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사 대안탑을 찾아서
중국 서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안탑은 대자은사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의 3대 황제인
고종 (649 - 683)이 태자 시절에 그의
모친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648년에
수나라의 무루사 라는 폐사를 중건한 사찰
이라고 합니다 이 때 고종은 현장법사가 긴
서역 여행을 끝내고 인도로부터 많은 경전을
가지고 돌아와 홍복사에서 불전 한역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 이 곳 대 자은사에
새로이 번경원을 세워 현장법사를 맞이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현장법사가 이들
불전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운 탑
(전탑)이 대안탑이라고 합니다
자은사의 대안탑은 창건 당시에는 5층탑 이었던 것을
측천무후 때에 7층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삼장법사로 널리 알려진 당나라의 고승 현장법사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현장은 13세에 출가를 하여 ----
어렸을 때 부터 그 준재 총명을 칭송받아 장안의
대각사에서 수십년간 수행 하였다고 합니다
삼장법사는 경전의 의문과 번역을 열망하여 직접 천축으로
가 보기로 마음 먹고 당 태종 정관 3년(629)에 ---
나라에서 국내인이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을 금하는 법을 어기고
옥문관으로 부터 출국을 하였다고 합니다 ---
삼장법사는 중앙아시아로 부터 천산산맥을 넘어 서투르키스탄에
이르고 마침내 북천축으로 부터 중천축에 이르러 ---
나란다 사에서 수행을 한 후 인도 각지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였다고 합니다
현장법사는 돌아오는 길에도 파미르고원으로 부터 동투루키스탄을
거쳐 정관 19년(645) 범어로 된 불경---
657부와 불사리, 불상, 불화 등 을 가지고 장안에
돌아와 홍복사에 납입하였다고 합니다
현장법사는 천축을 다녀 온 후로는 경전의 번역에 전념하였는데
태종은 현장법사의 업적을 기려 ---
정관 22년(648)에 대자은사를 세워
현장을 그 상좌로 하고 사내에 ---
번역원을 설치하여 그 역경 사업을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현장법사의 경전 번역은 전부 75부,
1335권에 이르렀으며 ---
중국의 법상종을 현장의 손에
의해서 열렸다고 합니다
창건당시에 세워졌던 자은사의 대안탑은
현재 7층 으로 높이가 64m 라고 합니다
자은사 대안탑은 그 동안 화재 등으로 인하여 몇 차례
중수를 하였으나 겉모습은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
내부의 계단을 통하여 맨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만
대안탑의 내부로 올라가는 티켓은 별도로 끈어야 하는데 ---
생각보다 입장료가 비싸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단체
관광이나 답사에서는 조금은 무리인것 같았습니다
대안탑은 서안의 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내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대자은사의 경내에 있습니다
기원 648년 당나라 황태자 이치(후의 당 고종)가 돌아가신 어머니
문덕왕후의 명복을 빌어드리기 위해 ---
절을 짓고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자은사(慈恩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대자은사 사찰에 들어가면 정면에 바로
대웅보전 (大雄寶殿)이 있습니다
대웅보전 바로 앞에 대자은사(대자은사)라는 ---
금박으로 된 글씨가 쓰여져 있는
대형향로가 있고 ---
관광객들이 그 곳에서 햐을 꽂고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웅보전 바로 뒤에 있는 큰 탑이 서안시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 대자은사 대안탑입니다
대안탑의 상륜부 모습을 당겨 보았습니다만
똑따기라서 사진이 별로 입니다
대안탑은 현재의 모습은 창건 당시의 모습에
비해 1/10 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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