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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를 찾아서

[스크랩] 보물로 지정된 불국사 대웅전과 석축에 대하여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1. 12. 3.
 
보물로 지정된 불국사 대웅전과 석축에 대하여

 

 

 

문화재청은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과 ' 불국사 가구식 석축(佛國寺 架構式 石築)'을 2011년 12월 30일자로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

 

그동안 불국사 대웅전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목조 건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불국사 대웅전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제서야 보물로 지정되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번에 같이 보물로 지정된 가구식 석축은 국보급인데도 보물로 지정이 되어 격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 감도 있다

 

 

하늘에서 본 불국사 전경

 

불국사는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고찰로 지금과 같은 가람배치는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시 석탑과 석축만 남기고 모두 타버린 것을 조선 영조 41년에 중창하여 불사를 이어오다가 1970년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불국사 대웅전 - 보물 제1744호

 

대웅전 현판

 

일제시대의 불국사 대웅전

 

일제시대 대웅전을 보수하는 모습(뒷면)-1909년

 

 

대웅이라는 말의 뜻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컫는데서 유래한 것이며 대웅을 모신 집이기 때문에 대웅전이라 부르는 것이다

 

대웅전은 불국사의 중심 불전(佛殿)으로  석가모니를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으며 불국사의 세 영역중에서 석가여래의 불국토를 이루는 일곽의 중심 전각이다

불국사의 세 영역은

1. 법화경에 근거를 둔 사바세계 대웅전 영역

2. 무량수경에 근거를 둔 서방정토 극락전 영역

3. 화엄경에 근거를 둔 연화경세계 비로전 영역으로 세 영역이 모두 지면의 높낮이를 달리 하고 있는데

    비로전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대웅전, 극락전 순이다

 

 

현재의 대웅전

(일제시대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전면의 바깥쪽 칸이 나무판자벽에서 문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대웅전의 합각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가 가운데 원 안에 적혀있고

양 옆의 작은 원안에는 '삼법인'을 듯하는 세 점이 직혀 있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터 위에 효종 10년에 재건되었다가 다시 100년뒤인 조선 영조41년(1785년) 천룡사의 채원(采遠)스님이 중창한 건물이며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단과 초석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불국사가 창건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창건 당시의 평면구성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대웅전의 기단

(현재 표면이 부식되어 떨어지는 박리현상이 심하게 진행되고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 

 

 

대웅전은 중창을 할 때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완전하게 조립식으로 얽어 만든 목조 건물이다.

토축으로 단을 쌓고 둘레에 기단석을 세운 뒤 그 위에 건물을 세웠으며 바깥3 안4출목의 공포를 배열한

다포형식으로 팔작지붕을 지닌 건물이며 동서남북 4면에 돌계단이 있고 대웅전의 동서쪽은 익랑을 두어 바깥 둘레의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대웅전의 기단은 지대석과 우주, 탱주,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탱주와 우주 및 면석을 별석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돌에 면석과 탱주 또는 면석과 우주를 새기고 있는데 이것은 신라 건축의 특성이다

 

 

계단 소맷돌 옆면의 버선코모양 문양

 

 

기단의 네면 중앙에는 각각 계단을 두었는데 7개 층계이다,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소맷돌에 지대석과 갑석을 조각하였고 계단 옆면은 직각삼각형의 모습인데 버선코처럼 그 끝을 살짝 들어올린 문양이 음각되어 있어 날렵하게 보인다.

불국사에서만 볼 수 있는 조형상의 특성으로 예각으로 인한 날카로운 맛을 해소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서 바로 보이는 문턱의 받침나무 중앙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초석은 네모모양의 초반 위에 두단의 쇠시리(몰딩)를 두어 원형의 주좌를 새긴 것이다. 쇠시리는 아랫단을 1/4 원 모양으로 높게 만들었고 윗단은 역시 1/4원모양이나 아랫다보다는 아주 낮게 만들었다.

 

초석과 초석 사이에는 인방 아래를 받치기 위해 고막이돌을 두었는데 초석의 쇠시리와 같은 형식의 쇠시리를 두었고 그것이 초석의 윗면까지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것은 남북국시대 이후 나타나는 신라 초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불국사 대웅전의 초석 배열 상태

(초석은 기둥의 받침이므로 기둥의 배열과 일치한다)

 

  

건물의 평면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네모모양이며 정면의 가운데칸은 다른 곳보다 두배나 넓게 구성을 하였는데  이는 극락전도 이와 같은 구조이다

 

평면의 구조는 불국사가 창건되던 때의 구조이나 그 위에 세워진 목조 건축물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에 따른 것으로 기둥이 건물의 규모에 맞추어 훤칠하게 높으며 내부의 기둥배치는 현존하는 18세기 불전으로는 유일한 배치로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난        갈라보살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가섭

 

 

대웅전의 불단은 법당 내에서 약간 뒷쪽으로 치우쳐 있어 내부 공간이 넓게 느껴지는데  정면으로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여래를 가운데 모시고 그 좌우에는 미륵보살(우리 인류를 구제해줄 보살)과 제화갈라보살(연등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삼존불의 좌우에는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이라는 두 제자의 상이 있고 동쪽에는 옥돌로 만들어진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의 부처님 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는데 이 곳은 미륵과 갈라보살을 모신다. 그 대신 법당 안 시렁(고주) 위에 보면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사자상과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코끼리상이 고주에 앞발을 걸치고 뒷발은 내공포 위에 딛고 서 있다

(위의 사진에는 보이지 않으나 좌우의 용머리 바깥쪽에 사자상과 코끼리상이 같은 높이의 고주 위에 있음)

 

법당의 왼쪽 사자상이 있는 천장에는 반야용선이 매달려 있으나 악착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본존불상 뒤에는 후불탱을 봉안하였고 좌우에 다시 사천왕을 두폭에 나누어 그린 사천왕도를 봉안하고 있다

 

 

 

                                                              백의관음보살도                         어람관음보살도

 

후불벽에서 발견된 관음도

 

2010년 8월에는 대웅전의 후불벽에서 18세기 조선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세로 4.3m, 가로 1.8m 안팎의  관음보살도 2점이 발견되었다.
적외선 촬영을 통해 후대에 덧칠한 호분(胡粉ㆍ석회가루)에 가려져 있던 관음보살도를 새로 확인했는데

관음보살 셋을 나란히 그린 삼존관음도로서, 중앙의 벽화는 완전히 지워졌으며 양쪽에만 그림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은 흰옷을 입고 주전자를 든 관음보살을 그린 백의관음보살도(白衣觀音菩薩圖)이며, 왼쪽은 물고기를 담은 바구니를 든 관음보살을 묘사한 어람관음보살도(魚籃觀音菩薩圖)이다.

 

 

 

대웅전 천장의 연꽃

 

 

천장의 형식은 우물천장이며 작은 칸 하나하나에 수많은 연꽃이 그려져 있는데 같은 모양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천정에 연꽃을 그린 이유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하는 법화경에 의해 이를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코끼리 코 형상의 용

 

물고기를 토하고 있는 용

 

대웅전의 처마 밑에는 많은 용들이 있으며 그 모습들이 특이하다. 어의주를 입고 물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용이 있는가 하면 여의주를 콧등에 올린 용, 그냥 입을 벌리고 있는 용,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 물고기를 토해내고 있는 용 등 다양한 형태의 용들이 장식되어 있다

 

사찰 건물에서 현판이 있는 정면의 기둥 위 공포에는 두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 데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범어로 입을 벌린 것은 '아(시작)', 입을 다무린 것은 '훔(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전을 수호하겠다는 의미이다.

석굴암 금강역사상의 입모양도 이와 같은 의미로 한 명은 입을 벌리고 한 명은 입을 다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는 무엇일까

 

▶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에 보살이 협시를 하고 있는 건물에 붙이는 이름으로

    대개 좌측에 문수보살, 우측에 보현보살을 모신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다른 부처님이 협시를 하고 있는 건물에 붙이는 이름으로

    대개 좌측에 약사여래불, 우측에 아미타여래불을 모신다.

따라서 대웅보전이 대웅전보다 격이 높은 법당이 된다.

 

(불국사 대웅전 내에는 사진 촬영이 전혀 허용되지 않아 자료 화면이 없습니다)

 

 

 

가구식 석축 - 보물 제1745호

 

일제시절의 불국사 석축(보수하기 전)

 

 

불국사는 산지 가람을 이루고 있어 높은 축대로서 그 아래와 위의 세계가 구분되어 있다. 위쪽의 축대는

국(佛國)의 세계이고  아래쪽의 축대는 인간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불국사의 가구식 석축은 불전과 불탑 등을 배치하기 위하여 조성한 구조물로서, 경사가 급한 지형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대웅전과 극락전 회랑 외곽에 자연석과 목조가구를 닮은 가구식 석축을 상․하 2단으로 조화롭게 축조하였다.

목조가구의  기둥․보 역할을 하는 장대석을 가로와 세로로 구획하고 그 안을 막돌로 쌓아 벽체 역할을 하게 한  가구식기법과 돌난간의 구성, 동틀돌의 사용 등은 국내외 유일무이한 특이한 구조이다.

석축은 잘 다듬어진 작은 돌로 쌓은 윗층 기단과 큰  돌로 쌓은 아래층 기단, 이렇게 2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런 구조는 2층 목조 건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연화장세계의 2층 누각을 표현한 것이다,

 

2층은 잘 다듬어진 부처님의 세계를, 아랫층은 중생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2가지 돌로 쌓은 것이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 즉 불국정토를 표현한 것이라고 강우방교수는 말 하고 있다

 

범영루의 석축

 

범영루 아래의 석주는 잘 다듬은 돌을 십자형으로 쌓아올렸고  앞에서 보면 항아리모양을 하고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모양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하나는 수미산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는 견해이다. 수미산 위의 도리천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상징화 했다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구름모양이라는 견해이다. 즉 자하문 부터는 하늘나라의 영역이므로 범영루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일제시절 보수하기 전의 석단

 

 

청운교 백운교의 양옆의 석축은 1,300년을 허물어짐이 없이 거의 현재의 모습 그대로 굳게 서 있었다.

이러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비결은 바로 동틀돌이라는 돌의 역할이다.

다른 축대에서 보면 축대의 면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돌머리가 보이는데 이 돌이 바로 동틀돌이며 이 곳에서는 튀어나온 부분을 마감시켜 튀어나온 부분이 거의 없이 밋밋하다.

동틀돌은 긴 장대석의 끝부분에 홈을 파서 수직과 수평으로  맞추어 끼운 뒤 축대를 완성해 나가는데 가로로 박히는 동틀돌의 길이는 약 1.8m 정도라고 한다 

 

     

 

 

대웅전 남쪽 회랑의 석축은 울퉁불퉁한 자연석 위과 맞닿는 면에 다듬은 돌을 얹는 '그렝이법'을 적용했고, 청운교와 백운교에는 목조건물 기법으로 돌을 짜맞추는 방식인 '결구'가 사용되었는데 이와 같은 구조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에너지를 흡수한 뒤 분산 또는 소멸시켜 상부 구조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결구방식-가로와 세로, 그리고 옆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홈을 파고 그 홈에 끼워 맞춰 어긋남이 없고

               서로 빠지지 않게 이어주는 방법)

 

 

무설전 뒤의 웅벽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하 수로를 따라

대웅전 아래를 지나 수구로 이어진다고 한다

 

 

청운교, 백운교와 범영루 사이의 석축에 보면 얕은 U자 모양의 석재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구품연지에 물을 대는 수구(水口)이다. 이 수구의 아랫쪽을 보면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긴돌, 즉 장대석을 수평으로 올려 놓았는데 장대석의 밑 부분을 살펴보면 아래에 있는 자연석의 굴곡에 맞게 다듬어 올려놓았는데 이러한 건축기법이 '그랭이법'이다

'그랭이법'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건축기법으로, 보통 지반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기둥을 올리는 방법과는 정반대의 기법이다.

흔히 목조건물을 올릴때 기둥과 초석의 결합부분에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돌에 이러한 기법을 쓴 예는 이 불국사의 석축과 석가탑의 기단, 그리고 분황사 모전석탑의 기단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지진에 대한 내구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 곳 축대의 멋은 소박하게 쌓아올린 거대한 돌의 자연미와 크고 작은 돌을 함께 섞어 개체의 다양성을 나타냄으로 통일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에 있다.

 

대웅전쪽의 석축                                                           극락전쪽의 석축

 

대웅전 쪽의 석축과 극락전 쪽의 석축을 비교해보면 둘 다 2층구조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석축을 쌓아올린 돌에서 차이점이 난다.

대웅전쪽의 돌은 자연석과 막돌을 쌓았으나 극락전쪽은 댜듬은 돌로 쌓아올렸고 동틀돌의 머리를 밖으로돌출시킨 것이 다르다. 특히 우경루가 있었던 곳의 동틀돌의 머리에는 가운데에 홈이 파여 있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용도를 알 수 없다

 

일제시대 서쪽 석축

 

 

서쪽 회랑의 가운데 수평판석

 

극락전 서쪽 회랑의 석축

(동틀돌의 머리 부분이 남쪽면보다는 돌출이 약하다)

 

극락전 서쪽 회랑의 석축은 불국사의 석축중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유홍준교수가 칭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다.

바둑판모양의 사각형 격자 장대석에 동틀돌을 박은 뒤 사이를 잘 다듬은 돌로 채웠다. 그 위에 세워진 회랑의 기둥은 아래 돌기둥과 맞추워 세움으로서 회랑의 무게를 잘 견딜 수 있게 하였으며 특히 석축 가운데를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수평판석은  수평으로 이어지다가 지면이 경사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부터 동일한 각도로 올라가 마지막에 장내석과 만나서 하나가 되는 구조이다.

이것은 지나가는 사람이 눈높이를 수정하지 않고도 편하게 거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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