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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문화재답사

해동 최초 가람 도리사를 찾아서

by 송강 (松岡) 최 재 모 2010. 5. 19.

해동 최초 가람 도리사를 찾아서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성지가 됭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 올 때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  

육각사리함 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승려이던  

 아도화상이 눌지왕때 포교를 위해 선산의 모례장자의 집에 머  

물며 불법을 전했다고 하며 신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절터를  

찾던 중 눈 속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핀 곳을 보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도리사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도화상이 불교의 전파를 위해 모례장자의 집에

머물렀다는 모례정을 찾았다가 

 

 

해동최초의 가람으로 신라 불법의 초전법륜지로

성지화 되었다는 도리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국 불교는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기틀은 해동불교의 초전지

선산의 도리사에서 부터 시작 된다고 합니다

 

 

 묵호자라고 알려진 아도화상은 신라불교의

공인(법흥왕 15년; 528년)에 앞서

 

 

눌지왕(417-458)에 불교의 포교를 위하여 일선군(선산)의

모례장자의 집에 머물면서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신라의 불교는 묵호자라고 하는 아도화상의 포교

활동에 의해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묵호자는 선산의 도계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눈 속에서

피어난 곳을 보고 그 자리에 비로소 절을 창건하니

이곳이 바로 해동최초가람 도리사 라고 합니다  

 

 

지금도 도리사와 인접한 도게에는 아도화상이 불교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모례장자의 유적지가 있고  

 

 

모례장자의 집터에는 모례정이라는옛 우물이 있어 

당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는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성지화 되어서 

 찾는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리사에 있는 이 석탑은 보물 제470호로 도리사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3.3m라고 합니다  

 

 

일반 석탑과는 형태가 전혀  다른 특이한 모습으로

지면 위에 10장의 길게 다듬은 돌을 놓고 그 위에

탑의 기단을 세워놓은 모습입니다 

 

 

기단은 4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 면에

직사각형의 판석 6 - 7매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고

남면의 중앙부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하여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벽돌탑을 모방한 모전석탑 계열에 가까운 탑으로 조각

양식과 돌을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라 불교의 새벽을 열었다는 도리사는 임진왜란 이후

사운이 점점 기울어지다가 큰 화재를 입어 도리사는

결국 폐사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산내암자였던 금당이

화재를 면하는 바람에 

 

 

 이로부터 사세를 조금씩 회복하게 되어 그 역사가

오늘날의 도리사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도라사에 있는 건물은 극락전 적멸보궁, 조사전,

삼성각 등 전각을 비롯여 탲조선원과

수선당, 설선당 등이 있습니다   

 

 

태조선원은 정면 7칸, 측면 8칸의 ㄷ 자형

건물로 50평의 크기라고 합니다 

 

 

도리사가 선원을 운영하던 지난 날에는 해동의 선객들이

 제일도리고 할 정도로 이름이 난 선방이었다고 하는데

 

 

태조선방은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그냥

전해주는 건물일 뿐이라고 합니다  

 

도리사는 1968년 봄 아미타 좌상을 도금할 때 불상 밑에서

1731년 영조 7년 때의 중수기가 발견되었으며

 

 

고구려의 승려이던 묵호자 아도화상이 머물면서

불교의 포교활동을 벌였다는 모례장자의 

 

 

 집 일대에는 신라불교초전지 마을 조성

사업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아도화상은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사찰 건립지를 찾던 중

냉산 눈 속에서 오색의 복사꽃이 핀 것을 보고

절을 지어 도리사라 했고  

 

 

 또 금오산과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도리사 서대에

올라 저기에 절을 지으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절을 지으니 직지사 라 했다고 합니다  

 

 

 옛날 아도화상이 설법을 할 때면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아도화상의 전법정신을 

 

 

이어가는 도리사는 21세기의 새로운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서 정진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의 행적을 적어 놓은 비석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앋아도화상은 어머니 고도령의 권유에

의하여 5세때 출가를 하였다고 합니다 

 

 

 아도화상은 선산의 모례의 집에 숨어 살면서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후 경주로 가서 성국공주의 병을 구하고 불법을

전하다 귀족들의 반발로 여의치 않아  

 

 

 다시 선산 모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 오얐꽃이 만발하여 있는 것을 보고

그 곳에 도리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토지를 희사한 시주의

이름과 논 밭의 면적을 밝혀놓은 것으로  

 

 

 높이가 약 161cm이고 비신의 높이는 111cm 정도로

숙종 38년 (1712)에 능철의 주관 아래 김성원이 

글자를 새겨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번쯤은 올라서 좌선을 해 보고 싶은 곳입니다 

 아도화상이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입니다

 

 

 좌선대 옆에는 아도의 사적비 겸 자운비가 있는데

앞 면에는 인조 17년에 , 뒷면에는 효종 6년에 새긴

아도의 사적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도리사에는 세존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불전으로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표출시킨 영산전,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제자들의 신앙을 묘사한 응진전과 나한전,    

 

 

영원한 진리의 몸이신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병든 중생을 해탈시켜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을 모신 용화전,

 

  

불교의 시간관에서 볼 때 현재에 속하는 현겁의

모든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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