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의 규모와 명칭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어 모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물리친 승리의 순간,
즉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성도상(成道像)이라고 한다.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그는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창건하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웠던 것이다. 석굴암은 경덕왕 10년(751)에 착공하였으며 김대성이 죽은 뒤에는 나라에서 공사를 맡아 완성 시켰다.
석굴암은 자연석을 다듬어 돔을 쌓은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한 석굴사원으로, 전실의 네모난 공간과 원형의 주실로 나뉘어 있다. 주실에는 본존불과 더불어 보살과 제자상이 있고 전실에는 인왕상과 사천왕상 등이 부조돼 있다.
석굴사원이긴 하지만 사찰 건축이 갖는 격식을 상징적으로 다 갖추어 하나의 불국토를 이루었다
석굴암의 규모
석굴암의 불상명칭
본존불을 바라보고 서서 오른쪽면
본존불을 바라보고 서서 왼쪽면
(일반적 견해의 불상명)
석굴암의 천정석
석굴암 본존의 크기, 즉 앉은 높이 1장1척5촌, 어깨넓이 6척6촌, 무릎폭 8척8촌은 싯달타 태자가 보드가야 보리수 밑에서 정각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 인도인이 만들어 안치한 성도상(成道像)의 크기와 같으며 향방과 수인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당나라의 현장(A.D602~664)이 17년간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보면,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 대각사(大覺寺)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정각을 이룬 모습의 불상이 발을 괴어 오른발 위에 얹고, 왼손은 샅 위에 뉘었으며 오른손을 늘어뜨리고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대좌의 높이는 당척 4척2촌이고 넓이는 1장2척5촌이며 상의 높이는 1장1척5촌, 양 무릎폭이 8척8촌, 어깨폭이 6척6촌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석굴암의 본존불 크기와 이 기록이 일치하고 있는데, 현장이 보았던 대각사의 그 불상은 현존하지 않고 있어 석굴암에 역사적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강우방>
석굴암본존불의 상대갑석 앙시도
요네디 미요지의 석굴암배치도
석굴암 범천상
석굴암의 제석천상
일제강점기 시절의 석굴암본존불(보수하기 전)
예술에서도 지극히 숭고한 관념의 장엄을 표현할 때는 장식이 필요없다.
경주 석굴암(石窟庵)에는 색채도 없고 당초문이라든가 화염문 등 화려한 무늬가 전혀 없다. 연화문 대좌는 매우 단순하고 광배도 연화문과 연주문(連珠文)뿐, 그 밖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단순소박한 분위기에서 지극히 숭고(崇高)한 장엄을 느낄 수 있다.
석굴암은 동·서양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가장 지극한 단순함으로 지고(至高)한 장엄을 나타낸 유일한 종교사원(宗敎寺院)일지도 모른다. <최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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