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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답사

영양 남이포의 선바위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7. 16.

영양 남이포의 선바위를 찾아서

 

영양은 산새수려하여 문인을 많이 배출한 곳이지만 

 화강암으로 만든 전돌을 쌓아올린 전석탑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탑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지난주에는 봉화를 답사하고,  이 번주에는 영양을 둘러 보고자

 찾아간 첫 관문이 입암이라는 선바위와 남이포를 찾았습니다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수문장처럼 우뚝선 바위를 선바위

 즉 입암이라 하고 석벽과 절벽을 끼고 흐르는 강을 남이포

라고 합니다   조선 세조때 남이장군이 반란을 일으킨

 역모자 아룡과 자룡형제를 토벌하고 도적의 무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큰칼로 산줄기를 잘라서   

 물길을 돌렸다는 마지막 흔적이 선바위라고   

하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경북 영양의 선바위와 남이포는 영양군 입안면에 있는

강변 경승지로 산의 절벽과 강이 어울어져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는 곳입니다

 

 

남이장군의 화신인듯 한마리의 사자가 남이포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 선바위 위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남이포 맑은 물에는 수달인가?  이무기인가?

 

 

남이포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사자와 마주보고

 절벽 속에서 뛰쳐나오는 용의 모습입니다  

 

 

  멀리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을 가로질러 안동으로

흘러드는 반변천은 이 남이포에서 청계천과

합류하게 되는 곳입니다.

 

 

청계천은 보통 동천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서석지 앞을 지나

연당리에서 반변천에 합류해 반변천이 된다고 합니다

   

 

 이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바로 남이포이고 남이포

 절벽 앞에 거대한 촛대처럼 서 있는 바위가

선바위(입암)이라고 합니다.

 

 

 이 선바위와 남이포는 두 강이 서로 만나고 강변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절벽 건너편으로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옛날부터 경승지로 널리 알려져왔습니다

 

 

  옛날에 용의 아들이 이곳에서 역모를 꾀하다가 남이장군이

반란군을 토벌하면서 선바위를 만들어 놓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양군에서는 이곳 남이포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는데

호텔과 박물관, 보트장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남이포와 선바위에는 조선 세조 때 남이장군이 역모자들을

소탕한 전설이 내려 오고 있는 곳입니다.

 

  

운룡지의 지룡의 아들인 아룡과 자룡형제가 있었는데

두형제가 역모를 꾀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 남이장군에게 토벌을 명하니, 

 

  

남이장군이 이곳까지 내려와서  지룡의 두아들을 소탕하려고

칼을 뽑았더니 아룡이가 별안간 몸을 솟구쳐 공중에서

남이장군을 공격하니,

 

  

남이장군도 용마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 아룡과

자룡의 목을 베고 이들 형제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남이장군은 이 부근 도적의 무리들이 다시 난을 일으키는

지세이므로 큰 칼로 이어진 바위절벽을  내리쳐서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입암면은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곳으로 바위가 서 있다 하여

선바위라고 하며 선바위를 한자로 입암(立岩) 이라 하여

입암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입암면은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영양군 남면과 진보군 북면,

안동군의 일부를 합하여 영양군에 속하였으며 이름을

입암면이라 부르기 시작 했답니다.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설 입(立), 바위 암(岩)

이렇게 입암이 되었었습니다.

 

  

 남이 장군의 전설이 고스란히 서려있어 남이포라 하지만,

이런 하천 절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신비롭습니다

  

 

입암면은 안동시와 청송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어

타 지역과의 교류가 편리하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반변천이 비옥한 토양과 만나

건강한 농산물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우뚝 선 봉우리 일월산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들이

 낙동강으로 흘러가면서 수 만년 동안 끊임없이

 

  

하천 바닥을 깎고 물길을 바꾸면서 골짜기 사이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 놓은 땅이 영양이라고 합니다.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동천과 반변천이 측면을 깎다가 절벽을

절단하여 결국 동천이 흐르던  물길을 버리고

반변천에 합류된 곳이 남이포입니다.  

 

  

 

선바위와 남이포에 전하는 이야기 

 

반변천이 굽이치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입암면 연당1동 앞에 거울같이 맑은 물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기암절벽의 선바위와 입암면 산사동 냇가의 남이포에 얽힌

 남이 장군의 전설이 있습니다.


조선조 세조 때 지금의 연당1리( 옛 석백리의 속칭 돌백리) 석백지 가에 아룡(阿龍)과 자룡(子龍)이라는 형제가 살았습니다.


이 두 형제는 큰 도둑떼의 두목으로 영양고을을 주름잡으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을 원은 군사들을 보내어 이들 형제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워낙 재주가 뛰어나서

잡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군사가 죽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자 아룡형제는 더욱 기세가 올라 나라를 뒤엎고 자기들이 왕이 되겠다는 욕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백성들은 항상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룡과 자룡 형제는 원래

석백지에 사는 용의 소생으로 지용(智勇)이 뛰어났으나 일찍부터 흉계를 품어 역모를

꾀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원래 아룡과 자룡은 신용(神勇)이 있어 누구라도 감당할 자가

없어 저들이 성세를 떨친 지 오래도록 토벌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조정에서는 묘의 끝에 무용이 절륜한 남이장군 일등공신에게

 토벌령을 내렸습니다.


남이 장군이 이곳까지 내려오자 아룡 형제는 겁을 먹기는 고사하고 이재 자기네들 뜻대로

나라를 뒤엎을 때가 왔노라고 하며 좋아서 야단법석을 부렸습니다. 남이장군의 군사가

입암면 신사동에 다다랐을 때 "남이 듣거라. 천하제일의 대장 아룡장군 앞에서 항복을 하라. 그러면 나라를 빼앗은 뒤 높은 벼슬을 시켜주마." 하고 외치자 남이장군은 껄걸 웃으면서

"요망한 소리 진작하고 아룡과 자룡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목을 바쳐라.너희 형제가 나쁜

마음을 품고 나라에 불충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만든 죄 죽어 마땅할 것이다."하며

더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룡과 자룡은 희죽 희죽 웃으면서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남이 너도 이것으로 끝장이다."하면서 하늘로 뛰어 오르자 남이장군은 "한 놈씩 덤비는 건 귀찮으니 두 놈 한꺼번에 덤벼라."하며 아룡과 자룡의 뒤를 쫒았습니다.


양쪽 군사들은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정신없이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간간히 외치는 기합소리와 칼과 칼이 부딪혀 일어나는 불꽃 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흘렸을까? "이 칼 받아라."하는 남이장군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아룡의 목이 땅에 떨어지고 이어 몸체도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본 자룡은 겁을 집어먹고 연당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남이장군은 곧 뒤따라가서 자룡의 목도 베어버렸습니다.

남이장군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큰 소리로 웃으면서 선바위 앞 절벽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놓고 땅에 내려섰습니다. 이것을 본 아룡의 졸개들은 혼이 나서 남이장군 앞에 무릎을 꿇어 항복했습니다.


이리하여 영양고을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지금도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의 바위에는 남이장군이 자기 자신을 그려 놓은 초상화가 선명히 보인다고 하며 남이장군과 아룡형제가 맞서 싸우던 곳을 남이포라고 부릅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출처] 선바위와 남이포에 전하는 이야기 - 박장영 | 안동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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