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
가장 오래된 천문대
첨성대(瞻星臺)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선덕여왕 대에 만들었다고합니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으로부터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으로 쌓아 올렸으며 그 위에는 井자석 2단이
놓여 있습니다. 첨성대는 원주형의석조 건축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술병 같은 모습입니다
첨성대의 용도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데 천문과 관련된 상징적인 건축물로 보는 사람도 있고 국방과 관련된 봉화대라고도 하며 불교의 우주관과 결부시켜 제단으로 보기도 합니다.
첨성대는 천문과 관련된 상징적인 석조 건축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첨성대는 크게 기단부, 원통부, 정상부의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기단부는 바닥이 침하되지 않도록 숯. 모래. 자갈. 진흙. 소금. 석회등으로 잘 다진 다음 지면 위에 2단으로 기단석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원통부는 27단을 쌓았는데 들어간 돌이 361개 반인데, 이는 음력의 일 년 날 수와 일치합니다. 또 네모난 창을 기준으로 하여 위로 12단, 아래로 12단으로 되어 있는데 1년 12달과 24절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첨성대는 원주형의 건축물로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같은 모습인데 화강암 하나하나가 같은 모양이지만
석단을 이루는 원형의 지름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들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어
술병처럼 안정감이 있습니다.
내부는 제12단까지는 흙과 돌을 채워서 견고하게 하였으며,
중간에 남쪽의 네모난 창에는 사다리를 걸쳤던 흔적으로
보아 이 창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출입을
하였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제 27단 내부의 반원에는 판석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판목을 놓았을 것으로 보여 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정상부에는 장대석을 우물정(井)자 형으로 만들었는데
4개씩 두단이 놓여 있어서 사각형의 정상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정자 석 내부에 가로, 세로 2m 정도의
공간이 생기는데 이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천문을 관측 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별자리 뿐 아니라 일식, 월식,
지진, 강풍, 등 기상 이변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 됩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제일 처음 기록된 내용이
4월 초하루 신시에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삼국사기 전체를 죽 넘겨보면 역사의
기록인지 기상관측 일지인지 모를 정도로
기상 변화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왜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별자리나 기상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이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문은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하늘과 백성을 이어주는 왕
아마 하늘의 큰 뜻을 받아서 땅을 다스리는 자를 王이라
생각하고 王은 일식, 월식, 지진, 강풍, 가뭄, 홍수 등
기상에 대한 관측을 잘 하여 자연 재난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 힘이 있는 분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왕은 이변이 생기거나 외적의 침략, 자연재난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하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별을 보고 점을 쳐 본 다음 결과를 빨리 전달 받기
위해서는 월성 가까운 곳에 첨성대를 만들어서
일관을 배치하고 하늘의 변화를 즉시 보고
받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적인 구조와 기울어짐
상단부의 井자석은 자오선의 표준으로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며. 중간 출입문은 남쪽으로
춘(추)분때 광선이 바닥까지 완전히 비추고
하(동)지에는 광선이 완전히 사라져 춘하추동을
나누는 분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통부의 원형은 둥근 하늘을, 기단의 사각형은
네모난 땅을 표현합니다.
상단부의 정자 석 길이가 기단석 길이의
반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기단부의 남쪽변이 정남에서 동쪽으로 19도 정도
돌아서서 있는데 이 방향이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첨성대 전체가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신작로를 첨성대 바로 북쪽으로 내어서
6.25때 탱크들이 달리는 진동에 의해 북쪽으로
기울어졌으나 기단 밑 부분을 잘 다져 놓았기
때문에 그 정도만 기울어진 것 이라 합니다
전쟁이 끝난뒤 군용 짚차에 밧줄을 묶고 잡아당겨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듯 약 5도 정도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실상은 6.25 전쟁 이전인 일본 강점기때 부터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 앞의 이야기는 그냥
구전되어 온 이야기일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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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
한국천문연구원 김봉규 박사는 2011년 4월 5일
"신라시대 축조된 첨상대가 천문대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첨성대가 상징적인 건물이라거나 제사를 지내던 제단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김 박사는 "삼국사기와 삼국류사, 증보문헌비고 등에 실린 고대 천문관측기록을 분석한 결과, 첨성대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640년대 이후 기록된 유성의 떨어진 위치들이 모두 첨성대를 둘러싸고 있다"며 "이는 첨성대에서 유성을 관측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첨성대가 완성된 이후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의 수가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기록된 내용도 매우 정밀해졌다"고 덧붙였다.
즉, 541년부터 640년까지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이 3건에 불과했지만, 첨성대 축조 예상시점인 641년부터 740년까지의 기록은 38건에 달하고 있다.
또 첨성대 축조 전인 467년 10월 삼국사기 기록에는 '큰 별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떨어졌다'는 식의 막연하고 간단한 내용이 있지만,
첨성대 축조 후의 718년 11월 삼국사기 기록에는 '유성이 묘수(황소자리)에서 규수(안드로메타자리)로 들어갔는데'라는 식의 나타난 위치와 사라진 위치 등이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기록돼 있다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김 박사는 특히 "신라가 별에 대한 제사를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해와 달에 대한 제사를 '문열림(文熱林)에서, 오행성에 대한 제사를 영묘사(靈廟寺) 남쪽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도 확인했다"며 "이는 신라가 첨성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천문과 관련된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첨성대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아님을 확고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오는 7일 충북 청주 충북대에서 열리는 한국천문학회 봄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한편, 오는 14일 영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고천문 학술발표대회'에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지금까지는 결정적 증거 없이 그저 막연하게 첨성대가 천문대라고 말해왔지만, 신라가 남긴 삼국사기 기록들이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며 "영국에서 열리는 학술발표회에서 인정받으면 첨성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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