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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신륵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11. 6.

신륵사를 찾아서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 고종 때 건너 마을에 사나운 용이

 나타나 행패를 부리니 그 피해가 극심하였는데 인당대사가 용을 잡아 굴레를 씌우니

사납던 용이 순해졌다고 하여 절 이름을 귀신신(神)자와 굴레륵(勒)자를 써서

신륵사(神勒寺)라고 하였다고 하며 나옹선사가 입적한 곳입니다

 

 

여주는 남한강 중류의 평야에 있으며 옛부터 궁중의 진상미를 공급하는

곡창지대로 신륵사는 강변에 있는 보기드문 사찰입니다

 

 

나옹선사는 영덕군 창수면 사람으로 본명은 원혜라고 하며 법명은 혜근이고

법호가 나옹이고 왕사의 시호는 보제존자라고 합니다

 

 

나옹선사는 20세 때에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출가를 하였다고 합니다

 

 

나옹선사는 출가 후 원나라에 유학하여 인도 승려 지공 스님의

제자가 되어 임제종법을 이어받고  귀국 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신륵사에서 입적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옹선사의 선시가 우리집 거실에도 표구를 하여  걸려 있습니다만

어느 스님이 써 주신 글인데  거실에 앉으면 읽어 보게 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보제존자 석종비입니다   보물 제 229호로   나옹선사의 사리탑비 라고 합니다

이 비석은 목조건물 형식으로 비부는 이중기단으로 상하갑석에 연꽃문양을

 새기고비신 좌우에 우주를 새기고 가첨석은 기와를 덮은

팔작지붕 형태를 한 한옥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보제존자 석종입니다 보물 제 225호로 나옹선사의 사리탑이라고 합니다

탑의 모양이 종 모양을 하고 있어서 석종이라고 합니다

 

 

석등은 보물 제 231호로 화사석은 납석으로 만들고 다른 부분은

화강암으로 고려말기의 대표적인 조각양식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장명등의 조형이라고 합니다

 

 

화사석 윗부분에는 비천상을 새기고 있습니다만

비천의 얼굴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화사창의 기둥에는 반룡을 새겨 놓았는데

반룡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중기단의 상 하 갑석에는 연화문을 새기고 기단의 중대석에

탱주와 면석일 새겨놓아 아름답습니다

 

 

옥개석은 처마 귀를 접어 올려 놓았고

상륜부분이 그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사당은 보물 제 180호로 조선 예종 때 건립한 것

이라고 하며 다포계 형식의 건물입니다  

 

 

 조사당에는 중앙에 나옹선사를, 좌우에는 지공스님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왼쪽 부터 지공. 나옹. 무학대사 영정입니다

 

 

극락보전입니다  입구에서 보면 2층입니다만

다층석탑이 있는 곳에서는 1층으로 보입니다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들입니다

 

 

신륵사 다층 석탑은 보물 제 225호로 흰 대리석의 일반형

석탑 양식으로 기단부는 2층으로 하고 있습니다

 

 

 상하 갑석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고 면석에는

용트림과 구름무늬를 조각하였습니다

 

 

신륵사 다층석탑은 조선 성종 3년1472년에 건립한

조선초기의 우수한 탑이라고 합니다

 

 

신륵사에 있는 다층 전탑은 보물 제 226호로 신륵사의 동쪽

강변 언덕 위에 시원스럽게 서 있습니다

 

 

조성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분황사 모전석탑(634년)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탑은 위치한 곳이 동대라 하여 이 탑을 동대탑이라고도 하며

탑의 모양이 아름답습니다

 

대장각기비는 보물 제230호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제반 기록의 내역을 새겨 놓은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고려 우왕 9년(1383년)에 세웠다고 합니다 비문은 고려말 학자

도은 이숭인이 짓고 공민왕 때 문신 권주가 썼다고 합니다

 

 

이 곳에 있던 대장각에 목은 이색과 나옹선사의 문하생들이 발원하여

경, 율, 논, 삼장을 만들어 수장하고 대장각기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2년(1726년)에 탑을 수리한 기록으로

 신륵사 동대탑 중수비가 있습니다 

 

 

탑의 기단은 화강암을 5중 기단으로 층을 이루고 기단석 가운데는 동서남북

방향을 나타내는 북(子) 동(卯) 남(午) 서(酉)를 새겨 놓았습니다

건립시에는 7층이었으나 수리과정에서 6층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진회 회장님의 신륵사 답사 모습입니다

남한강 변에 새워진 강변의 절이라 그 운치가 한결 더 한 것 같습니다

 

 

신륵사의 강월헌입니다 신륵사는 고려의 마지막 학자 세사람의 유명한 충신

삼은인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목은 이 색으로 삼은이라고 합니다

 

 

고려가 망하고  불사이군으로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철퇴로 맞아죽고 길재는 선산 금오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이색은 이 곳 신륵사에서 두문불출하였는데 이성계가 사람을 시켜 강제로

 남한강에 뱃놀이를 시키면서 독주를 먹여서 죽였다고 하는 곳입니다

 

 

이색(1328-1396)과 나옹(1320-1396)은 고향이 같은 영덕 사람으로

신륵사에서 입적을 하였다니 이것 또한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 하겠지요?

 

 

신륵사를 여러번 다녀왔습니다만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냥 관관광을

 목적으로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 연례행사로 그냥 다녀온 곳으로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쳐 몰랐습니다 

 

 

신륵사 앞 남한강에는 수시로 운행한다는 황포돗대 승강장이 있습니다만

갈 길이 너무 멀어 오늘은 그냥 발길을 돌리려나 봅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남한강 물속으로 뛰어 들려고 하는 장난기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속에 있는 기록으로 봐서 5년전에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이 곳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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