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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답사

분황사를 처음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9. 23.

분 황 사(芬皇寺)

 

분황사는

향내날 분, 임금황,

절사를 쓰고 있으며 분황사

연꽃(분다리) 부처님(각황)이란

세상의 괴로움과 번뇌에 물들지 않은

분다리와 같은 부처님의 도량이란  뜻으로

신라 27대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선조25년(1592)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분황사는 칠처가람

중의 하나로 법등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사찰입니다.  분황사

 

 

칠처가람이란?

흥윤사(경주공고자리), 영흥사(경주시 탑동수원지동편),  

황용사,   분황사,    영묘사  (오릉교  북쪽  흥윤사 터), 

사천왕사 (낭산 남쪽 배반),    담엄사 (오릉주차장 자리)

 


분황사를 창건하게 된 까닭은?

진평왕이 54년간 즉위하였으나 왕자가 없이 세상을 뜨자

 덕만공주가 27대 선덕여왕이 첫 여왕으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웃나라에서는 여왕이라고 얕보고

번갈아 가며 침략을 계속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부처님의 위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을려고

절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1탑, 3금당 식의 독특한 가람 배치

고구려는 3금당이 모두 탑을 향하고 있는데 분황사는

 1탑 3금당에 품자형 가람배치라는

신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게 됩니다

 

 

모전석탑이란? 

분황사는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은

모전석탑을 중앙금당 앞에 두고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탑은 탑파 또는 스투파라고도 하며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옛날에는

불상보다 탑을 더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탑은 목탑, 전탑, 석탑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은탑으로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안산암으로 동해안에 있는 대왕암,

의견대 부근의 돌을 정성드려 옮겨와서 쌓은 탑으로

 처음에는 9층이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3층만 남아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탑의 기단부는 자연석으로 하고 그 위에 그랭이공법을

 적용하여 튼튼하게 기단을 쌓아 올렸으며

 

사자 4마리- 1층탑신- 4면에 화강암 출입문

 

 

부처님을 모시는 감실이 있고  양 옆에는

부처님을 수호하는 인왕상이 있습니다

 

 

 

사리와 발굴 보수 내용

1차(고려시대).   2차(조선대 3층)

3차(1915년 일본. 해채 수리)-2층과 3층사이 석함-사리함

-부인들의 소지품인 실패, 바늘, 가위, 방울, 황옥

 

-선덕여왕의 소지품일 것이라 짐작

-고려 때 사용했던 엽전 나옴 -보수

-1층 틈새가 벌어짐-여러가지 원인-1920 일본

-국도 4호선-피해-1970 절 뒤 새길 을 냄



석정 = 3용 변어정

 

겉면-8각-부처님의가르침인 팔정도

내부-원형-원불의 진리를 상징

 

석정,동지,청지-호국용3마리-원성왕11년(795) 당나라 사신

-호국용3마리를 훔쳐 물고기로 변신-대나무통

-찾아와 우물속에 다시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화쟁국사비와 김정희 글씨

 

고려 숙종6년(1101)원효와 의상이 동방의 성인임에도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서 애석하게 생각하고

 

-원효 - 대성화정국사 라는 시호 - 비석

-비신은 없어지고 대좌만 발견-김정희-확인

-차화쟁국사지비적 이라고 써 놓음

 

碑  師  靜   此

蹟  之  國   和

 


 약사여래 입상

보광전-중생들 질병 구재-약사여래-경덕왕때 구리30만6700근

-신라최대 약사여래상-전란에 유실

-현재 봉안된 부처님은 조선시대 때 것임



당간지주

 

당간을 세우는 지주- 당간은 당을 거는 장대

 

 

 

- 당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나타낸 커다란 그림이나 괘불

 

 

 

- 거북으로 된 간대가 남아 있고- 절 입구




 발굴, 조사는?

 

 

1965 북쪽 우물 속-목 없는 불상

-경박물관 노천 전시

-숭유 배불정책

 

 

 

1975 동국대박물관 - 보광전(법당)

 

 

 

1990 경주문화재연구소 - 연차적 발굴 중

- 가람배치를 밝히기 위함



원효와 설총 이야기-속성은?

 

 

원효는 경산 압량에서 출생.

어머니의 태몽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져서 품속으로 들어 옴

-아기를 가짐-깅을 가다가 밤나무 밑에서 해산

-남편 옷을 밤나무에 걸어두고 누워있었다

-나무 이름을 사라수-옷이 날리는 모양


쓸 대 없다는 말

 

 

원효가 아들 설총에게

- 빗자루를 주면서

-네 마음을 쓸듯이 마당을 깨끗이 쓸어라

 

-설총이 마당에 나와보니

-누군가 다 쓸어 놓아 쓸 대가 없었다

 

 쓸대가 없다 - 쓸 대 없는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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