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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신어산 은하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1. 3. 5.

 

신어산 은하사를 찾아서

 

신어산 은하사는

경남 김해시 삼방동

신어산 서쪽 자락에 있으며

신어산의 옛 이름이 은하산인 것

으로 보아 은하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생각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 말사로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전설에 의하면 가야의 김수로왕 왕후인

허황옥의 오빠 장유가 창건 하였다고 하며 당시의

이름은 서림사였다고 하며 창건연대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인 서기 1세기이므로 전설에

불과하며 은하사가 가야의 고찰로 추정하고 있는데

창건시기를 가야 때로 보는 이유는 법당 안에 있는

쌍어문인 두마리의 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은하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로

김해시 유형문화재 23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유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절은 임진왜란 때

 화를 입었던 것을 인조 22년 복원하고

서림사(西林寺)로 불렀다고 합니다

 

 

 

가락국 수로왕때 장유화상이 중건한

이 절은 가야불교의 성지로

 

 

 

신어산 은하사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38호로 지정된 사찰입니다

 

 

 

은하사로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축대 옆에

신어동천 이라는 큰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신어산 은하사의 범종루(梵鐘樓)는 범어사 주지를 지내고

지금은 은하사 회주인 대성(大成) 큰스님의 원력으로

 

 

 

5년간의 대작불사 끝에 2001년 4월 새로 세웠다고 하는데

상, 하 기둥 모두를 원목의 형태를 살렸다고 합니다

 

 

 

밑에서 바라다 본 범종루의 모습인데 목어 배 부분에

무언가 달려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궁금하여 안내자인 토함산솔잎파리 님께 물어 보았더니

 저것이 바로 은하사에서 유명한 목어에

목이 셋 달린 거북이 라고 합니다

 

 

범종루 입구에는 나무로 잘 다듬어진 물고기 모양의

 조각들이 좌우로 세워져 있습니다만

 

 

 

앞 모습은 용의 모습 같기도 하고 뒷 모습은

새의 꼬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범종루를 받치고 있는 수 많은 기둥들이 원목으로

 다듬지 않은 주름잡힌 나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목재는 향나무나

편백처럼 굴곡이 많이 져 있습니다

 

 

 

목이 3개라는 거북을 이끌고 다니는 목어의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만 조각이 아름답습니다  

 

 

 

범종루에 있는 용의 모습입니다만 입속에는 용의 혀처럼

생긴 것이 수 없이 많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신어산 은하사의 범종루에는 범종의 바로 밑 부분에

울림통을 하지 않고 밑부분까지 막구멍이

뚫여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종소리가 여운을 내면서 오래도록 울리게 하는 것으로

 종 밑부분에 항아리를 묻어두거나 종 밑부분을 우묵하게

 파져 있다고 하는데 이 곳의 범종은 밑으로 구멍을

 뚫어서 여운과 울림소리가 더 좋다고 합니다   

 

 

 

 종소리는 뭇 생명이 있는 이들을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설법으로 중생들의 일심을 일깨우는

부처님의 영원한 일승원음이라고 합니다 

 

 

 범종은 범종각에 두는데 범종을 두는 집이 2층

누각으로 형태를 바꿀 때는 범종루라고 하며

 

 

 

범종각은 범천의 종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게 되며 불이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볼 때는 왼쪽 법당 쪽에서

볼 때는 오른쪽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은하사 경내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자연의 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스님께서 다시

세운 탑이라고 합니다

 

 

 

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이라고 하며

 

 

 

부처님이 열반한 뒤 불상보다 먼저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산지가람이 많은 이유는

 1,우리민족의 뿌리깊은 산악신앙 때문

2,불력으로 승화된 호국호법의의지

3, 탈속과 해탈을 추구하는 세속주의

4, 풍수지리학의 산천비보설

5, 조선시대의 숭유배불정책

때문 이라고 합니다

 

 

 

공직에서 명퇴를 한 지도 벌써 4년째로 접어들면서

문화유산 답사를 한답시고 전국의 사찰을

많이 돌아다니면서도

 

 

 

주지스님의 친절한 배려로 스님으로 부터 차를 대접 받아

보기는 이 곳이 두 번째 사찰인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으로 부터 은하사의 내력과

주변의 문화유산들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모처럼 존경스런 스님을 뵙게 되었다고

일행이 입을 모았습니다

 

서림사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은하사라는 이름은 약 200년 전 재중수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웅전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조선시대 후기 건축물 형태를 띄고 있으며 다른 절과는 달리

대웅전에 관세음보살을 독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은하사의 대웅전 동편 벽 뒤에 걸린 판문에는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과 혼인하러 온 허황옥과 그의 오빠 장유화상이

 인도에서 함께 옴 이란 글씨가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 수미단에 새겨진 쌍어문양은 고대 인도와 가락의

 불교 교류를 보여주는 흔적이라는 것으로 이 쌍어문양은

 수로왕릉 정문에 걸린 것과 그 모양이 비슷한데

 

 

 

현재 인도 아요디아 주 정부의 문장과도 유사하다고 하며

 그러나 허황옥이 왔다는 아유타국이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법당에는 용이 그려져 있는데 극락으로 가는 길은 먼 바닷길을

 건너야 하므로 물을 주제하고 신령스런 존재인 용이 이끄는

 배를 타고 가는데 이 배를 반야용선 이라고 합니다

 

 

 

신어산 기슭에 위치한 이 은하사는 사찰로 들어오는 높은

계단을 오르면서 영화 속의 조폭 재규(박신양)와 

 

 

 

청명스님(정진영)이 기왓장 많이 깨기, 깨진 물독 채우기 등

서로 기싸움을 벌이던 은하사 대웅전 앞 입니다

 

 

 

삼성각은 산신, 칠성, 독성이 아니라 고려말의 삼대성승으로

 추앙 받았던 지공, 나옹, 무학대사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를 사찰 속으로 옮겨 놓은

전각으로 지장전이라고도 합니다

 

 

 

은하사 입구에 길이 10m, 사방의 뚜께 2m 의 거대한 화강암에는

 “백의관음보살상”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볼 때

관음보살상을 조각하기 위해 놓아둔 것으로 보입니다

 

 

 

전 김해시장 모씨와 모 병원원장, 은하사 주지가 거대한 불상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을 모았다고 하는데 병원장은 돌을 구고

은하사 측은 땅을 내놓고, 시장 은 불상을 만드는

비용을 내기로 합의를 하였으나 추진이 잘  되지

않아서 이렇게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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