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답사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을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4. 21.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을 찾아서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25년에 걸쳐 완성된 대하소설로서 4만매의 원고지에 6백만자로

 이룩된 우리문학 최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토지는 규모면에서 대작일 뿐 만

아니라 한민족이 스스로 위대한 존재로 일구어 낸 조선근대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화폭에 담은 민족의 서사시이며 그 자체가 사상적으로나 예술적

으로  아름답고 풍요하며 장엄하고 위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최참판댁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인공이 살던 최참판댁을 들어가는 대문입니다

이 집에서 갑오동학과 농민전쟁으로 수백년간 유지되어 오던

봉건질서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공간입니다 

 

 

 한말에서부터 일제의 식민지를 거치는 동안 해방이 되기까지의 60여년을 관통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경남 하동의 평사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발원한 사건들이 지리산,

진주, 통영, 서울, 간도, 만주, 일본, 중국, 등지로 활동무대를 화대해

가면서 줄기와 가지를 뻗어가고 있던 곳입니다

 

 

 박경리는 1926년에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1957년부터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불신시대, 김양국의 딸들,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엿습니다

 

 

 박경리는 6.25 전쟁 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ㄴ는 고통을 겪었으며 불신시대라는작품을

 통하여 전쟁의 참상과 사회의 부조리함, 그리고 여성으로서

사는것의 부당함과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었습니다

 

 

 박경리는 "나는 괴로웠기 때문에 소설을 썼고 소가로서의성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바란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박경리의 소설에서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남성부재' 는 결국 한국여성의 한이

어떻게 남성의 부재를 이겨내는가라는 주제로 모아졌고 이것이

토지의 생명사상과 모성애의 강조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토지에서는 주인공 최서희의 삶을 통해 한국적 여인상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최서희를 통해 한국여인의 한을 재현하며 비극을 이겨내는 모성의

 힘을 중요한 삶의 원리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잠시 작가 박경리와 주인공 최서희의 삶을 생각하면서 별당에 앉아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과 모성의 여성상은 한국의 여성억압이라는 역사 속에서

우리 어머니들으의 삶과 박경리의 삶에 대해서 생가해 봅니다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그 문을 열게 됩니다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저 논밭들이 모두 최참판댁으의 땅이라고 하니 대지주는

지주인가 봅니다 섬진강변이라서 기름진 옥토였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안주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이 절에 갔다가 김개주에게 겁탈당하면서

김환(구천이)을 잉태하게 되면서 멸문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김환은 최씨 가문의 하인으로 잠입하여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지리산으로 도망을 치고 최씨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 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지요 

그 사당이 너무나 허술합니다

 

 

 토지에서는 수천년 동안 남자들의 손에 있던 경제권이 여성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아마도

 최참판댁의 여인들이 돈과 땅문서들을 보관해두고 관리해 오던 돈괘인 듯 합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복된 땅으로 악양이란 지명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저가 최참판이 되어 악양 평사리들판을

 감시 감독 관리하고 있는 역할을 해 봅니다 

 

 

 평사리가 한 눈에 쏙 들어 오는 최참판댁 사랑체 대청입니다 아마도 이자리에서

최참판은 누구는 부지런 하고 어떤 이는 게으르며 놀고 있는가 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고 푸른물이 넘쳐난다는 섬진강물이 하얀 모래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믐이 너무 오래도록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재첩이나 참게 맛도 보기가 어려워 질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유산답사 7기들의 모임입니다 토지에서는 전근대적 사회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여성이 먼저 남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참판댁에서 바라다 본 악양천과 악양들, 그리고 평사리 들녘이

한 눈에 들어 오는 명당자리입니다

 

 

 옛날 방을 쓰는 방빗자루를 만드는 수숫대 입니다 털어서 수수를 모두 털어낸 다음

 말려두었다가 농한기가 되면 머슴들이 초당방에서 빗자루를 매곤 하였답니다  

 

 

 짚신입니다만 어딘가 엉성합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이 신발을 신고 무거운

짐을 잔득 지고는 몇 걸음도 걸어가지 못 할 것만 같습니다

 

 

 가마니를 치턴 가마니틀입니다 새끼를 가늘게 꼬아서 씨줄을 넣고 가미니틀에 건 다음

 짚을 잘 추려서 물로 축인 다음 바디 사이로 볏짚을 밀어 넣는 방법으로

 가마니를 후루저녁에도 몇닢씩 짜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 것은 무명베나 삼베를 짤 때 쓰여지는 기구들입니다 등겻불을 피워 놓고 무명천의

 씨줄이 될 실 오라기들을 일일이 연결하여 나란히 감아 두는 곳입니다 

위에 있는 것은 실꾸리를 넣어서 날줄로 쓰는 북입니다

 

 

 토지를 쓴 박경리가 악양의 너른 들판과 섬진강이내 려다 보이는 평사리의 산 기슭을

 깎아서 그 자리에 지은 최참판댁을 직접 돌아다 보면서 하는 말이

 "지리산에 미안하구나 ! " 라고 하였답니다

 

 

 25년간 집필한 5부 21권의 대하소설 토지에 흐르는 주제가 생명이라고 볼 때

 지리산아 미안하구나 라는 짧고 소박한 한 이 말 마디가

토지 속에 몽땅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평사리의 억양 들판은 80만평이나 된다고 합니다 섬진강변 19번 도로에서

보기에는 황금들판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데 계곡지형이라

논들이 계단을 이루고 사방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최참판댁의 평사리 마을은 고소산성으로 가는 길목으로 경사가 급한 산 기슭의

 작은 마을로 계단식 논과 돌담으로 이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마차가 아니라 손 수레 인 것 같습니다 

 

 

  박경리의 토지문학비가 마을 입구에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 평사리의 넓은 들에는 소나무 두그루가 주변의 풍경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는데

바로 그 옆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름을 붙인 동정호가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일원으로 온 소정방은 백제를 치러 왔다가 이 곳에 들렸다고 합니다

 그는 산 한 가운데에 있는 호수의 풍경이 중국의 악양과 흡사 해

이곳을 악양이라고 불렀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있는 곳은 물 가운데 있던 섬으로 간척된 악양의 상전벽해급 변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민족의 대서사시인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곳 평사리의 11,000여평

 부지에 최참판댁 한 옥 10 여동과 29동의 초가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유물도 전시되어 있는 저자거리가 있으며

300여평의 평사리문학관에는 박경리의 토지, 김동리의 역마를 비롯하여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하동문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