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달산 김용사를 찾아서
성철스님께서
30년 수도를 마치고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다는
김룡사는 일제강점기에는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옛 말사였던 직지사 말사의 라고 합니다
김룡사 주변 계곡은 운달 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울창한 숲길이 어우러져 문경 8경
가운데 하나이며, 김용사 동종은 사인비구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신라 범종과 조선후기 범종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종으로 보물로 지정
되어 현재 직지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때 운달 조사가 창건하여
운봉사라 하였으며 대웅전에는 성균 대사가 만든
후불탱화와 사증대사가 조성한 괘불탱, 죽은
사람의 생전사가 비쳐진다는 거울인 업경대
등이 있고 삼세불이 모셔져 있으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응징전·
금륜전· 명부전· 상원전 등
전각 48동이 있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30년 수도를 마치고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다는 김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본사 직지사 말사인데 일제 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이
불편해서 옛 말사였던 직지사 말사라고 합니다.
김룡사 일주문에는 위에는 홍하문(紅霞門) 아래는 운달산
김룡사(雲達山 金龍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일주문에은 예불을 마치고 귀가하는 불신자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남무아미타불 이라는 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김룡사 주변의 계곡은 운달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울창한 숲길이
어우러져 문경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김룡사 보장문은 금강문에 속하는 문으로 솟을 대문처럼 생긴
문 앞에 좌우측으로 금강역사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금강역사는 오백의 신을 거느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신으로
천왕문은 부처님이 계신 곳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문입니다
김용사 보장문에는 금강역사가 삼지창이 아니라 도깨비
방망이와 칼을 들고 있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김용사 천왕문에는 원래 나무로 조각한 사천왕 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나 도둑을 맞게 된 이후 무거운 석조물로
만들어서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김룡사는 운달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운봉사라고 하였습니다
창건 당시 운봉사가 김룡사로 바뀐데는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운봉사 입구의 용소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용소에 있는 용왕의
딸과 결혼하게 되어 아들을 낳자 이름을 김룡 이라 지었더니 그 후로
가문의 운수가 대통하여 세력이 커지니 마을 이름을 김룡리 라
불렀고 절 이름도 김룡사 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김룡사는 인조 27년(1649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에는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탱화가 보존되어 있고 또 하나의 걸작으로 고종 26년(1889년)
사증대사가 조성한 괘불탱, 죽은 사람의 생전사가 비쳐진다는
거울인 업경대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응징전·금륜전·명부전·상원전 등
전각 48동이 있는데 입구에 경흥강원 이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있는데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룡사의 초창은 인조 2년에 수행 공덕으로 고명했던 혜총선사가 제자들과
힘을 모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소실된 것을 의윤, 무진, 대휴의 세분
대사가 옛 모습을 되살려 놓아 번창 시에는 48동에 건평 1,188평이나
되었으나 현재는 대소 전각 30 여 채가 남아있습니다.
사전에 준비된 자료 탐색이 부족한 탓으로 김용사에 가면 그 유명한
사인비구의 동종을 먼져 찾아 보리라 마음먹고 범종각으로 갔으나
범종각에는 새로 조성한 범종이 걸려 있을 뿐 관계자들에게
수소문 해 봐도 모두가 모른다는 대답 뿐 이었습니다
문경 김룡사 동종은 현재 김천 직지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김룡사에 전래하던 사인비구가 만든 조선시대 동종으로
2000년 보물 제1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동종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사인 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 비구는 18세기의 뛰어난 승려
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문경 김룡사 동종은 조선 후기의 종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같은 해 만들어진 보물 제11-3호 홍천 수타사 동종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독특하게 표현되었다고 합니다
김룡사 동종은 수타사 종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사인 비구의
작품세계와 조선 종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신라 범종의 전통 양식을 잘 계승하고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종이라고 합니다
김룡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서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운달조사가
개선하여 사명을 운봉사라 하였다고 하며 본래의 절 이름인 운봉사라는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불화기(1703년) 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조 27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의 불상은 그 규모가 웅대하며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 탱화와 고종26년에 사증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쾌불탱화가 유명합니다
대웅전에는 죽은 사람의 생, 전사가 기록 영화처럼 비쳐진다는
거울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였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을 합니다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은 새로운 삶으로의
재 탄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대웅전에는 삼존불로 목조석가여래불을 주존불로 하여 좌우에는
협시불로 각각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고종 26년(1889년) 사증(四證)대사가 조성한 가로 8.25m
세로 7.06m의 괘불탱(지방유형문화재 제303호)
역시 이곳의 자랑입니다.
내부에는 천정에 하늘을 나는 비천상이 주악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눈에 생생합니다
유리상자 속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소중한 불상인 것 같으나
빛이 반사되고 그림자 때문에 사진을 찍기 어렵습니다
대웅전 앞 마다에는 좌 우로 노주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기둥에는 문양이 세겨져 있으며 석등을 대신하는 가 봅니다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연명이 지워진 것 같습니다
김용사 극락전은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조금 뒷 편에 있는데
전면 3칸 측면 1칸의 비교적 작은 규모로 내부에는 아미타
여래좌상과 신중탱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김룡사 금륜전에는 현재는 칠성각과 독성각을
합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금륜전에는 치성광 여래 좌상과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법륜을 들고 있는불상이 있는데 이를 치성광여래
라고 하며 삼성각과 같이 한다고 합니다
상선원은 전에는 선원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35점의 고승진영과
1830년에 조성된 시왕탱, 1858년에 조성된 지장탱이 있습니다
상선원은 한때는 성철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지만 현재는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용사 응진전은 전면이 3칸 측면이 3칸으로
된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입니다
석가여래좌상을 주존불로 하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하고 있습니다
김용사 응진전에는 16나한도 모셔져 있습니다
김룡사에 딸린 암자로는 역대 선사들의 영정을 모신 화장암,
선방인 금선대, 대성암, 양진암 등 네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모두 비구니 도량입니다.
김룡사에는 인조 27년(1649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 내에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탱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김용사 대웅전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사(生前事)가 비친다는 거울
업경대(業鏡臺) 등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사명이 김룡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
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하더니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도 김룡리라 하였
으며 운봉사의 절 이름도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므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추정합니다
김룡사는 풍수지리 상 누운 소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운달산의
맥을 보전하기 위해 석탑과 석물을 절 마당이 아닌
절 뒷 편에 두었다고 합니다.
김용사에 석탑과 석상을 절 뒤에 세운 것은 그 선익을 진압
하고 산혈의 촉 맥을 보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김용사 3층석탑은 탑의 모양이 이상한 기형탑으로 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을 올렸습니다
석탑의 옥개석에는 낙수면이 없고 옥개의 끝부부은 올라갔으며
하나의 돌로 다듬어서 올려진 옥개석입니다
이 탑의 1층 몸돌에는 동자승 같은 얼굴의
인물상 1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풍수설로는 김룡사의 위치는 와우형혈(臥牛形穴)이라 목우인석상으로
산의 혈이 흐르는 맥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소를 모는(衆生濟度) 사람은 부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
당시에는 약사 신앙이 성했던 탓으로 이 목우인은
약사여래라고 풀이 됩니다
두상의 육계와 왼손의 약병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는
매우 현세 이익적인 부처님으로 널리 신앙되고 있었습니다.
동방정토유리광세계의 교주이시며, 과거 수행 중의 보살 시에
중생구제를 위하여 12대원을 세워 성불했다고 합니다.
김용사 석불입상은 약사여래불이라고도 하는데 높이가
약 2,27m 이며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불입니다
이 석불입상은 목우인상이라고도 하는데 약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약사여래불 이라고 봅니다
3층석탑과 목우인석상(牧牛人石像)은 응진전 뒤쪽에 있으며
사천왕문 앞에 이전해 두었다가 1989년 10월 29일 옛 선사들의
뜻을 존중하여 원래의 위치로 안치했다고 합니다
김용사의 동자승 전설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산 너머 대승사(大乘寺)에 불이 났는데,
이 절의 한 동자승이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바가지에 시냇물을 퍼서
불을 껐다는 설화가 전해 지고 있습니다.
물이 맑고 숲이 우거진 운달산 골짜기 깊숙히 자리잡은 김룡사는
창건이래 참선하는 수도승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수많은 수도승들 가운데 한 동자승이 있었다.
하루는 주지스님이 동자승에게 상추를 씻어 오라고 시켜 동자승은
개울로 상추 바가지를 들고 나갔다.
맑은 물에 상추를 씻고 있던 동자승의 눈에 문득 붉은 불기둥에
휩싸여 활활 타고있는 절이 보였다.
그 절은 김룡사에서 십여리나 떨어져 있는 대승사였다.
대승사의 스님들은 불타는 절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동자승은 놀라서 자기가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염불을
외면서 정신없이 시냇물을 바가지로 떠서 불타는
절을 향하여 퍼부었다.
물을 따라 상추 잎까지 날아 갔다.
한참만에야 불은 다 꺼졌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동자승이 상추바가지 보니
상추는 몇 잎이 남아 있지 않았다.
큰일이다 싶어 남은 상추를 씻어 급히 절로 돌아 왔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상추 씻으러 간 동자승을 기다리다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있었다.
뒤 늦게서야 동자승이 헐레 벌떡 달려 왔을 때,
주지스님은 어디서 놀다 왔는가 꾸짓다가
몇 잎 남지 않은 상추 그릇을 들여다 보고는
더욱 화가 폭발하여 매채를 들고 말았다.
그러나 동자승은 아무말도 못한 채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말한다 해도 믿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날이 저물어 잠자리에 누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절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때 옆에 누워있던 스님이 낮에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았느냐고 물었다.
동자승은 낮에 일어났던 일을 하나 하나 얘기헀다.
그러나 스님 역시 믿어주질 않았다.
동자승은
스님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절을 떠났다.
이튿날 아침에야
스님들은 동자승이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어젯밤 동자승 곁에 있던 스님이
동자승한테 들은 얘기를 모두에게 알렸다.
이야기를 들은 스님들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어딘가 미진한 마음이 남아,
직접 대승사에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승사를 찾아가 보니,
대승사는 불타 있었고 중들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대승사 중들은 불이 일어난 시각이며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온 물에 의해 불을 끈 이야기와
물길에 상춧잎이 날아온 것까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룡사 스님들은 급히 김룡사로 돌아와
주지스님께 이 사실을 고하고 동자승을 찾아 나섰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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