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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만덕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12. 3.

만덕사지를 찾아서

 

만덕사지는 구포에서 동래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 중턱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절터 입니다   만덕사에 대해서는 고려의 개국공신 노강필과 이 엄이    

 927년에 창건하였다고도 합니다만   확실한것은 아니라고 하며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때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왕자가  이 절에      

유폐된 것으로  정치적 음모로 골육상쟁의 비화가 있었고        

   이 때 만덕사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만덕사지는 1972년 절터의 중앙부에 장방형의 축대 위에

금당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

 

축대를 중심으로 뒤편과 동북, 서북 쪽으로도 법당지로

추정되는 초석들이 있습니다  

 

 

 금당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평면구조는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법당의 규모만 놓고 비교해 볼 때는 크다는 범어사의 대웅전 보다도

4 배나 더 크다고 하니 아마도 만덕사도 규모가 큰

대찰이었을 것으로 짐작 됩니다

 

 

 금당지 서쪽에서 발견된 지름 2.4m 에 달하는 팔각지대석에서 상상할 수 있는

 대형불상, 거대한 바윗돌로 쌓아 올린 석축, --- 

 

석축에서 남쪽으로 19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이 3.5m의 당간지주와

만덕사거리에 위치해 절의 경계를 표시했던 국장생표, ---

 

비록 절반만 남았지만 동양최대 규모라는 황룡사지 치미와

맞먹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치미, ---

 

반경 500m에는 암자 석축이 파손된 채로 곳곳에 남아있고

기와조각은 발에 차일 정도로 흔했다는 절터 등이 ---

 

만덕사가 상당한 규모의 대찰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할 수 있습니다   

 

만덕사지는 90년과 9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해 본 결과

창건연대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축조연대가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되는 팔각지대석, 금당의 바닥에

깔았던 기와, 암막새와 수막새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또 금당지의 석축도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 때 지어진 것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라고 합니다

 

 

당간지주는 석주 2주 중 1주만 남아 있는데 높이가 3.5m로

기단부는 파손되었으며 당간을 설치하던 간대는

석주 아래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당간지주가 금당터에서 약 190m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만덕 1동 일대의 대부분이 만덕사 경내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1352년 (고려 공민왕1)에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가 이절에 유페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향토사학자들은 이 한줄기의 기록과 연관시켜 부산의 만덕사가

바로 석기왕자와 관련된 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덕사가 정치적 음모에 희생된 절이라고 하며 어마어마한

고려시대 골육상쟁의 비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고려 때 배원정책을 폈던 공민왕이 조카인 석기왕자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부원파 들의 음모를 눈치채고 관련자 10명 중 일부는 참형에 처하고---

 

     

 만덕사에 유폐했던 석기왕자를 불러 올려 제주도로 보내는 길에

 자객을 시켜 석기왕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추대 음모 사건에 연루됐던 찬성사 강윤충에게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동래 현령으로 내려가서 석기왕자가 있었던 만덕사의 흔적을

없애라는 밀명을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어명을 받은 강윤충은 만덕사를 폐사시키고 피비린내나는 왕족간의

골육상쟁의 비밀을 깡그리 역사에서 지웠으며 ---

 

 

강윤충은 어느날 갑자기 원인 모를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덕사지 안에 남아있는 지주석들이 조각나 깨져 발견된 것도

정치보복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만덕사의 비밀을 푸는 것은 잃어버린 고려사의 일부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문헌이나 유물 어느 것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검증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두차례 발굴 과정에서 기비사(祇毗寺) 라는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기비사라는 이름도 역사의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발굴결과로만 본다면 이 절터는 기비사이지 만덕사지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기비사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가사입은 왕자 비구의 절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석기왕자의 이야기와 관련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만덕사지라는 거창한 이름만 듣고 찾아간 폐사지 였지만 만덕사로 들어가는

입구 하나 없고 남의 식당집 마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때 식당

주인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조속히 진입로를 개척해야 할 시급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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