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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사천왕사지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08. 12. 13.

 사천왕사지를 찾아서

사적 제8호 경주 사천왕사 터의 가람 배치가 확인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낸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중 가장 빠른 연대의 건축물 가람배치가 밝혀졌다고 합니다.  찬란했던 통일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사천왕사지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발굴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사천왕사지 발굴 현장 

 

이 녹유전은  서탑지의 기단에 부착된 상태로 확인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천왕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19년에 창건되었으며 당나라와 전쟁을 하던

신라가 명랑법사의 건의로 낭산 남쪽 신유림에 절을 짓고 문두루비법을 통하여 

당나라 군을 물리쳤다고 하는 호국불교의 사찰입니다   

 

 

사천왕사터를  발굴하면서 출토된 수 많은 불적들이 한 점 한 점 세밀하게

확인작업을 거쳐서 정리, 분류하고 관리 보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사역 내에는 금당지와 동,서 목탑지. 추정 동서 단석지(불교의 의식공간).회랑지.

익랑지. 석등지 등의 가람배치가 발굴되고 있습니다만 일제 강점기에 사역을

가로 지르는 철도가 가설되어 정확한 가람배치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당초문전이 정교하게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명랑법사가 문두루비법을 행하자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 당나라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초기에 창건된 사천왕사는 쌍탑 가람배치가 처음 등장한 사찰로

신라 사찰의 모본이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녹유전은 기단부 지대석 위에 부착되어 면석의 용도로 쓰였는데

이 사진은 물기를 흠뻑 머금고 있는 녹유전 출토 상태입니다

 

 

이 녹유전은  서탑지의 기단에 부착된 상태로 확인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녹유전이 탑의 사방에 부착되었다고 한다면 전방위를 지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합니다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왕사라는 명문이 찍혀 있는인장전입니다

 

 

동물모양이 조각된 토기의 파편입니다만 동물의 형상은 완벽하게 남아 있습니다

 

 

발굴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단원들이  차거운 날씨에도

물을 끓여가며 세척과 확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불적들을 수작업으로 하나 하나  세척이 끝나면

물기를 제거하고 분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분류작업이 끝난 사료들은 파손되지 않도록 플라스틱 큰 박스에

명세표와 함께 분리 보관 되고 있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 발굴된 명문 중에는   

사천왕사라는 명기와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소라모양의 토제품이 확인되었는데 오른쪽으로 감겨 있으며

부처의 나발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주칠이 되어 있는 연목와, 녹유부연와 등의 특소기와도 많이

발굴되었으며 전이나 기와의 측면과 상면에 도장을 찍은

인장전, 인장와도 많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천옹사지 발굴에서는 수막새는 연화문

암막새는 인동문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사천왕사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수막새의 모양들입니다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는 목적으로 만들었고

탑은 석가모니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탑과 부처님의 형상은

다 같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당지 계단 주변의 모습입니다 기단을 몇번이나 다지고 또 다진 흔적이

한 눈에 보입니다 기단은 지대석, 면석, 갑석을 갖춘 가구식 기단으로

지대석 외곽에 문양전을 깔고 장대석을 두른 이중 기단으로 추정됩니다

 

 

 사천왕사의 기단부는 대지를 정지한 뒤 큰 할석과 천석을 깔고  그 위에

사질점토를 다져서 편평하게 한 다음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여

11단으로 판축하여 성토를 하였다고 합니다

 

 

 익랑이란 가람의 중심인 금당과 회랑을 연결시키는 시설로 사용된 초석은

모두 유실되었으나 적심석은 대부분 남아 있습니다  

 

 

 목탑의 기단 형태는 가구식전석축기단으로 사방 중앙에

계단을 설치하고 그 양쪽에 지대석을 놓아서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지대석 중간에 장방형의 홈을 파고 탱주를 배치하였으며

기단 모서리에는 얇은 단을 만들고 그 중아에 홈을 파서

우주를 고정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천왕사는 신라의 뛰어난 조각가 양지스님이 작품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녹유전은 모두 3가지 형식으로

점토로 만든 틀을 이용하여 찍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사천왕사지 주변의 낭산 일대에는 선덕여왕릉, 전 신문왕릉, 등이 있고

국도를 사이에 두고 망덕사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사지는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학술심포지움에서도

토론자들의 주장이 다르게 나탄나고 있는 점도 있으므로 정밀조사와 외곽지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해 가면서 수정 보완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사진은 발굴현장에서 근접 촬영을 한 사진 자료들 입니다

이 곳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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