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석굴암’ 재추진에 논란도 재점화
불국사 "문화재청·경주시와 준비중" .접근성 이유 내세워…300억원 필요
8년전에는 경관파괴 우려로 백지화
문화재청과 경북 경주 불국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토함산 석굴암 근처에 석굴암과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제2석굴암' 건립을 10년 만에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2석굴암 건립안은 2001~2003년 문화재청과 불국사가 유적 보존과 관객 접근성 확보 등을 내세워 추진하려다 유적 파괴를 우려한 전문가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20일 문화재청과 불국사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문화재청은 최광식 청장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 4월 불국사 쪽에 "제2석굴암 건립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달라"고 요청해 절 쪽이 가설계안과 기본 계획서를 경주시 문화재과를 통해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불국사 쪽은 대구의 한 설계사무소에 의뢰해 기본 시설 개요와 건립 얼개 등을 담은 가설계 작업을 맡겼으며, 이 결과물을 함께 사업계획서에 첨부해 경주시를 통해 제출했다.
이 사업계획안은 예산 300억여원을 들여 토함산 동쪽 기슭에 있는 석굴암 아래쪽 계곡 부근에 모형 전시실과 전실, 기타 신앙시설과 영상실, 기계설비실 등을 들이는 것이 뼈대로, 2001~2003년 건립계획안과 큰 차이가 없다. 문화재청 쪽은 "유리 속에 갇힌 석굴암의 접근성이 떨어져 사람들이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최 청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국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19일 < 한겨레 > 기자와 만나 "현재 문화재청, 경주시청 등과 설계와 예산 편성, 여론 작업 등의 준비 과정을 진행중"이라며 "긍정적인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지인 성타 스님도 "최근 최광식 청장 등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제2석굴암 건립을 놓고 여러 가지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절 쪽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조만간 설계 담당자를 선정하고 준비를 본격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국내 문화재학계 쪽은 제2석굴암 재추진에 대한 우려를 여전히 감추지 않고 있다. 이번 건립안이 10년 전 사회적 논란을 불렀던 제2석굴암 건립계획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주변 경관에 영향을 주는 신축·파괴·변형·벌채 행위를 금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권고규정과도 대치되는 안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초의 제2석굴암 추진 계획은 2003년 문화재위원회가 전체회의에서 "경관 파괴 우려가 크다"며 재고를 의결해 백지화됐다.
석굴암 연구의 권위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유적의 자연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사업을 공론화도 하지 않은 채 몰래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은 "석굴암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며 "10여년 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좀더 진전된 대안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경주/노형석 기자 29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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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복원 논란 석굴암 바로 세운다
석굴암이 다시 문제다. 부실 복원, 제2 석굴암 등 해묵은 논란거리가 최근 다시 불거지자 문화재청이 공식 대응에 나섰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21일 "석굴암 복원 문제점과 제2 전시관 건립 타당성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종합 학술용역을 내년에 발주할 방침"이라면서 "공청회도 열어 각계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국장은 "석굴암을 똑같이 본뜬 모형관(제2전시관)은 10년 전 건립을 추진하다가 주변환경 훼손 등의 우려로 중단했으나 최근 경주시와 석굴암 쪽에서 다시 요청해와 타당성 조사를 거쳐 재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국내 고고학 1세대로 꼽히는 창산(昌山) 김정기(81) 박사는 "석굴암 전실 입구 쪽 신장상(神將像) 2구가 원래는 본존불을 바라보면서 90도로 꺾여 있었지만 1961년에 복원하면서 전실에 목조건축물을 지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렬로 나란히 펼쳐 버렸다."면서 "은사나 다름없는 황수영 박사가 석굴암 복원을 주도했기 때문에 (그동안) 잘못됐다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복원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김 박사는 얼마 전 타계한 불교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가 50년 전 주도한 석굴암 복원 작업에 참여한, 몇 안 되는 생존 인물이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고건축학계의 최고 원로가 석굴암이 잘못 복원됐다고 직접 고백한 만큼 석굴암 바로잡기를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재복원'을 촉구했다.
그런가 하면 한정호 동국대박물관 특별연구원은 석굴암 전실에 불법을 수호하도록 배치된 천(天)·용(龍)·아수라(阿修羅) 등의 팔부신장(八部神將) 중에서 아수라상이 각기 다른 상반신과 하반신 조각을 이어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박사는 문제의 아수라상이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1차 수리공사(1913~1915) 당시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된 채 발견됐다가 결합, 복원됐고 그 뒤 석굴암 복원공사 때 일부 손질을 가해 지금의 모습으로 잘못 복원됐다고 지적했다.
김창준 국장은 "김정기 박사가 제기한 신장상 배치 문제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면서 "다만 아수라상 문제는 거의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최소한 아수라상은 바로잡을 뜻임을 시사했다.
*********************************************<[서울신문/박록삼기자 201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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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잘못 복원, 아는 사람 몇 없어 내가 바로잡아야 하는데 …
문화유산은 과학이다. 범죄의 비밀을 벗기는 데 과학수사가 있다면,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도 과학은 필수조건이다. 우리나라 발굴의 역사는 김정기(81)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고건축을 전공하며 발굴 경험을 쌓았던 그는 1959년 한국에 돌아와 경주 감은사지를 발굴한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발굴이었다. 숭례문 해체복원, 지석묘(고인돌) 발굴, 경주 천마총·황남대총·황룡사지 발굴, 불국사 복원, 익산 미륵사지 발굴 등에 그가 있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단독주택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그에겐 한가지 남은 소망이 있다. 석굴암의 잘못된 복원을 바로잡는 것이다.
-석굴암 전실의 8부중상(八部衆像·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의 조각상)이 잘못됐다고 했는데요.
“원래 본존불 쪽을 바라보며 90도로 꺾여 있던 전실 입구쪽 신장상(神將像) 2개를 61년 복원하면서 옆의 것들과 일자가 되게 나란히 펼쳐버렸어요. 전실 목조건물 지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문화재위원회에서 변경을 허락한 게 잘못이에요. 석굴암 복원엔 잠깐 참여했다 빠졌고, 당시 30대 초반이라 큰 소리도 못 냈지만 가능하면 내가 죽기 전엔 원상태로 복원됐으면 해요. 관계된 분들이 돌아가셔서,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없어요.”
-일제강점기에 수리복원이 된 것이라, 이미 원형이 아니었다는 말도 있는데요.
“8부중상을 일부러 구부린 흔적은 없었어요. 펴기 이전의 모습이 원형이라고 믿고 있어요. 석굴암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원래 모습을 찾아야죠.”
-일제 때 콘크리트로 수리한 것도 말썽인데요.
“일제 때 이미 천장돌이 떨어져 있었죠. 당시 석굴암을 영원히 보존하려면 일정한 두께로 시멘트를 쳐서 굳혀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놓으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장마 때면 안팎 습도 차이로 안에 물이 줄줄 흐르고 풍화가 심해졌어요. 큰 실수였지만 나무랄 순 없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철근 콘크리트는 영구적이라고 배웠으니까요. ”
-불국사도 콘크리트로 복원될 뻔했다면서요.
“불국사 발굴을 끝낸 상태였는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장으로 갑자기 발령이 나 복원을 맡게 됐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 하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일본 출장을 갔어요.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가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된 직후였죠. 일본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가늘고 긴 회랑 건물은 깨질 수밖에 없을 거다, 모조리 사진을 찍어오자고 마음 먹었죠. 아니나 다를까 제 생각대로 전부 깨져있었죠. 그렇게 보고해서 결국 목조로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불국사는 세계문화유산이 됐는데요.
“복원할 땐 되도록이면 오래된 양식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통일신라 건축양식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다 모아도 30%가 안 되는데 그걸 갖고 추정 복원할 수는 없거든요. 발굴 자료에 근거해 복원하다 보니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의 양식은 불국사에서 다 볼 수 있게 됐어요. 목조건축의 박물관인 셈이죠. 완공 뒤에도 단청을 화려하게 빛나도록 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내려왔어요. 고민하다가 조각의 이빨 같은 부분에만 약간 광택 나는 코팅을 해주고 말았어요. ”
-경주 고분 발굴도 반대하셨다고요.
“황남대총을 발굴 복원하라는 각하 지시가 내려왔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덩치가 큰 무덤인데, 그렇게 하나뿐인 유적은 함부로 손대지 말았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서 꼭 금관이 나오란 보장이 없으니 그 앞에 있는 작은 무덤을 시범적으로 발굴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게 천마총이었죠. 그때 하도 신경을 써서 머리가 하얘졌어요. 금관은 물론 천마도 등 엄청난 유물이 쏟아졌죠. 별 수 없이 황남대총도 발굴하게 됐고요.”
-천마총 금관을 들어낼 때 폭우가 내렸다던데.
“갑자기 맑았던 하늘이 새카매지고 천둥 치고 비가 퍼부었죠. 금관을 옮기다가 계단에서 발도 삐었어요. 사무실에 갖다 넣고 나니 다시 맑아지고. 저는 무덤 발굴할 때 조사원에게 큰 소리 내지 말고 웃지 말고 콧소리도 내지 말고 경건하게 하라고 시켜요. ”
-요즘의 발굴을 어떻게 보시는지.
“20년 전만 해도 돌만 찾아내는 게 발굴인 줄 알고 기단(基壇) 안의 흙을 다 퍼내는 미숙한 팀도 있었어요. 그런 흙에도 옷이나 인골이 섞여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요새는 그렇게 험한 꼴은 안 보여요. 다만 서둘러서 거칠게 한다는 느낌은 받아요. ”
-60년대 숭례문 복원에 참여하셨습니다. 요즘 숭례문 복원은 어떻게 보시는지.
“잘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요. 62년에 한 것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는 것에 약간 의구심이 있죠. 전통방식으로 복원하는 것까진 좋지만 현장에 대장간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보고 갈 수 있게까지 한 건 과잉이에요. 내 말이 꼭 옳은 건 아닐 겁니다.”
***************************************************<중앙일보/이경희 기자 2011.6.7>
◆김정기=일본 메이지대 공학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대문 중수공사사무소 감독관, 경주고분발굴조사단장,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한림대 사학과 교수, 문화재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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