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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어느 노인의 유언장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2. 7. 16.

 

 

어느 노인의 유언장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튼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틈을 타서

그것을 조사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거야.'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죽었고,

 

아들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 쳤다.

 

 

"?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1, 2, 3.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 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딸도 달려왔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 같은 기억.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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