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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영암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5. 2.

황매산의 영암사지를 찾아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이 극찬한 영암사터를 모처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와서 작은 똑딱이 카메라에 렌즈와 몸체가

 물에 젖어서 손수건으로 닦아 보았지만 물걸레로 문지르는 것 같은

 상태로 찍은 사진이라 흐리지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한 번

 올려 봅니다  영암사지는 사적 131호로 절터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 동서로 남아있는 

 귀부와 많은 부재들이 남아 있는 패사지입니다만   

 화려한 자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시 찾고 싶은 곳입니다    

 

 

영암사지는 합천의 자존심이라고 할 정도로 황매산

모산재 바위 봉오리를 배경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쌍사자 석등과 삼층석탑 그리고 돌거북을

꼭 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영암사지는 처음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 5년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하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영암사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석등으로

 금당 앞이 좁은 것을 감안하여

 

 

석등이 있는 자리를 앞으로 불쑥 내어서

석등을 올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석등은 동서남북의 각 방향에서 다시 각을 쪼개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 가면서

 

보는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 보이는 석등의

아름다움을 음미해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영암사지의 석등은 이 곳 주민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황무지가 될 뻔 하였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인 1933년에 이 영암사지의 아름다운 석등이

탐이 나서 일본인들이 야밤에 몰래 훔쳐가는 것을

 

 

 당시에 이곳 면장으로 있던 허씨와 마을 주민들이 의령군

대의까지 쫓아가서 되찾아온 것이라고 합니다  

 

 면사무소에 있던 석등을 1959년에 다시 현 위치로 가져오고

쓰러져 있던 3층 석탑을 바로 세우면서 마을에 있던

집 두채를 옮겨와서 절터를 지켰다고 합니다

 

 

영암사터에 있는 삼층석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영암사지의 금탕터 바로 앞에 새로 세워진

두채의 건물 사이에 서 있습니다 

 

 

 1층 몸돌은 약간 높은 편이며 2. 3층은 크게 줄어든 형식으로

받침은 4단이고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흐르다가

네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습니다

 

 

한 때 밭이었던 금당터의 북쪽도 발굴을 하였고

중문터 아래도 발굴을 하면서

 

 

흩어진 석재들을 정리해 두었으나 아직도 발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금당 본존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오르는 돌 계단 입니다

 

금당으로 오르는 통돌로 만든 무지개 돌 계단의

 아름다움이 석등과 잘 어울리는

걸작품이라고 합니다 

 

 

금당터에서 옆으로 비켜선 산길을 조금 오르면

솔 숲에 둘러 쌓인 서금당터가 있습니다 

 

 

서금당터에는 돌거북 2기가 있는데 비신은 사라졌지만

돌거북의 그 위용은 아직까지도 대단한 모습입니다

 

 

서쪽의 돌거북이 남성적인

 강한 느낌아라면

 

 

동쪽의 돌거북은 얌전한 여성적

자태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서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절터 안에는 법당터를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단들이

남아 있어서 당시의 영암사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귀부는 돌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의 받침돌입니다

 

 

원래는 그 위로 비 몸돌과 비의 머릿돌이 얹혀져

있었으나 양쪽 모두 몸돌과 머릿돌은

없어지고 귀부만 남아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귀부는 거북의 등 무늬가 6각형이고

비 몸돌을 괴는 네모난 비좌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 무늬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 머리처럼 새겼으며

목은 똑 바로 뻗어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쪽 귀부도 6각형의 등 무늬를 배열하였고 등중의

비좌에는 4면에 안상을 세기고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세겨 놓았습니다

 

 

 

서쪽의 귀부는 동쪽의 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동쪽의  귀부는 정교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2기의 귀부는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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