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도문화재답사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0. 19.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를 찾아서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의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읊었다는 시조가 생각

납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고운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물도 내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라는 옛시조를 두 세번

겹쳐 외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을

적셨던 감성어린 그 때를 생각하

면서 오늘도 청령포를 다시 찾아

단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종은 1441년7월 23일 (세종 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입니다

 

 

단종은 8세가 되던 1448년(세종 30년)에 왕 세손에 책봉되었고

예문관제학 윤상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고 합니다  

 

 

1450년 2월(세종 32년)에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 되자

 

 

그해 7월 20일 왕 세손이었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 18일 문종이 승하 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제 6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단종은 계유정난 이후 1455년 6월 11일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上王)이 되었으며 제위기간은

1452년부터 1455년까지 입니다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

1457년(세조 3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윤유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 후인 윤유월 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습니다    

 

 

1457년(세조 3년) 9월 금성대군 유(瑜)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하였습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히 품은 채

적막한 영월땅 황량항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금표비는 단묘재본부시유지

 북쪽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에는 청령포 금표(청령포 금표)

라고 싀여져 있고

 

  

뒷면에는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 니생혁재당금 숭정구십구년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 尼生亦在當禁

崇禎 九十九年)이라고 씌여 있는데

 

 

이말은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이 된다 숭정 99년 이라고

음각이 되어 있는 금표비의 비문입니다 

 

 

금표비, 노산대, 관음송, 망향탑, 단종어소,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등을 알려주는

 알림 표지판입니다

 

 

청령포 수림지에 있는 관음송(觀音松)

이라는 소나무 입니다

 

 

이 관음송은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나무 입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 가지에

걸터 앉아서 옛날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는

전설이 있는 가지입니다 

 

 

이 관음송은 단종의 유배 당시의 모습을

보았을 것(觀)이며 때로는

 

 

오열하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뜻(音)에서 관음송(觀音松)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종어소는 단종이 이곳 청령포 유배 당시에

단종이 머물던 애환이 담겨있는 본채입니다 

 

 

 단종이 머물었다는 단종어소 바로 옆에 있는 한옥으로

궁녀와 관노들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는 1763년에 세워진 것으로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단종이 이 곳에계실 때의 옛 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그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 감영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의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흩어져 있던 막돌을

주워서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입니다    

 

 

육육봉을 오르는 길 목에 있는

노산대(魯山臺)라는 표지글입니다

 

 

노산대(魯山臺)를 오르기 바로 직전에 있는 소나무

겉껍질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와 닿아서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 쌓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고 하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밖으로

출입을 할 수 없는 섬과 같은 곳입니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당시에는 이 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가 남몰래 밤이면 이 곳을 찾아

단종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 해 뜻 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어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 2년에 세웠다는 금표비와 영조 39년에

세웠다는 단묘재본부시유지 가 서 있어 옛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는 곳입니다 

 

 

수려한 절경과 500년의 슬픈 역사를

고이 간직한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찾아가는 사람과 사람들 입니다

 

 

 12살의 어린 나이로 조선 6대 임금에 오른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는 것도 잠시 뿐 그 다음해에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 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죽음을 강요당하여  승하하였습니다   

이 곳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도문화재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서  (0) 2011.11.02
진천 길상사를 찾아서  (0) 2011.10.21
율곡기념관을 찾아서   (0) 2011.10.19
오죽헌을 찾아서  (0) 2011.10.19
강릉시립박물관을 찾아서  (0) 2011.10.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