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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경주박물관 소장품 1호 특별전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10. 10.

경주박물관 소장품 1호 특별전을 찾아서

 

 

 

경주부윤

투구와  갑옷은

경주 관아에  있던 것

으로서 관아 부속 건물 중

부윤의 관사에  ‘경주고적보존회

전시관’과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

분관’이 들어서면서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박물관 온고

각에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재편 

국립경주박물관은 소장품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와  등록을  실시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소장품 1호로  경주 부윤 투구와 갑옷을 등록

하였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동안 말살

되었던 민족 정기를 되살리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 됩니다.   

 

 

 

 

 

 경주부윤의 갑주라고 하는 투구와 갑옷은

왜 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는 소장품

목록의 1호가 되었을까?

 

 

 1910년 일제에 강제 병탄된 이후 조선시대 관아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군청이나 면사무소

등으로 쓰였을 때 이야기입니다

 

 

 

 

 경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시대의 관아에

 일제의 군청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박물관이 경주에 처음 들어선 것은 일본인이

주도하여 만든 경주고적보존회가 1913년

 

 군청의 부속건물에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을

설치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박물관이 옛 경주부윤이 기거하던 곳에 처음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부윤의 투구와 갑옷이

경주박물관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옷이 제일 먼져

그자리에 그냥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921년 9월 금관총이라고 하는 신라의 무덤에서

 금관이 발견되는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이 1926년 6월 20일

 개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이 된 뒤로 온고각

 제4실에 경주부윤의 갑옷과 투구가

전시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옷에

 등록번호가 1번을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은

체제를 정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주박물관도 1945년 12월 3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이후 소장품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와 등록

 작업이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옷은 영예로운 경주박물관의

 소장품 제1호가 되었다고 합니다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옥이 소장품 제1호가 된 이유는

 조선시대 관아에 들어선 박물관의 소장품 1호로

 

옛 주인의 물건인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옷을 선택하여

일제 36년 동안말살되었던 민족정기를

되살리겠다는 의미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부윤은 무슨 일을 하였기에 투구와 갑옷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만

 

조선시대는 지방을 크게 8도로 나누고

부, 목, 도호부. 군, 현을 두었다고 하는데

 

부.목 도호부는 현재의 시 규모로 군과 현은

군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방 행정 조직의 책임자를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부윤이 있었던 도시는 경주, 전라도의 전주부,

함경도의 영흥부, 평안도의 평양부와 의주부

 뿐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경주는 경상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의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자를 부윤이라고 하는데  

고려시대에도 경주는 계림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최 영 장군도

경주부윤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시장이나 군수는 행정만 책임지지만

조선시대의 부윤은

 

그 지방의 행정과 사법, 치안, 군사까지도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옷과 투구는

필수품이었다고 합니다 

 

 

 

 

 

경주부윤의 투구와 갑옷에 관한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경주성을 지킨 박의장 이야기가 있습니다

 

1592년 4월 14일 부산이 함락된지 7일 만에

경주성도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8월 21일부터 적에게 빼았긴 경주성을

 결국 9월 8일 재탈환하게 됩니다 

 

 

 

 

 

 

이 때에 맹활약을 한 인물이 경주부 판관으로

있던 박의장(1555 - 1615)입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경주부윤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주부윤은 평상시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감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장군이 되어 자기 고을과 나라를 지키는

문무를 겸비한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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