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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12. 6.

포은 정몽주의 임고서원을 찾아서

 

영천 임고에 있는 서원으로 명종 8년(1553)에 정몽주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고천동에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는데 1555년에 임고(臨皐) 라고

 사액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선조36년(1603)에

양항리인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1643년에 장현광과 1727년에 황보인을 추가 배향 하였는데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며 --- 

 

 

1919년 존영각을 건립하여 정몽주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1965년에 복원되어 위패를 모셨으며 1980년 정부의

보조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정몽주의 어머니 영천이씨 부인이 임신 중에 난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다가  

 

놀라 깨어나서 낳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몽란(夢蘭)이라고

꿈몽자 난초난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정몽주가 아홉살이 되던 해에는 어머니께서 물레질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검은 용이 뜰 가운데 있는 배나무를 기어올라 --- 

 

 

황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배를 따 먹고 있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배나무를 보니 정몽주가 배나무에 올라앉아서 --- 

 

 

어머니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모습이 흡사 꿈에서 본

용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몽룡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관례를 치를 때에 아버지 운관이 꿈을 꾸게 되는데 꿈 속에 신선이

나타나 기에 어디서 오신 누구냐고 물었더니 --- 

 

 

나는 주공인데 그대 아들 몽룡은 이름을 남길 소중한 사람이니 잘

길러야 할 사람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꿈을 꾸고는 ---

 

 

꿈에서 주공(周公)을 만났다고 하여 몽주(夢周)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은선생이 9세 때 외가에 있을 적에 여종이 있었는데 낭군이 멀리

떠나가 있어서 보고싶은 마음에 편지라도 보내고 싶었으나 --- 

 

 

 글을 몰라 아기도령인 포은에게 편지를 써 주기를 청하였는데

포은이 즉시 편지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 

 

 

 그 여종은 내용이 궁금하여 밀봉된 편지를 몰래 뜯어보니

글자 수가 열자 밖에 안되어 몇자 더 써 줄것을 요청하니

14자를 더 써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처음 열자는

운취산(雲聚山)  =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월영휴(月盈虧)   =  달은 찼다가 이지러질지라도

  첩심불이(妾心不移)   =  첩의 마음은 변치 않겠습니다- 

 

 

 라고 썼으나 나중에 열네자는 그 뜻이 평범한

함료각개첨일어(緘了却開添一語)  = 

  이미 닫은 봉투를 다시 열고 한 말씀 더 보태나니 ---

 

 

세간다병시상사( 世間多病是想思)  = 

 세간에 병이 많다더니 이게 바로 상사병이구나--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여종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지어준 백로가에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 올세라

청강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이 백로가에 대한 화답이며  최후의 작품이라고 하는 단심가를 위한

암시가 아니었겠느냐는 이야기 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는 당시의 풍속이 불법을 숭상하여 백일탈상을 많이

하였으나 정몽주는 주자가례를 본 받아 열아홉에 친상을

당하여 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여묘를 했으며 --

 

 

스물아홉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을 내어놓고

 다시 3년간 시묘살이를 실천한 효행이

 

 

 바로 충을 실천한 근간이 되어 천추만세 만인의

사표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임고서원의 소장 판목은 장충판, 대우수전판, 포은선생

문집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충판은 1486년 포은 정몽주의 충과 효를 널리 장려하기 위하여

내린 목판으로 총 18장 중본 선죽판은 8번째 판이라고 합니다

 

 

대우수전판은 조선 중엽 유학의 대가인 허목이 현종 원년에 중국에

있다는 형산비의 대우수전 77자 중에서 48자를 선택하여

목판 양면에 새기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포은선생 문집판은 세종 21년에 처음 발간된 후 10여차례 더 발간

되었으며 현재 임고성원에 보존하고 있는 문집판은--- 

 

 

숙종 3년(1677)에 발간한 영천 재각본 판으로

 총 103장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포은 정몽주의 영정은 공양왕 즉위년(1389) 좌명공신 에 녹봉되어

공신각에 봉안된 이후에 오늘에 이르기 까지 수차례에 걸쳐 ---

 

 

 다시 그려져서 임고서원과 가묘, 숭양서원,

충렬서원 등에 봉안되어 있으며 ---

 

 

임고서원에 소장된 인조기사(1629년) 모본 영정의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르다고 하며 현재 보물 제1110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임고서원의 장학계안은 부절목에 보면 이 장학계안은 임고서원 유생과

향리 자제의 교육을 위해 각 문중과 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심원록은 임고서원 창건 이후부터 조선조 후기까지 이 서원을

내방한 인사들의 방명록이라고 합니다 

 

 

임고서원고왕록은 임고서원의 연혁과 당시의 원장, 유사 등 서원과

관련된 중요사실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에 노수, 김응생, 정윤량, 정 거 등이

 부래산 아래에 창건을 하여 1554년에 준공을 하였으며 ---  

 

 

명종대왕으로 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을 하사 받은 사액서원으로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에 향례를 봉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00년 고천 옛 터에

초가 1칸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다가 --- 

 

 선조 36년 도일동에 여헌 장현광을 배향하고 ---

 

정조 11년에는 지봉 황보 인을 추향하였으나 고종 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연세가 높으신 어른 한 분이 목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송진 같은 수액이 응고 된 것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시 고종 16년에 존영각을 지어

포은 선생의 여정을 봉안하였으며

 

1965년 복원하여 포은 선생의 위패만

봉안하여 봉향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사림의 건의로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구강당 뒤에

묘우를 신축하여 문충사라 현액하고

이안하였다고 합니다 

 

 

 1990년에 임고서원중건성역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거액의

국고금과  시. 도비를 지원받아 문충사를 비롯하여 ---

 

 

 내삼문, 유정문, 강당, 흥문당, 동재, 수성재, 서재, 함육재,

심진각, 전사청, 영광루등을 건립하였으며 --- 

 

 

 신도비, 사적비를 세워 제도를 완비하고

1999년 1차로 성역화 사업을 마치고 ---

 

 

이안고유행사를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2001년 지봉 황보인을 제배하고 현재 제2차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포은 선생은 과거의 3장에서 내리 장원을 하였으나

관료로서의 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인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약 20m

줄기둘레가 약 6m나 되는 수령 500년의 노거수이지만

생육상태가 아직도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옮겨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근자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그 근원지는 일부 후손들과 포항시의 일부

시민들이 제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학문은 천인에 이르고 충성은 일월을 꿰시니 전성을 빛내고

후학을 열어주는 것을  영세토록 그치지 않으오리다

라는 임고서원 상향축문에 쓰신 글의 내용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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