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문화재답사

효자 손순 유허비를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0. 9. 28.

효자 손순 유허비를 찾아서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 손순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비를 세

는데 현재의 비는 1970년대에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효자 손순과 석종에

관한 이야기는 효행의 기본적인 전

설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막상 현장

 가 보는 것은 처음이라

죄스러웠습니다  

현재의 위치가 손순이

살았던 모량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며 조선시대때 엇을

근거로 하여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손순 유허비는 원래 비문을 성재 허전(조선 후기의 문신)이

 1883년 9월에 짓고 비는 5년 뒤인 1888년

12월에 세웠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손순은 아버지를 여의고

 품팔이로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

 

 

 

 

 어린 자식이 매번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고

 있는 것을 본 손순은 아내와 의논을 하여

자식은 또 얻을 수도 있지만 ---

 

 

 

 

어머니는 다시 얻을 수 없으니 자식을 산에다 묻어버리자

 라고 하니 아내도 손순의 뜻에 따르기로 하여---

 

 

 

 

 취산(醉山) 북쪽에 올라가 아이를 묻을려고 땅을

파 보니 석종이 나오므로 이상하게 여겨

아이를 도로 데리고 내려 왔는데---

 

 

 

 

손순은 산에서 캔 석종을 집에다 매달아 놓고

 날마다 쳤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종소리가

궁중에 까지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

 

 

 

 

종의 연유를 알게 된 흥덕왕은 손순의 효성에 감동하여

집 한채와 쌀 50 섬을 하사 하였다고 합니다

 

 

 

 

 손순은 그가 살던 집을 시주하여 홍효사(弘孝寺) 를 짓고

석종을 걸어 놓았으나 진성여왕 대에 후백제의

 도적때가 쳐 들어와서 빼았아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의 비석은 1970년대에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위치가 손순이 살았던 모량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며

 

조선시대때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곳에 비를 세우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손순의 묘소를 현재의 학계에서 모량부로 추정하고

 있는 건천읍 모량 2리에 비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령이 350년 이상된 오래된 노거수 가지 위에 축조된 까치집들도

몇 번 개축을 한 것 처럼 층층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손순유허비각 안으로 들어가는데는 낙엽들이 쌓이고 쌓여서

발길을 옮길 때 마다 낙엽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낙엽을 밟고 올라서 보니 담장 밖으로는 예사 건물이 아닌 듯

일주문과 천왕문을 연상하는 듯 두채의 건물이 보여서---  

 

 

 

 

찾아가 보기로 하고 입구를 찾을려니 찾을 길이 없어서

물어 물어 남쪽으로 빙 돌아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서씨 종가댁의 사당이라고 합니다 뵙기를 청하니 때 마침 젊은

안주인인 듯 한 분이 나오면서 밥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안주인의  안내를 받아서 사당을 둘러 보면서 서씨 집안의 내력과

사당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어서 알 것 같았습니다  

 

 

 

 

 

서씨 종가집의 위폐를 모셔 놓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삼문입니다

 

 삼문과 사당이 일직선상으로 가까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당에 재사를 모시기 전에 문종 자손들이 

모여서 예를 갖추는 사랑채인듯

 

큰 건물이 서씨집안을 말해 주는 듯

중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효우당(孝友堂)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충훈고택(忠勳故宅)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서씨 종가댁의 안채입니다만 뒷편에는 커다란 고목에

 까치집들이 쌍으로 정겹게 자리하고 있는

평화로운 정경입니다

 

 

 헛 인사말이지만 차라도 한 잔 드시고 가라는 그 말 한 마디가

지금도 귓가를 맴돌 정도로 정이 담겨져 있는

정겨운 그 말 한마디 였습니다

 

 

 

 

 홍효문(弘孝門)으로 사당에 들어가는

문이 잠겨져 있습니다

 

 

 

 

  시조 문효공 유적보존회에서

세운 기적비(紀績碑)입니다

 

 

 

 

 손씨의 시조 손순(문효공)의 위폐를

모셔놓은 사당인 것 같습니다

 

 

 

 

 홍효문(弘孝門) 현판입니다

 

 

 

 

 까치밥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감들이 나무에서 손대면

 톡하고 터질 정도로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효자 손순의 이름을 딴 순우정이라는 정자가

마을에 있었음므로 순우정리라고 불러 오다가 ---

 

 

 

도성인 경주에서 보면 이 마을이 조그마하게 보인다고 하여

소현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