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성지를 찾아서
오륜대 성지는
한국순교성인 103위
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 성당과 순교자 묘소가
있는 곳으로 부산에서는 수영장대
에서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
그리고 함께 옥에 갇혔던 여섯 분의 신
자들이 군문효수의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
는데 그들이 순교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순교자들의 얼과 사랑의 위업을 높이 기리고
전파하고자 한국 순교복자수녀회에서는 이곳
오륜대에 수도원을 설치하고 순교자 성당을
건립 하였으며 명장동에 있던 이정식 요한
회장의 가족 네 분의 무덤만이 조사 확인
되어 이곳으로 이장하여 부산 순교자
묘소로 꾸미고 안치하였으며 한국의
가톨릭순교자를 헌양하기 위하여
한국순교자박물관을 설립하여
수많은 자료들을 소장하여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오륜대 성지는 한국순교성인 103위 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 성당과 순교자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부산에서는 수영장대에서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 그리고 함께
옥에 갇혔던 여섯분의 신자들이 군문효수의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그들이 순교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순교자들의 얼과 사랑의 위업을
높이 기리고 전파하고자 한국 순교복자수녀회에서는 이곳 오륜대에
수도원을 설치하고 순교자 성당을 건립 하였습니다
명장동에 있던 이정식 요한회장의 가족 네분의 무덤만이 조사 확인되어
이곳으로 이장하여 부산 순교자 묘소로 꾸미고 안치하였습니다
한국의가톨릭순교자를 헌양하기 위하여 한국순교자박물관을 설립하여
수많은 자료들을 소장하여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순교자박물관은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를 현양하기 위해 설립된 본
박물관은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들어와 뿌리내리기까지 박해받고
순교하신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신앙의 선조들께서
남겨주신 귀중한 유물과 유품, 그리고 한국 가톨릭 교회사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박물관 중 한 곳으로서 역사,
문화, 교육의 장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척사비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1871년 4월 서울의 종로 네거리를 비롯하여 전국의 중요 도시에 천주교
및 외국인들을 배척하라는 내용의 척화비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척사비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 기념비
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육중한 청동 「성문」(the Holy Door)을 활짝 열어젖히며
역사적인 2천년 대희년의 문을 열었다.
예수 강생 2000년, 세상의 죄를 보속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천년기의 막을 연 대희년의 개막은 실로 교회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건립한 기념비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조선말기 한국 순교자들의 유물과
교회사 자료들이 수집, 정리, 전시, 보존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소장유물은 교회유물이 500 여점, 민속품이 1,200 여점, 보조자료
(성화, 지본, 사진류) 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돌 형구는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으로 돌 교수대
라고도 하며 목에 밧줄을 걸어 돌구멍에 꿰어 잡아당겨 죽였다고 합니다.
현재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것은 복제품입니다
해방 직후인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 되던 해(1946년 4월 21일)에
황해도 개성본당 주임신부인 방유룡(안드레아) 신부는 윤병현(안드레아)
홍은순(라우렌시오) 두 수녀와 함께 복음 선포와 순교자 현양을
목적으로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수도회에서는 설립 취지대로 순교자들의 얼을 기리고 후손 대대로 순교의
신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본회 수녀들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여
전교와 함께 사라져가던 순교자의 유물과 교회사자료, 박해시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민속자료들도 함께 수집하거나 기증받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물과 교회사 자료들이 이러한 자료들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기념관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문화재) 제274호 지정 기념전
의왕 원유관 새롭게 빛나다 (New shining King Ui's Crown)
‘의왕 원유관’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특별전 의왕 원유관, 새롭게
빛나다'의 원유관으로 의친왕(비오)이 친왕봉작 시 쓴 관.
조선의 쓰개와 머리장신구입니다
다산정약용 십자가로 정약용은 한국교회 창설기의 공로자이며 실학자로
1784년 세례를 받고 신유박배로 인하여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였고
1836년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에게 종부성사를 받고 선종하였습니다.
이 십자가는 다산이 지녔던 것으로 마재에 있는 그의 묘에서 발굴
되어 4대 후손인 정 바오로가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배론 교우촌 옹기십자가는 배론 교우촌(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 2리)은
1791년 신해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모여 이룬 신앙공동체로써 1801년에
황사영이 이곳 옹기토굴에서 백서를 작성하였고,
1855년에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 <성요셉 신학당>이 시작되었으며 1861년
최양업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자 시신을 이곳에 안장한 유적지이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 25개의 십자가들은 1967년 약초를 캐던 배진례 아가다 할머니가
땅 속에 묻혀 있던 옹기 항아리 속에서 발견한 것이며
1987년 본 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박물관 2층 궁중유물전시관에는 조선 제 27대 왕 순종의 비 순정효왕후의
당의, 의왕비 김덕수 마리아님께서 기증하신 궁중유물, 대원군의 친필 외
다양한 궁중복식이 전시되어 조선말기 왕실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조바위는 외출 시 어린이가 쓰던 방한모의 일종입니다.
박물관 2층 한국교회사 전시관에는 1800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한 성경, 교리서, 기도서, 성가집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2층 오륜당에는 사랑방과 안방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민속품
등이 전시되어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 2층 성모성년 특별 전시관에는 강화도 무명 순교자의 묘에서 출토된
성모상과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의 박해 시대의 성모상 외 세계 각국의
성모상, 십자가, 묵주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제대, 제의, 전례용품이 전시되어 가톨릭교회의
전례 예식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박물관 2층 기념자료 전시관에는 기념자료 전시관에는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한국천주교창립 200주년, 성체성년(1989), 대희년(2000)
등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3층 김인순 누갈다 전시관에는 김인순(누갈다님)께서 기증하신
삼국시대의 기와와 도자기,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3층 도예작품 전시관에는 도예가 신정희님 외 여러 도예가들의
도자기와 다기를 전시하고 있으며 대희년 특별 전시실 가톨릭
관련 전시 및 성화전을 기획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1층 한국천주교회사 전시관에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순교자들과
관련 된 유물과 유품, 각종 자료들이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의 순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상 (1821∼1861, )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종 이성례 마리아 의 장남으로 1836년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와 북만주의 소팔가자
등지에서 공부한 뒤 1849년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서품 후 귀국 전 한국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요동에서 사목하였으며, 1849년
12월 의주 변문을 통하여 귀국한 후 외국인 신부가 선교할 수 없는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의 산골에 숨어사는 교우들을 위해 12년
동안 오직 선교활동에 힘쓰시다 진천에서 여독으로 병사하셨습니다.
당시 유일한 한국인 신부로서 교리서의 번역 및 수 개의 천주가사를
지어 널리 전파한 땀의 순교자 였다고 합니다
박해 시대 때 부산에 복음을 전파하신 신부님들
(리델 이 신부, 다블뤼 안 부주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수영 장대골은 병인박해 당시 경상 좌수영이 있던 곳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순교의 현장으로 이곳에는 동래 지역의
전교 회장이었던 이정식(요한)을 포함한 동래 순교자 8분이
1868(무진)년 군문효수 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수영장대가 없어지면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장대돌을 한국순교
복자수녀회에서 옮겨와서 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김종권 시몬 단비
양산성당에서 이 곳 순교복자 기념관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어도 그 도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성지순례 참배기도의 예입니다
명장동에 있던 이정식 요한 회장의 가족 네 분의 무덤이 조사 확인되어,
1977년 9월 19일 이곳으로 이장하여 순교자 묘소로 안치하였습니다.
순교자 마리아 박소사 묘역입니다
순교자 프란치스코 이월주 묘역입니다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1821~1846, 새남터에서 순교)
성 안드레아 김대건(金大建)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성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나 순교자인 증조부와 부친의
영성을 배우며 자라났습니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에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새남터
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1836년 16세 때에 최방제 프란치스코,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그 이듬해 마카오에서 수학하고 1844년 부제품을 받았으며,
1845년 8월 17일 상해 부근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귀국한 후 국내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신부들의 입국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1846년 6월 5일 백령도에서 중국 어선과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네 차례의 문초와 40차례의 신문을 받는 동안
김 신부의 탁월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한 일부 대신들은 배교시켜
인재로 등용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이를 거절하고 관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비
1996년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과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기념비.
103위 성인시성 기념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성인 시성식은
아시아의 한 변방에 위치한, 숱한 순교의 피를 자양분으로
200년 교회 역사의 텃밭을 일군 조선 교회, 그리고 현대사의 고난과
역경을 분단의 현실 속에서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한국 교회의 최대
경사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건립한 기념비라고 합니다
라파엘호 모형 배 입니다
김대건신부가 이 배를 타고 상하이에서 강경 황산포에
상륙하였던 배 모형입니다
성 김효임 골롬바·성 김 효주 아녜스 자매상
* 성 김효임 골롬바 (1814~1839, 서소문 순교)
* 성 김효주 아녜스 (1816~1839, 서소문 순교)
성 김효임 골롬바와 성 김효주 아녜스는 서울 근교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며 부친을 여읜 후 가족과 함께 입교하여 중국인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4월 이사해 살고 있던 경기도
고양 땅용머리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으며
포청에서 남동생 안토니오의 피신처와 교회서적을 감춘 곳을
알아내려는 관헌에게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며
두 자매는 서소문 형장에서 순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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