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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를 찾아서

황남대총 특별전을 찾아서 (1)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1. 1. 1.

 

 

 

신라 능묘 특별전1 황남대총 신라王, 왕비와 함께 잠들다.

 

전시기간 : 2010년 12월 14일(화) - 2011년 2월 6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능묘 특별전 황남대총‘신라왕,왕비와 함께 잠들다’를 12월 14일부터 2011년 2월 6일까지 개최합니다.

 

경주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황남대총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중 최대급에 해당하는 왕릉이며, 왕의 무덤에 왕비의 무덤을 덧붙여 만든 쌍무덤, 즉 표형분(瓢形墳)입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금관(국보 191호)과 금허리띠(국보 192호),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유일한 은관(보물 631호) 등 다량의 국가지정문화재(국보 4건, 보물 10건)를 포함한 58,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최고의 왕릉입니다.

 

또한 고구려, 중국, 일본, 서역 등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들어온 청동제품, 흑갈유병, 조개류, 유리제품 등은 마립간시기 신라의 왕성한 국제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 중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허리띠는 1973년 발굴 이후 일련의 조사과정을 마친 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로써 전시되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람객에게 선보였습니다.

 

이번 신라 능묘 시리즈의 첫 번째로 마련된 황남대총 특별전은 36년 만에 처음으로 경주를 찾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금허리띠를 비롯한 5만 여점의 황남대총 유물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공이 잠들어 있던 목관의 출토상태를 재현하고 남분의 부곽 및 돌을 쌓아올리는데 지지대 역할을 한 목조가구시설을 재현함으로써 왕릉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북분과 남분 내의 출토 구역별로 나누어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신라 왕릉급 돌무지덧널무덤내에 출토 위치에 따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능묘 중에서 왕릉을 주제로 마련한 첫 번째 특별전인 황남대총을 시작으로 신라 중심 묘제(墓制)인 돌무지덧널무덤을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와 동시에 고대 신라, 신라 왕의 권위와 힘을 느낄 수 있는 상징과 화려함을 수많은 유물을 통해 직접 보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 황남대총 북분 목곽 내부 출토상태

 

 

 

황남대총 북분의 목곽 내부 출토상태로 사진의 가운데 부분에 보이는 금관과 금허리띠가 있는 부분이 목관의 중심부가 되며, 금관 윗부분에 보이는 곳이 다양한 장신구류와 마구류와 금속용기류 등이 부장된 수장부에 해당된다

 

▲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 국보 191호, 높이 27.3㎝

 

 

신라에서 가장 큰 무덤이 바로 황남대총皇南大塚이다. 그 중 조금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왕비의 무덤[北墳]에서 출토된 금관은 현재까지 출토된 세움장식을 갖춘 금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3개의 나뭇가지모양[樹枝形]장식과 2개의 사슴뿔[鹿角]장식을 관테의 안쪽에 덧대고 금못을 3개를 ∴모양으로 박아 고정하였다.

 

관테에는 상하의 가장자리에 2줄의 연속점무늬[點列紋]와 파도모양무늬[波狀紋]를 1줄씩 표현하고 그 가운데에 곱은옥[曲玉]을 1점씩 매달았다.

 

세움장식의 작은 나뭇가지는 3단段으로 만들었고 각 단마다 비취제 경옥硬玉을 5개씩 매달아 화려함을 더하였다.

 

관테의 앞면에는 모두 6개의 굵은고리 귀걸이가 드리워진채 출토되었다.

 

▲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허리띠, 국보 192호, 길이 120.0㎝

 

 

황남대총 북분의 허리띠는 1개의 띠고리[鉸具], 28매의 띠꾸미개[銙板], 1개의 띠끝꾸미개[帶端金具]로 구성된다.

 

황남대총을 비롯한 5세기대 신라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좌우가 대칭이면서 사각형 판에 인동무늬가 간략화된 세잎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띠드리개[腰佩]는 13줄인데 그 중 1줄은 길다.

 

단면이 편평한 방형판과 원형판을 교대로 엮어 만들었는데, 작은 방형판의 상하에 둥근 고리를 만들어 원형판의 상하에 나 있는 장방형 홈에 끼웠다.

 

띠드리개의 끝에 곱은옥[曲玉]이 매달리는 경우 둥근판이 6개, 나머지는 5개씩이다. 끝 장식으로는 홀모양판[圭形板] 5개와 물고기모양판 1개, 손칼모양 장식 1개, 수실모양(솔?) 1개, 변형 쌍룡무늬 모양 투조장식이 있다.

3개의 곱은옥중 2개는 금으로 만들었고, 1개는 금모를 씌운 경옥硬玉이다.

 

▲ 황남대총 남분 출토 은관, 보물 631호, 높이 17.2㎝

 

 

 

금 이외에 은이나 금동으로 만든 관의 수량이 금관보다 많다. 그중 은관은 부식이 잘되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만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완형에 가까운 예가 1점 출토되었다.

 

금제 관식, 은제 관모와 함께 부장품 수장부의 가장 윗쪽에서 출토되었다. 은관은 세움장식의 가장자리를 가위로 오린 다음 좌우로 비틀면서 꼬아서 만들었다. 이러한 기법은 고구려의 관장식에서 자주 보인다.

 

관테의 가운데에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 모양의 큰 세움장식을 함께 오려 장식한 다음, 좌우에 새날개모양의 세움장식을 1개씩 은못으로 부착하였다.

 

관테와 세움장식에는 금동제 달개를 많이 매달았으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가장자리에는 뒷면으로부터 두드려낸 연속점무늬 1줄을 장식하였다

 

▲ 황남대총 남분 출토 은관모, 높이 17.0㎝

 

 

은관모는 1매의 은판을 고깔모양으로 접어 만들었다. 아랫쪽 테두리는 조금 둥글게 만들고 끝은 밖으로 한겹 말아 붙여 처리하였다.

뒷면에는 완만한 다이아몬드 무늬를, 몸통에는 번개무늬를 두드려 내었다. 모자의 앞쪽에는 금동의 투조판透彫板을 덧댄 5각형의 은판을 덧붙였다.

 

오각형판에는 간략화된 용무늬 혹은 넝쿨무늬[唐草文]를 가득 표현하였다. 이 금동판의 바탕은 무늬가 없는 은판이어서 금제투조문양 사이사이에 백색의 은판이 드러나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 하단 가장자리에는 관모에 접합하기 위한 구멍이 있다.

 

▲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목걸이, 국보 194호, 길이 66.4㎝

 

 

금목걸이는 주인공의 목에 걸린 채 출토되었다. 맨 아래에 달린 금제 곱은옥[曲玉]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속이 빈 금구슬 3개씩을 두고 그 사이를 금사슬로 연결하였다.

 

좌우 양끝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고리가 달려 있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겹으로 엮은 금사슬, 금구슬, 곱은옥 등의 비례와 전체적인 크기가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금제 목걸이는 신라 목걸이 중에서 특이한 형태이며,경주 월성로 가-13호 출토 금 목걸이와 비교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자세한 사진 자료들은 그 분량이 너무 많아서 1탄 2탄 3탄.........으로 나누어서 올려놓고 두고두고 볼려고 합니다   서울 전시도 못보시고 경주전시도 못오시는 분들을 위하여 대도록 많은 사진들을 담아 둘려고 합니다 많이 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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