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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문익점목면유전비와 면작기념비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9. 4. 2.

문익점목면유전비와 면작기념비를 찾아서

 

고려 공민왕 때 삼우당 문익점선생이 원나라에사신으로 갔다가 3년 후에 귀국

 때 금주성에서 목화 종자를 필관에 넣어 가지고 돌아와서 그의 장인인

정천익으로 하여금 경남 산청에 시험재배를 한 것이 우리나라에 목화를

재배한 시초라고 합니다 그 후 조선 태종 때 그의 손자 승로가 의성

 현감으로 부임하여 금성군 제오리에 목화를 파종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익점 목면유전비

 

문익점 선생의 면작을 기념하는 면작기념비석입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종합 안내도입니다 안내 표지판으 따라

가벼운 운동을 겸하여 걸어 보았습니다

 

 

문익점 면작 기념비를 알리는 지방향토유적 표지판이 바로 옆에 서 있습니다

 

 

둥글게 만들어진 피기 직전의 목화송이 처럼 생긴 집이

의성 금성산 고분군 종합 안내소입니다

 

 

 의성 금성산 고분들이 많이 모여서 고분군을 만들고 있습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주차장 옆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입니다

삼한시대의 경덕왕릉이 195m로 가장 멀리 있습니다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면작 기념비입니다

 

 

면작기념(棉作紀念)일고만 씌여져 있습니다

 

 

1909년에 지역 주민들이 파종한 원전(元田)에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다시 1935년에

 금성면 대리리 현 장소에 기념비를 세워 널리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분군은 의성 금성산 고분군으로 전(傳) 조문국 경덕왕릉을

비롯하여 약 200여기가 있다고 합니다

 

 

 고려 공민왕때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붓 두껍에

 넣어가지고 온 것을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있을 때 의성군의 지세가

 금주성과 흡사하여 제오리에 재파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우당 문익점 면작기념비는 금성면 제오리에 있는 천년기념물 제 373호로

 지정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문익점 면작기념비를 알리는 입간판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쪽에서 사진들을

찍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데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라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목월의 윤사월이란 시가 있습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욋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처녀가 이 시를 엿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낙동강이 감도는 경북의 중심인 의성과 21세기를 선도하는 의성의 ㅇ과 ㅅ을

형상화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의성군의 마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해발 몇m라고 할 때 그냥 바다의 수면에서 부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좋은 공부를 하게 되어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 번 올려 봅니다

 

 

 우리나라의 높이 기준인 인천만의 평균해면( 0.0m )으로 부터의 차이를

정밀 수준 측량 방법으로 산출하여 표시한다고 합니다

 

 

  수준점은 이지역 높이 측량의 기준으로 국가기본측량과

지도제작 등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의성군은 역시 의와 예의 고장인 것 같았습니다 산수유 축제에 갔다가 복잡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 가는 길을 70대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께 물었더니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

더라고요  우리 일행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를 움직여 가고 있는데 그 어르신네가

 막 뛰어 오시더니만 그 길 보다는 이쪽 길이 덜 막히고 더 빠르겠다면서 다시 뛰어

오셨다는 겁니다 감동받았습니다 어르신네 덕분에 빠른 길로 잘 왔습니다

어르신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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