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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찾아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을 찾아서

by 고우니 ; 송강(松岡) 최재모 2014. 8. 15.

 

도림사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을 찾아서

 

 

 

 

 

신라 제 48대 경문왕의 귀가

어느 날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것을

복두로 묘하게 가리고 있었으므로

 

신하들은 물론 황후와

궁녀들까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꼭 한 사람이 알고 있었으니

임금님의 모자를 만드는

복두장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복두장이에게

 

" 내 귀가 길다는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소문을 내면

 

너는 가장 가혹한 형벌로써

죽을 줄 알아라."

하고 위협 하였습니다.

 

복두장이는 겁이 나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병이 난다고 합니다.

 

 

그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이 시름시름 말라 갔습니다.

 

아무리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습니다.

 

복두장이는 자기 병의 원인은

자기가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도림사 대밭으로 갔습니다.

 

도림사의 대밭은 얼마나 넓은지

그 가운데로 들어가면 하늘도, 산도,

들도 보이지 않고 오직 대숲일 뿐이었습니다.

 

복두장이는 그 속에 땅을 파 놓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두장이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파 놓은 땅 구멍에 입을 대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 ,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 "

하고 몇 번이나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흙을 덮고

발로 밟아 묻어 놓았습니다.

 

복두장이의 가슴속에서

썩고 있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땅속에 묻혀 있으니

 

소문이 날 염려도 없고,

가슴 속은 후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복두장이는 병이

완쾌되어 명랑한 날을 보냈으나

얼마 안 되어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었습니다.

대밭에 죽순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서라벌의 어린 아가씨들은

바구니를 들고, 죽순을 뜯으러

도림사의 대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람이 솔솔 부니 댓잎들이 흔들리면서

이상한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복두장이가

땅속에 묻어 놓은 소리가

대나무 뿌리를 타고 나와

댓잎에서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소녀들은 대 이파리가 불러 주는

이 재미난 노래를 곧 배웠습니다.

 

줄넘기를 하거나

공기놀이를 할 때 맞추어 부르는 노래는

"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이 노래는

잠깐 동안 서라벌에 퍼져서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노하여 관원들을 시켜서

이 노래의 출처를 밝히게 하였습니다.

 

관원들이 조사해 본 결과 도림사의

대나무들이 원흉이었던 것입니다.

 

보고를 받은 왕은 대노하여

도림사의 대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고,

대신 산수유나무를 심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서릿발 같은 임금님의 명령이라

도림사의 대나무들은

무참히 없어져 버리고

 

몇 년 후에는

이른 봄부터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가을이 되니

온 숲이 빨갛게 열매가 익었습니다.

 

서라벌의 어린 아가씨들은 바구니를 들고,

산수유 열매를 따러

도림사 숲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바람이 살살 불면

산수유 이파리들이 흔들리면서

역시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번에는 그 전보다 간략하게

 

"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라고만 하였습니다.

 

 

아가씨들은

이 노래도 배워서 퍼뜨렸건만

 

이번에는

임금님께서 가만히 계셨습니다.

 

또 나무들을 잘라 보아야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이번에는 노래 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기 때문인지-

 

그것은 임금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이 도림사의 위치를

삼국유사에는 입도림(入道林)이라고만

밝히고 있어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일연스님은

"예전에 서울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숲이다."하였으며,

 

 

동경잡기에는

북천(알천)의 홍수를 막기위해

5리나 되는 숲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분황사에서

보문단지로 가는 4차선 도로변은

고목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1930년경 한 일본인이

"道林"이라 새겨진 명문기와를

 

이 절터 주변에서

수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숲으로 가득찼던

이 주변에 도림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사지에 대한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밝혀 지겠지만,

 

현재 도림사로

추정하고 있는 절터에는

분황사 모전석탑의 석재와 비슷한

두께 3cm, 5cm에서 부터 7cm, 9cm 크기의

붉고 납작한 안산암의 전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 부처님의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은

근육질의 사나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힘찬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인왕상은

가로 80cm, 세로 150cm 정도인데,

분황사 모전석탑의 예와 마찬가지로

 1층 탑신부 4면에 설치된 감실 양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조각수법 또한 비슷하여

조성시기를 7세기 중엽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외에 석탑

지붕돌 2기가 남아 있으나

본래 전탑과 같이 있었던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주변의 논, 밭에는 초석 일부와 함께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기와편에서

이 사찰의 규모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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