 불과 18.8cm, 손바닥 한 뼘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전각형태의 내함 사리기는 전각내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불단(佛壇)과 그 아래 네모난 형태의 기단부로 되어 있는데 기단부에는 사면에 각각 2개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안상 안에는 공양보살상 4구와 신장상 4구를 좌우로 배치하였다.

기단 위에는 난간을 두른 후 중앙에 사리병를 모셨으며. 그 주변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사천왕,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승상이 밖으로 보고 있는 형태로 세워져 있다.

사리병은 다시 다리가 달린 요령모양의 그릇으로 덮혀 있고 그 상단 중앙에 화염보주가 놓여 있다.

네모모양의 기단 위에 죽절형(대나무마디 모양)의 기둥 4개가 화려하게 장식된 천개(天蓋)를 받치고 있다.

 

사리내함 천개(지붕)에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풍탁이 달려 있다.

 

 

 

 

 

풍탁의 크기

 

사리함 천개에 달려있는 풍탁

 

 

풍탁이란 사찰의 지붕 치마 밑에 달려있는 작은 종이다. 동그란 종에 물고기 모양의 추가 달려있어 가벼운 바람에는 맑은 소리를 내며 물고기처럼 밤낮을 구별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로서 달아놓는 것이다.

 

이러한 풍탁이 사리내함의 천개에 장식으로 매달려 있는데, 전체길기 6mm. 몸통길이 3.5mm 무게 0.04g으로 무게감을 전혀 느낄 수조차 없는 크기이다.

풍탁의 몸체는 두께 0.1mm의 얇은 금판을 말아서 만들었고 풍탁 사슬의 굵기는 0.25mm로 사람 머리카락 정도의 굵기이다.

 

 

 

풍탁에 장식되어 있는 금알갱이(200배 확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풍탁을 현미경을 사용하여 200배로 확대해 보면 풍탁의 표면에 지름 0.3mm의 금알갱이들을 2개-5개씩 붙여 장식을 하였다는 것이다.

풍탁 뿐 아니라 수정 사리병의 뚜껑과 받침 등에도 0.3mm의 금알갱이들이 헤아릴수 이  많이 부착되어있다.

 

맨 눈으로는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이 작은 금알갱이들을 신라시대 장인들은 어떻게 만들었으며 또한 어떻게 부착시켰을까?

 

<금구슬만들기< />PAN>>

금 알갱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0.3mm 굵기의 가느다란 금실을 만든다.그것을 일정한 크기로 자른 후에 높은 온도의 열을 가하면 표면장력에 의해 순식간에 둥근 모양의 금구슬이 된다.

 

<땜질하여 부착하기></땜질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금알갱이(금구슬)들을 몇 개씩 모아 놓고, 그 사이에 땜쇠를 넣는다. 그리고 열을 가하면 땜쇠가 녹으면서 금알갱이들이 금판에 부착이 되는 것이다.

 

땜쇠는 90%의 금과 10%의 은을 섞은 합금인데 은과 금을 섞은 땜쇠는 순수한 금알갱이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으므로 금구슬보다 먼저 녹아 액체로 된상태에서 재빨리 식히는 방법으로 금알갱이를 접합시키는 것이다

 

순금이 녹는 온도는 1064도이고, 땜쇠의 녹는 온도는 1052도이다. 온도가 1052도보다 낮으면 아무 것도 녹지 않고, 1064도 보다 높아지면 땜쇠뿐 아니라 금알갱이 까지 모두 녹아버리기 때문에 1052도와 1064도 사이로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금알갱이는 녹지 않으면서 땜쇠만 녹게 하는 온도의 차이는 12도 내외에 불과한 것인데, 오늘날과 같이 전열기구나 특수한 장비도 없이 숯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당시에 1000도가 넘는 고열에서 12도의 미세한 온도의 차이를 어떻게 식별하고 조절하였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사리병 뚜껑의 금알갱이장식

 

 

 

 

사리병 받침의 금알갱이장식

금알갱이 장식은 풍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리병의뚜껑과 받침에도 많이 장식되어 있다

 

 

2002년 국내의 한 방송사에서 신라 금관을 재현하는 우리나라 금공예 최고의 장인에게 이 풍탁의 재현을 부탁했다.

그런데 장인이 최신의 장비를 가지고 만들어낸 풍탁의 금알갱이들을 200배의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았더니 금알갱이와 풍탁 표면 사이에 땜질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1,300여년 전 신라인들이 만든 풍탁에서는 땜질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오늘날의 금속공예기술이 1300년 전의 기술을 능가하기는 고사하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리함)          풍탁에 장식된 0.3mm알갱이를 200배 확대모습.           (재현품) 

 

풍탁에 장식된 0.3mm  금알갱이를 200배로 확대한 모습이다

왼쪽은 1300년 전의 신라인이 만든 사리함 풍탁에 붙어있는 금알갱이이고

오른쪽은 2002년 제작된 제현품이다.

사리함에 장식되어 있는 금알갱이 사이에는 땜쇠의 흔적이 없이 깔끔하게 부착되어 있는데 비해

근간에 장인이 만든 재현품에는 땜쇠의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사리함의 신장상들

얼굴의 크기가 5mm로서 쌀알크기에 엄숙한 표정를 새겨놓은 놀라운 기술이다

 

 

※ 신라인들의 금속공예품에서 금알갱이(금구슬) 장식은 이 사리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보 90호인 금제태환이식(금제귀걸이)은 길이 8.7㎝ 왕방울에 고리를 꿰어 늘어뜨린 유물로 0.7㎜의 깨알같은 금구슬 5천여개가 붙어있으며 그외 많은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에도 금알갱이가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금알갱이로 장식된 신라 금귀걸이(부부총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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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인터넷 탐색에서 얻은 글입니다></아래>

 

감은사지 사리함을 본 외국과학자들의 찬사

 

사리함 기단부의 사자상

 

 

감은사지 사리함은 실로 작지만 거대한 유물이다.

그 안에는 0.3mm의 예술을 완성시킨 신라의 초정밀 기술력과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려는 호국호법(護國護法)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4월 11일 서울대 주최 원자력안전회의에서는 100명의 외국 과학자들이, 그리고 4월 28일 열린 국립원자력연구소 주최 원자력학술회의에서는 250명의 외국 과학자들이 사리함 영상을 보았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열린 원자력 관련 행사 때 사리함 영상을 본 외국 과학자들은 감은사지 사리함의 정교함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신라의 초정밀 금속공예기술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감탄과 놀라움의 찬사를 연발했습니다.

 

 

▶이렇게나 정밀하고 작은 사리함을 이런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 내다니,

이를 만들어낸 예술가의 정성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 영상은 쌀알과 콩을 옆에 갖다 대어서 조각상들이 얼마나 작은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비교 없이 보여 주었더라면 저는 평범하게 작은 조각상 크기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조각상들은 너무나 작지만 개성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이것을 만든 예술가의 손 움직임 또한 너무나도 작고 정교해야만 했을 터인데, 그러한 작은 손동작으로 이렇게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충격적입니다.

또한 금 알갱이들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20도 온도 차이를 알았다니,

그것은 어쩌면 몇 세대의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의 극동아시아 미술관 (museum of far east art)의 학예연구원 마이클 리(michel lee)></영국의>

 

 

1300년 전에 유럽은 거의 원시적이었습니다.

셀트족이 금속공예품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는데,

한국에는 1300년 전에 극도로 섬세한 사리함과 같은 공예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기술을 가졌다니, 혹시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 아닌가요?

당시에는 현대 같은 전열기구도 없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든 것일까요? 또 온도계도 없던 시절에 1000도가 넘는 고열 상태에서 20도의 온도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너무나 대단할 뿐입니다.

                                                                             <60대 영국 남성> </60대>

 

1300년 전에 어떻게 사리함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었을까?

요즘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쌀알 크기의 얼굴에 표정을 새겨 넣을 수 있는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이런 문화유산을 보니 나의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경계가 무너지는 것 같다.

                                                                               <독일 엔지니어> </독일>

 

 

감은사지 사리함은 크기로는 대단히 작지만 거인처럼 거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딘 알러만 (40대 스위스 여성)> </나딘>

 

 

놀랍습니다. 감은사지 사리함은 너무나도 높은 정신적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본 것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섬세하며, 너무나 작고, 너무나 뚜렷하게 표현한 예술 작품들.

요새 사람들은 영혼이 메말랐기에 이러한 작품들을 접하게 되니 더욱 놀랍습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매우 발달한 과학 기술이 있고 한국인들은 대부분 마음이 순수한 것 같습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유물들이며, 오늘날의 한국에도 많은 온화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좋고, 당신들의 훌륭한 문화를 저희들과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대단합니다.

                                                                   <시실리아 맨팅 (60대 콜롬비아 여성)> </시실리아>

 

이게 언제 만들어진 것이죠? 정말 13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1300년 전이라면 독일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입니다.

                                                 <4월 28일 국립원자력연구소 주최 학술회의에 참석한 독일 과학자>- </4월>

 

이건 정말 위대한 유물입니다. 영국은 1300년 전은 고사하고, 지금도 이렇게 정교하고 섬세한 것은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게 오랜 전에 이런 합금 지식과 금속공예기술이 있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4월 11일 서울대 주최 원자력안전회의에 참석한 영국 과학자> </4월>

 

 

출처 : 토함산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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