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도문화재답사

문경 사불산 대승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2. 6. 10.

 

 

문경 사불산 대승사를 찾아서

 

 

사불산 대승사는

신라 천년의 고찰이며,

구도자의 도량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며 시방세계 부처가 머문다는

사불산에 있는 천오백년 역사의 고찰로

묘적암과 윤필암, 보현암의 암자를 두고

있으며 부처님 오신 날 3사 순례를 위하여

봉암사, 김룡사, 대승사를 택하여 찾았습니다

문경대승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나한전

시왕전. 선원.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묘적암. 운필암. 상적암이 있으며 경내에는 대승사

목각탱화.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화엄경,석가모니

사리1과가 소장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도 성철, 청담 큰 스님이 주석

하면서 한국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곳으로 성철스님

께서 대승사에서 장좌불와 로 3년을 수행하셨다고

하며 김용사가  운달산 입구에 있다면  대승사는

사불산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 진평왕 9에 비단으로 감싸인 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바위의 사면에 모두 불상이 새겨져 있어서 이를 신기하게 여긴

진평왕이 한 명비구에게 이 사면불에 공양을 올리게 한 것이

대승사의 시작이라고 하며 이런 설화로 인해 대승사가

있는 산 이름도 사불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승사는 산북면 사불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천년고찰이며,

선풍이 가득한 구도자의 도량으로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도 성철, 청담 큰스님이 주석하면서

한국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곳이라고 합니다.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 사면에 불상에 새겨진 바위가 공덕봉 꼭대기에

내려앉자, 왕이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법화경을 염하는 이름 없는

비구를 주지로 앉히어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한 것이

대승사의 창건 기원이라고 합니다 

 

 

대승사 입구에는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 언덕에 3층 석탑이 세워져있는데

1층 탑신에는 감실을 깊게 파고 불상을 안치해 놓았습니다

 

 

대승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시방세계 부처가 머문다는

사불산에 있는 천오백년 된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입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나한전·시왕전·선원·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묘적암·운필암·상적암 등이 있습니다.

 

 

대승사에는 대승사목각탱화부관계문서 4(보물 제575), 사적비,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화엄경7, 석가모니 사리1

등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에 있으며 산북면 계곡을 올라가다가

오른쪽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높이 올라가면 해발 6m높이

산마루에 뛰어난 풍광을 간직한 대승사를 만나게 됩니다

 

 

 

조선 초기에는 득통기화가 이 절에 있으면서 반야경을 연구하면서

반야사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조선말까지 몇 차례의 중수를 거듭했습니다

 

 

 

대승사는 1899년에는 월파스님이 중심이 되어 염불당을 만들고

미타계를 설치했으며, 환경, 화응, 학송 등은 동별당에

염불만일회를 개설하여 7년 동안 정진하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에 대승사에는 유일강원이 개설되어 근대의

큰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하는데 근현대사에서 최고의 석학이라는

권상로, 안진호가 모두 대승사 강원에 적을 두었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승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 극각전, 나한전,

옹진전, 시와전, 서원,요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쪽에 총지암을

새로 지어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속 암자로는 유명한 나옹혜근 스님의 출가 암자이자 성철스님이

정진하셨던 묘적암, 비구니 선원으로 이름난 윤필암,

그리고 보현암이 있습니다.

 

 

대승사에도 봉암사나 김용사 처럼 노주석이 대웅전 앞에 석등을

대신하여 세워져 있는데 1729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대승선원은 공덕산을 뒤로 대웅전 옆에 있으며 대승선원 큰방 건물은

H자형 모습으로 정면 8칸의 팔작지붕에 건평이 106평이며

4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대승사의 대승선원 건물을 웃쪽에서 내려다 보면서 담은 사진인데 

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승하라는 工 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대승선원은 H자 형 건물이라고도 하며 이 건물 안에는

금동보살좌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조실 월산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스님 입적 후 1997년 동안거

부터 선방으로 사용하며 정면 5,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성철스님께서는 대승사에서 '장좌불와(눕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정진)'3년을 수행하셨다고 합니다

 

 

 

대승사가 있는 사불산 산중턱에 있는 사면석불상에 관한 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9(587)에 커다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산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사불암 이라고합니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가서 예배한 후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 하였다고 하며 망명비구(亡名比丘)에게

사면 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설화가

있으며 그 뒤 산 이름을 사불산 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대승사의 대웅전은 전면 3, 측면 3칸 크기의 건물로

앞면에는 화려한 꽃살문이 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우물마루로 불단에는 석가여래를 주불로 하여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하고 있습니다

 

 

 

대승사 후불탱화는 보물 제575호인 목각탱화로 황금색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목각 탱화는 11개의 판목을 연결하여 붙인 다음 그 위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불제자 사천왕, 지물 등 25구를 조각하여

불국정토를 표현한 대작으로 보물 제 575호입니다  

 

  

대승사 목각탱부 관계문서

 

대승사 목각탱은 원래 영주 부석사에서 봉안하고 있던 것을 대승사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후불탱화는 나무를 깍아 부조나 투조기법의 조각으로 표현

하였으며, 조선후기에 이런 목각탱이 크게 유행 하였는데 대승사 목각탱은

그 가운데 대형이면서 뛰어난 예술적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미타후불탱화를 조각으로 만든 것이므로 아미타후불

탱화와 구조나 형태면에서 거의 흡사한 편이라고 합니다

 

 

중앙에 키형광배와 연꽃좌대를 부조하고 여기에 별도의 목조본존

아미타불상을 안치하고 있으며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들을

배치했는데 좌우 3구씩 4열을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사천왕, 8대보살 1관음, 세지, 문수, 보현, 제장애, 금강장, 지장,

미륵 2천상, 2천자, 일궁 월궁, 6대제자상 등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었고 상단 좌우로 화불,타방불과 비천 등이 장식 되었고

 

 

대승사 목각탱은 18세기 양식인 사각형적이고, 평판적이며 투박한

특징이 있지만 정교하고 치밀하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대형목각 작품으로 이런 유형으로서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각상에 이름이 쓰여져 있고 부석사와의 서장이 고고간 후 고종 13(1876)

완결을 본 관계문서가 남아 있어서 이 방면의 연구에 크게 공헌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관불의식은 초파일을 기하여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으로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을 상징하는 화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그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 조각상을 안치한 뒤에

 

 

작은 표주박으로 감로수를 떠서 부처님의 정수리에 붓는 것인데

부처님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중생들의 탐욕을 씻어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은 대웅전 동쪽으로 약간 뒤편에 있으며 극락이

란 지극한 즐거움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그 좌우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삼존불로 후불탱화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를 사찰 속으로 옮겨 놓은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불로 하고 왼 편에는 도명존자를, 오른편에는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여 삼존불을 이루게 합니다 

 

 

지장보살의 뜃쪽 벽에는 지장탱화를 봉안하고 좌우에는 명부시왕을

세우고 그 앞에는 금강역사와 판관, 사자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명부시왕상은 태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하고 왼 편에는 도명존자를, 오른편에는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여 삼존불을 이루게 합니다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합니다

 

 

 

명부전에는

대왕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2인을 둡니다

 

 

문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인 금강역사상 2인을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하여 모두 29체의 존상을 배치합니다

 

 

명부전에는 대왕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2인들이 판결이 잘 못

되지 않도록 석등을 세워서 불을 밝히는 가 봅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을 나한전이라고 하는데

큰 제자들을 모신 곳을 응진전이라고 합니다

 

 

석가여래불을 주불로 좌우에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오백나한상들이 있습니다

 

 

응진전은 대승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나한에는

16나한,  500나한, 1,200 나한 등이 있습니다

 

 

삼성각은 칠성, 독성, 산신을

함께 모시는 전각입니다

 

 

독성탱화는 소나무와 구름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한 비구가

오른 손에는 석장을 왼 손에는 염주나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그립니다

 

 

 

칠성탱화는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두고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상단에는 칠여래를, 하단에는 칠원성군을 도설하고 있습니다

 

 

 

산신탱화는 산악 숭배와 함께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을 한

산신을 모시고 인간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용이 여의주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여 올렸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보살님들이 연 향이 그윽한 연꽃차를

한 잔씩 들 수 있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손 바닥 보다 더 큰 연꽃을 따서는 부처님 오신 날인 오늘을

위하여 정성드려 준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대승사 금동 아미타 여래 좌상

=== 보물 제991호 ===

 

문경 대승사 극락전 금동보살 좌상은 복장 관음보살원문에

정덕십일년병사사월일 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중종

11(1516)개금하기 이전인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근엄하고 긴 얼굴에 화려한 보관(寶冠)을 썼으며, 장대한 상체에

넓은 무릎은 마치 보살상을 양분한 것 처럼 보이게 합니다.

 

가슴과 배, 무릎에 걸쳐 장식된 영락은 어깨나 등의

 번잡한 장식이 옷 속으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보살좌상은 대승사 목각탱화를 배경으로 하여 봉안된

목불좌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과학적 조사(성분분석)

하던 중 불상의 머리에서

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 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

의 묵서가적힌 기록이 발견되어 연대는 1301년에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 일체보협인다라니(1292)와 태장경만다라에도

연대가 있고, 묵서가 적힌 향낭 등도 출토되었는데

 

이 다라니를 포함한 복장물은 처음 불상을 제작하였을 때에

납입한 것으로 추정되어 이 아미타여래좌상이 14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또한 엑스레이 촬영 결과 정상계주 역시 신체와 같은 동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져 현재 상태의 정상계주 표현이 원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도 확인된다고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