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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답사

강릉지방의 폐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10. 19.

강릉지방의 폐사지를 찾아서

 

2009. 06. 06(수) 강릉지방에 있는 폐사지를 찾아서 떠나 보았습니다 강릉하면 오죽헌

이기에 여러번 가 본 곳이지만 다시 가 보았더니 오죽헌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강릉

시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강릉시립박물관은 향토민속관, 역사문화관, 율곡

기념관,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복사지에 있는 3층석탑과 석조보살

좌상을 둘러 본 다음 굴산사지의 당간지주, 부도, 석불좌상, 서낭당과 학마을을

둘러 본 다음 보현사로 가서 낭원대사오진탑과 오진비, 대웅보전 대웅보전, 

사자모형의 석물과 석탑 그리고 폭포수를 만들며 흘러 내리는 물레방아

계곡에서 손발을 담그고 온 강릉 여행길 입니다 몇번이고 가 봐도 또

보고 싶은 강릉은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오만원 신권에 나오는 화폐의 주인공 신사임당의 원본을 공개한다는 현수막입니다

오늘따라 우산없이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비를 맞고 앉아 계시는 신사임당의 동상입니다

빗물로 인자하신 얼굴에 얼룩이 졌습니다 

 

 

 율곡 이이의 동상입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율곡 이이의 동상이

출구 쪽에 신사임당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오죽헌에는 오죽헌, 문성사, 바같채, 어제각, 율곡기념관이 모여 있습니다

 

 

 오죽헌에는 여러번 가 보았습니다만 오죽이 어디 있드냐고 묻는 말에 본 것 같기도

하다고만 답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확실하게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색이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강릉시립박물관은 오죽헌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역사문화관,

향토민속관,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송사지 석불좌상으로 보물 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머리와 오른 팔이 없어진

보살상이지만 입체감이 풍부하고 활달한 조각기법으로 한송사가 폐사된 후

1992년에 시립박물관으로 옮겨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송사지 석불좌상으로 흰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한송사지에 있던 것을 1912년에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반출하였다가 1966년에 한일협정으로 반환되어 국립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오다가 현재는 춘천박물관의 개관으로 이전 전시되고

있으며 이 전시품은 모조품이라고 합니다

  

 

 율곡기념관입니다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 누이 매창,

아우 옥산, 이우의 작품들을 모아둔 곳입니다

 

 

 무녀도에 나오는 무녀복장인 것 같습니다

 

 

 남자 선비들의 관복 인 것 같습다

 

  

 글씨를 형상화하여 수 놓은 8폭의 병풍입니다

 

 

 신복사지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탑을 향하여 공양을 하는 모습입니다

 

 

 공양을 하고 있는 모습의 보물 84호인 석불좌상은 왼쪽 무릎을 세운채 석탑을

향하여 꿇어 앉은 석불좌상의 얼굴은 부드럽고 복스러우며 입술은

꼭 다물었으나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신복사지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신복사는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며 네모진 2중기단위에 삼층으로 축조된 탑으로 각 층마다 끼어 있는

괴임돌과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 있는 점이고려시대

초기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석탑이라고 합니다  

 

 

 굴산사지가 있는 학마을입니다

 

 

 학 마을 이라기에 학을 한 번 볼려고 찾아다니다가 멀리서 무리를 지어

 내려앉는 학의 무리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고급카메라가 없는 것이 한스럽기도 합니다

 

 

 서낭당이 차려진 곳입니다 옛날 어릴 적에 우리 고향 마을 뒷산마루에 있던

서낭당은 돌무덤으로 왕릉처럼 높게 쌓였던 서낭당이 생각납니다

 

 

 범일국사의 설화에 나오는 짝귀스님의 돌부처를

찾아낸 이야기의 시냇가 입니다 

 

  

두손을 합장한 모습이 멀리서 보면 부처님의 모습으로 비인답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굴산사지의 부도는 팔각원당형의 석조부도입니다

 

 

 부도에는 지대석이 1석으로 큼직하게 조성되었는데 하면부터 상면까지

모두 팔각이며 8각의 측면에는 각면마다 1좌의 사자상을

 조각하여 배치하고 있습니다

 

 

 굴산사지의 당간지주는 높이5.4m의 거대한 한 덩이의 돌을 사용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각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서로 마주보는 내면과 외측면이 수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대한 규모에 알맞게 소박하고 강경한 수법을 보여 통일신라시대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굴산사지의 석불좌상은 석불입상으로 알려졌으나 1992년 해체보수 때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고 낙뢰의 피해를 입은 듯 전신에 균열이 있고 상호와 수인,

하반신의 파손이 심한 편입니다 그러나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습니다

 

 

 보현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시대의 낭원국사 보현이 창건하여

지장선원으로 불리다가 후에 보현사로 개칭을 하였다고 합니다 

 

 

 낭원대사 오진석탑비의 모습입니다 거북의 등에는 6각의 거북등무늬가 

새겨져 있고 구름무늬로 장식을 한 비좌가 있습니다 

 

 

 두 마리의 용이 투각된 머릿돌의 가운데에는 복발과 1단의 보륜이 있고

 불꽃 무늬에 싸여진 보주를 얹어 놓았습니다

 

 

 낭원대사 오진석탑비는 사각의 지대석 위에 용두형 귀부를 얹고

그 위에 높은 비신을 세운 전형적임 부도비입니다

 

 

 낭원대사는 속성이 김씨이고 이름은 개청이고 13세에 화엄사에서 정행법사에

의해 승려가 되었고 통효대사 범일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낭원대사는 이 곳 보현사에서 96세로 돌아가셨으며 태조는 대사에게

시호를 낭원, 탑 이름은 오진이라고 내렸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집입니다  

 

 

 현재 보현사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삼성각, 만월당, 범종각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사자모형의 석물과 석탑이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문을 벗어나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물레방아의 물소리가 이마에 맺힌 땀을

씻겨 주는 시냇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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