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로사를 찾아서
비로사는 소백산 비로봉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로서 당간지주와 진공대사보법탑비,
아미타불좌상, 비로자나불 좌상 등의 유물들이 이절의 유서깊은
내력을 말해 주고 있는 명찰입니다
비로사
2009.01.18(일) 일요산악회에서 소백산 비로봉 눈꽃축제를 간다기에 옛날 군대시절에
스키부대대원으로 고생했던 과거도 회상해 볼 겸 일일 회원으로 참가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비로사를 보게 되어 행운을 잡았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라 사진은 별로 인 것 같습니다
비로사 앞 이정표
비로사 앞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이정표입니다만 3.7km가 왜 그리도 멀고 먼지요 신발에 아이젠은
걸쳐 놓았지요 일행들은 빠르게 달아나지요 마음은 비로사를 먼저 보고싶어 경내에 머물고
있지요 아무튼 힘든 산행이었습니다만 하산 길에 비로사를 들려 보았습니다
당간지주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높이가 약 420cm이며 경북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비로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라고 합니다
당간지주의 윗모습
기단의 양기둥 사이에는 간을 받치는 간대석이 있으며 간을 꽂기위한 구멍이 상하에
두개를 뚫어 놓았습니다 절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사찰 입구에 이것을 세워서
그날의 행사를 널리 알렸다고 합니다
부도와 부재들
어떤 의미를 가진 부도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8각의 하대석에는 복련이 양각되어 있으며 그 위에
중대석을 받쳐놓았는데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듭니다 그 위에 올려진 옥개석은
부서지고 깨어져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보수 중인 종각
부도 바로 옆에 있는 종가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입니다만 종각의 보수도 중요하겠지만
부도 옆에는 광배로 보이는 석재에는 양각으로 불꽃무늬와 화불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제자리를 빨리 찾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 탑비
이 비는 승려인 진공대사의 탑비로 대사의 시호는 진공이며 탑호는 보법이라고 합니다
화강암으로 된 탑비의 높이는 283cm인데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새김이 얕으며
머리는 입을 약간 벌린 용머리이며 등에는 낮은 돌기둥 자리가 있습니다
화려한 이수
비신은 깨어진 것을 복원은 하여 놓았으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서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곤란하나
조선금속총람에는 현재의 비석에서 판독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비신에 비해서 이수는 조각솜씨도 화려하고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편이라고 생각됩니다
귀부에 하얀 눈이...?
경주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귀부라서 눈이라도 쓸어 버리고 자세히 보고싶었지만
눈에 슬적 가려진 귀부 모습도 귀하게 생각하고 그냥 보고 또 보았습니다
흩어진 부재들
보탑비 옆에는 여러가지 부재들이 흩어진체로 눈을 맞고 있는데 이 귀하신 몸들도
하루 속히 제자리를 찾아가서 옛모습을 되찾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 지은 루각
아마 아직도 공사중인 것 같은데 누구신지는 몰라도 가까이는 가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마 식사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풍기는 냄새가 절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보아서는 아니될 그런 풍경을 보았습니다
신축중인 불사
일주문에서 부터 수 많은 불사들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바쁜 모습들입니다
법당도 새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비로사 전경
비로사는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넓게 자리하고 있으며 680년(문무왕 2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이라고 하지만 당간지주와 불상 등이 남아 있을 뿐
건물들은 대부분 새로 지어진 건물이거나 불사 중에 있습니다
적광전 현판
새로지은 적광전은 비로사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법당 앞에는 3층 석탑이 있고 적광전 안에는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아미타불좌상과 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금으로 칠한 석조좌불
좌측에서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석조아미타불좌상과 우측의 왼손 검지를
오른 손으로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제996호로 적광전 안에
모셔져 있으며 돌부처에금칠을 했다는 것과 결가부좌를 한 모습은
같으나 수인과 얼굴모습, 머리모양, 옷이 구별됩니다
석조 아미타불 좌상
이 아미타불좌상은 높이가 1.13m이며 얼굴표정이 엄숙하고 나발과육개가 연결된 것 처럼
보이며 옷은 우견편단으로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 바닥을 위로 하고
양손의 엄손가락과 검지를 맞대고 있어서 아미타불의
상품상생인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층석탑
적광전 앞에 서 있는 3층으로 보이는 이 탑은 전체를 보는 것 보다 탑재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한층 한층은 부재들이 멋스러운데 전체적인 조화로움은 없는 것
같아서 보는이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8각 기단부와 기단석
진공대사가 유훈으로 남긴 말씀에 가을 단풍이 맑은 시내에 떨어지는 것 처럼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아리면서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것과 상하가 화합하고
예의 질서를 지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옥개석과 옥개받침
진공대사는 옳지않은 일은 불구덩이를 피하듯 처음부터 행하지 말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항상 조심하여 여법하게 수행토록 하라는 유훈도 남겼다고 합니다
비로사의 창건 설화
의상이 제자인 진정의 홀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비로사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초가를 짓고
화엄경을 강의하였고 90일 동안 계속된 강의가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하늘에서 환생 했다고 말했다는 설화입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산신각
저 높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미끄러운 계단을 올랐더니 역시나
산신각이었는데 이 역시 새로 지은 건물로 높은 고이라 비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입니다
엽서 그림 같은 민박촌
안쪽에 외롭게 서 있는 부도
8각으로 된 지대석 위에 기단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상대받침 위의 앙련은
크게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옥개석은 부드러운 곡선을 하고 있습니다
비로봉 오르는 길목에서 쓰러진 나무처럼
춥고 허기진 배를 따끈한 물로 채우면서 쓰러진 고목 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을 생각해 봅니다. 왜 내가 이 험난한 눈길을 힘들게 오르느냐고요 ?
비로봉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길래 이를 악물고 오르느냐고요 ?
오늘도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진공대사 보법탑비 비편 찾았다 는 새소식
영주 동양대 박물관 진공대사 보법탑비 비편 찾았다고 합니다
왼편 하단 결실 부분 해당…완전 복원 가능할 듯 하다고 합니다
영주 동양대박물관(관장 노대환)이 비로사 경내 정비를 위해 지난 5월26일부터 이 일대 190㎡ 를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라진줄로만 알았던 진공대사 보법탑비(眞空大師普法塔碑) 비편을 발견했다. 따라서 비로사(毘盧寺) 경내 진공대사 보법탑비를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비문 파편은 길이 61㎝에 폭 57cm, 두께 20.5cm로 15줄에 걸쳐 총 182자가 새겨져 있다. 조사단은 "현존하는 진공대사비 비신은 높이 206cm로 왼편 하단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는데 이번에 발견된 파편이 떨어져 나간 곳과 아귀가 꼭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진공대사 보법탑비는 신라~고려 왕조 교체기 불교계나 정치권 동향, 당시 서예사 연구에 제1급 보물로 꼽히지만 비문 일부가 깨져 나가는 바람에 해독에 애를 먹었다. 모두 182자가 새겨긴 진공대사비는 상단부를 비롯한 일부 구간만 글자가 훼손됐을 뿐 전체적인 모습을 복원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 비는 신라 문성왕 17년인 855년에 태어나 고려 태조 20년인 937년에 향년 83세로 입적한 진공대사라는 선승의 공적을 기려 그의 입적 2년이 지난 뒤인 태조 22년(939)에 왕건의 명으로 완공됐다 탑의 비문은 최언위가 완성하고 글씨는 이환추(李桓樞)가 썼으며 이를 최환규(崔煥規)가 돌에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비문 전체의 글 구성으로 볼때 이 파편은 비문 후반부의 결실된 부분에 해당되고 있다고 조사단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이번 비편이 발견됨에 따라 진공대사가 생전에 김해와 소백산에 머물면서 대중을 교화하는 모습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 931년과 937년에 각각 태조 왕건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 그리고 입적 시기와 비석을 세우게 된 과정, 대사를 추모하는 사언절구체 추모 명(銘)도 보다 선명하게 밝혀 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노대환 조사단장은 "그 동안 학계에서는 진공대사비 판독과 해석 작업을 진행했으나 결실된 부분이 많아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 182자가 새겨져 있는 비문 파편을 발견함에 따라 비문 내용 파악은 물론 나말여초 선종 및 선사들의 활동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로까지 건축 시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건물터 2개 동이 확인됐으며 이 무렵 연화문 수막새와 당초문 암막새 조각 여러 점과 청동으로 만든 동물조각상 1점도 수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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